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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Aug 27. 2022

Nope. 그렇게는 안되지

[영화 리뷰] 놉(조던 필, 2022)

"겟 아웃(Get Out)", "어스(Us)"에 이은 조던 필(Jordan Peele) 감독의 세 번째 영화. 


나는 조던 필 영화가 훌륭한 사회 비판 영화이자 오락영화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눈으로 재구성한 영화의 무대는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두려움과 억눌림의 감정에 빠져들게 한다. 폭력적이고 뒤틀린 미국 사회를 반영하는 각종 상징과 은유는 영화를 보는 중에도 그리고 보고 나서도 마치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의 답을 상상할 때 느끼는 미묘한 흥분과 비슷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조던 필이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도 '조동필'이란 애칭을 얻을 만큼 사랑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반대로 찍는 서부극


영화를 보기 전, "놉"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만약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서부극을 찍는다면?"에 대한 답을 상상하며 "놉"을 보면 영화를 즐길 만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놉"의 배경은 서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광활한 건조지이다. 말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전형적인 서부극에서처럼 백인들이 말을 타고 척박한 서부를 개척하지 않는다. 대신 그동안의 서부극에서 조연 혹은 등장하지조차 않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그 땅의 중심에서 영화를 이끌어간다. 


영화 초반엔 서부극의 시초부터 그 영화 산업을 지탱해왔지만 전혀 인정받지 못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실제로도 과거 미 서부엔 뛰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 기수들이 많았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렇듯  "놉"에서 서부극, 혹은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구조와 긴장을 볼 것이다. 

1880년대 미국 켄터키 경마계를 평정한 Issac Burns Murphy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사진: Murphy의 전기 표지)


자연에 대한 경외


나는 미국의 영화 산업보다는 환경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놉"의 주제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라고 생각했다. 나는 웅장한 대자연을 마주하면 두려움을 느끼곤 하는데, 이 영화에서도 큰 스크린을 광활한 건조지가 채울 때 시원함과 서늘함을 함께 느꼈다. 대자연 앞에서는 내가 얼마나 약하고 작은 존재인지를 느낀다면, 동물을 만날 땐 그 동물이 크건 작건, 사납건 순하건, 그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긴장을 놓지 못한다. 


이런 내가 자연에 느끼는 감정은 경외라는 단어에 가장 가깝다. 경외에는 존경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은 자연 혹은 초자연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존경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하고, 욕망하기도 하고, 물건이나 도구로 생각하기도 한다. "놉"의 이야기는 등장인물들과 자연의 다양한 관계를 따라 흘러간다. 사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앞서 말한 서부극의 전통과도 연결되어있다. 서부극에서 멋지게 그려지는 '카우보이'들은 자연과 동물을 길들이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는 안되지


여느 영화가 그렇듯 제목에는 의미가 있다. "겟 아웃 Get Out"에서도 도망치라는 그 제목이 영화 내내 들리는 듯했다. "놉 Nope", 미국에서 정확히 어떤 뉘앙스인지 잘은 몰라도 내가 뭘 하려는데 상대방이 "놉"이라고 한다면 순간 얼어버릴 것 같다. "그렇게는 안되지"라며 단호하게 막아서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영화 "놉"에서 "놉"을 외치는 이는 누구일까? 제목을 되뇌며 영화를 본다면 "놉"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스러운 영화


나는 현실에 가까운 영화보다는 영화 같은 영화가 좋다. 그래서 영화적 장치와 문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서 활용하는 공포영화를 볼 때 무섭기도 하지만 영화를 하나하나 풀어보는 즐거움도 느낀다. 나는 조던 필의 영화도 굉장히 영화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등장인물들의 색깔도 선명하고, 사람들이 긴장하고 서늘함을 느끼고 놀랄만한 장치를 영화 곳곳에 배치했다. 관객들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조던 필의 이야기를 익숙한 장치와 문법을 통해 보며 그의 영화에 금방 몰입한다. 


마지막으로 다니엘 칼루야의 연기도 꼭 기록해두고 싶다. 그는 절제된 표현으로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배우다. 여동생 '엠' 역할을 맡은 케케 팔머와 함께 영화를 이끌어가는 "OJ"를 연기한 다니엘 칼루야의 눈과 어깨, 등, 걸음걸이를 통해 불편하고 어색한 느낌, 그리고 무언가에 억눌리고 무기력한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는 그의 표정과 자세에 감탄했고, 영화를 본 뒤에는 그가 찍은 다른 작품들이 보고 싶어 졌다.


OJ와 엠. 사진: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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