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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Jan 08. 2022

이사라는 종합예술

22년 만에 포장이사를 하며 만난 빛나는 사람들

얼마 전 부모님이 무려 22년 만에 이사를 하신다기에 도와드리러 갔다. 평소 집이 아닌 방살이(고시원, 원룸, 투룸..)를 하던 나에게 포장이사로 진행되는 집 단위 이사는 경이로웠다. 이사를 나가는 날엔 포장이사팀, 사다리차 기사뿐 아니라 도시가스 기사, 보일러 기사, 아파트 경비원, 그리고 나와 어머니가 한 팀이 되어 집을 비웠고, 그 나가는 집과 들어가는 집 빈에선 각각 도배사가 할 일을 했다. 다다음날 이어진 이사를 들어가는 포장이사팀과 사다리차 기사, 그리고 도시가스 기사, 정수기 코디, 인터넷 기사, 아파트 경비원, 그리고 다시 어머니와 내가 한 팀이 되어 집을 채웠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한 계약이나 전입신고 같은 행정업무까지 치면 행정복지사무소 직원,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공인중개사, 한전 고객센터 직원 등등 이사 과정에 함께한 사람들의 명단은 더 늘어난다. (모두 감사한 분들이지만, 가독성을 위해 '~님' 등의 존칭은 생략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하며 펼쳐지는 이사는 정말 '종합예술'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는 포장이사 없이 달릴 수 없다


코로나19 이후로 '필수 노동자'라는 용어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굴러갈 수 있도록 어찌저찌 감당해왔음에도 마땅한 인정과 대우를 받지 못했던 돌봄 노동자, 배달 노동자, 보건의료 노동자, 청소 노동자 등에 이제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이사를 거치면서 포장이사 노동자와 사다리차 기사도 현대 사회의 필수 노동자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감당할 수도 없는 짐을 이고 지고 살아간다. 온 가족이 힘을 모아도 냉장고와 장롱을 놔두고 야반도주하거나 창 밖으로 던져버리지 않는 이상을 집을 비울 방도가 없다. 어떻게든 집을 비운 뒤에도 그 많은 짐을 옮기려면 한세월 걸릴 것이고, 다 옮기기 전에 골병이 날 것이다. 


포장이사팀과 사다리차 기사라는 필수 노동자들은 이젠 더 이상 한두 사람이, 아니 한 가족이 달라붙어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이사라는 일을 가능하게 해 준다. 이들이 없다면 '대기업'이 큰 가전제품을 만들어 팔 수도, 아파트 고층을 거래할 수도 없지 않을까? 사실 포장이사는 자본주의라는 폭주기관차의 아주 중요한 나사였던 것이다.



포장이사팀은 엘리베이터나 현관보다 크고 무거운 가구도 옮겨주고, 커다란 이사 상자를 챙겨 와 짐도 대신 싸준다. 그리고 그걸 이사 갈 집에 다시 채워도 준다. 작년 초, 내 작은 월세방을 이사한다며 친구가 빌려온 SUV에 집을 실어 나른 적이 있는데, 이사 들어간 집에 홀로 남아 바닥에 끝도 없이 펼쳐진 물건들을 정리하다 몰려온 막막함이 생각난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밥 먹고 자는 공간 외의 공간이 여전히 너저분할 때, 조금은 눈물이 날뻔했다. 그때도 포장이사를 했더라면 내 이사는 일주일이 아닌 하루 만에 끝났을 텐데.


'손발 맞음'의 아름다움


부모님 집을 찾은 포장이사팀은 총 세명, 그리고 사다리차 기사가 함께 왔다. 포장이사팀은 '아저씨' 2명과 아줌마' 1명 (인터넷, 가스, 보일러 관련 일을 하는 분들은 '기사'라 부르는데 포장이사하시는 분들은 특별한 호칭 없이 '아저씨', '아줌마'였다. 아마 대외적으로는 팀장과 팀원으로 되어있는 듯했는데, 사실 많이 봐도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내 또래 사람들은 '아저씨', '아줌마'라고 불렸다)으로 이뤄져 있었다. 사다리차가 걸쳐지고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자, 우리 집은 순식간에 비워져 갔다. 마치 이 세 사람이 손발에 우리가 끼는 게 방해되는 일 같아 복도에 나와있거나 작업이 끝난 방에서 서성이던 우리 모자는 가끔 포장이사 '아저씨'가 가구나 가전제품에 원래 있던 스크레치를 확인하러 부를 때만 확인해주러 가끔씩 꼈다. 이들은 물건을 내리기 전, 가전제품은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가구는 여기저기 원래 있던 하자는 없는지 꼭 확인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포장이사팀 세 사람은 아마 자주 함께 일했던 사람 같았다. 서로 많은 말 주고받을 것도 없이 착착 자기 맡은 일을 했고, '아줌마'가 이사 상자를 채워서 거실 쪽으로 밀면 가구를 포장하고 옮기던 '아저씨'가 상자를 포장하고 사다리차에 실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무거운 짐 옮길 때 쓰는 담요가 필요할 때나, 이사 상자가 모자랄 것 같다 싶으면 벌써 다른 팀원이 물품을 그 사람 옆에 슥 밀어 놓고 있었다. 나는 일을 할 때 '손발을 맞추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곤 하는데, 각자의 일을 하면서도 동료들을 자주 확인하며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는 손발 잘 맞는 팀을 만나면 참 신난다.


물건 싸고 옮기는 소리, 그리고 사다리차 오르내리는 소리가 채우던 집 안에서 그나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같이해'다. 다른 팀원들이 각자 일에 열중하는 와중에 누군가가 사다리차에 혼자 짐을 싣거나 내리려 하면 다른 팀원이 '같이해'라며 조금만 기다렸다 같이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혼자서도 무거운 물건을 요령껏 옮기고 올리고 내릴 수 있었지만, 냉장고와 소파를 다루는 일, 그리고 베란다 난간 위로 짐을 옮겨야 하는 작업은 함께 해나갔다. 나는 크지도 않은 사다리차에 무지막지하게 무거운 큰 가구와 냉장고를 싣는 모습만 봐도 오금이 저려서 잘 볼 수 없었다.


'큰 그림'이 중요해


내내 조용하게 일하던 포장이사팀의 '아줌마'는 집을 비우던 날 부모님 집이 깨끗하고 미리 짐을 많이 싸놓아서 좋았다며, 이사 들어가는 날에도 자기가 꼭 오고 싶단 말을 했다. 아무리 포장이사라지만 분명 집주인이 잘할 수 있는 일들이, 이런 일까지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좀 그런 일들이 있다. 이사 전 부모님은 커다란 비닐로 침구류를 싸고, 바닥에 펼쳐져 있던 장판을 말고, 자잘한 물건들은 가방과 캐리어에 담았다. 그렇게 하면 '서로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꼭 그 덕분만은 아니겠지만, 이사는 예정보다 30분 넘게 일찍 끝나 모두가 행복할 수 있었다. 


이틀 뒤, 이사를 들어가는 날에도 같은 포장이사팀과 함께했다. 작은 물건이 먼저 나가고 큰 물건이 그다음 나갔던 전전날과 반대로 소파와 침대처럼 큰 물건이 먼저 올라왔고 분해되었던 가구들이 착착 조립되어 자리 잡았다. 이사 나가는 날, 큰 물건들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사 들어가는 과정을 보며 왜 그랬는지 이해했다. 한편, 알아서 조립해야 하는 가구를 마주할 때 설명서를 읽으면서도 가끔 헤매는 나에게 침대, 책장, 냉장고 등등을 자유자재로 분해하고 조립하는 포장이사 '아저씨'는 이 모든 것의 원리를 통달한 철학자처럼 보였다. 다양한 브랜드, 다양한 가구를 다룬 경험도 경험이겠지만, 아마 해체하면서 조립할 것을 미리 생각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집을 채우던 날 우리 모자는 할 일이 조금 더 많았다. 큰 수납장들이 자리를 잡고, 뒤이어 여러 물품이 담긴 이사 박스가 올라왔을 때 우리도 포장이사팀의 일원처럼 물건들을 수납장에 착착 담았다. 그리고 전날 미리 짜두었던 작전대로 올라오는 가구를 보며 어디 놓아야 할지 안내했고, 큰 가구 뒤 멀티탭을 달아내야 하는 곳도 미리 알렸다. 이틀 정도 같이 일하다 보니 이제 우리도 포장이사팀과 손발이 맞는 느낌이 들었다. 이날은 한 시간쯤 일이 빨리 끝나 바닥 스팀청소를 마지막으로 포장이사팀은 빨리 퇴근할 수 있었고, 나와 어머니는 빨리 소파에 널브러질 수 있었다. 


빛나는 사람들


이번 이사의 전 과정이 아름답고 신나기만 했던 건 아니다. 서로 일면식도 없고 앞으로 볼일도 없고 현장은 정신없는 상황에 다양한 사람이 협업하다 보면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때 누군가는 일이 되도록 일단 방법을 찾거나 자신의 일을 조금 더 넓게 해석했는데, 누군가는 이미 일어난 일이 누구의 책임인지 따지고, 자신의 일을 정말 좁게 해석하기도 했다. 그래도 전자의 사람들이 많아 거의 모든 일들이 순조롭고 깔끔하게 끝날 수 있었다. 


나와 어머니는 이사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포장이사팀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일을 최선을 다해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이렇게 가슴 뛰는 일이다. 포장이사팀 외에도 이렇게 빛나는 사람들이 더 있었다. 정수기를 설치하러 왔다가 아파트 출입문을 원격으로 여는 방법을 몰라 헤매던 우리에게 방법을 알려준 정수기 코디, 출근한 지 3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인수인계 자료를 보며 침착히 이사 전후 일처리를 해준 전 아파트 경비원,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이사 들어간 집에 가스계량기 숫자가 왜 조금 올라가 있는지 쾌활한 목소리로 설명해준 도시가스 기사가 자칫 지칠 수 있었던 이사를 즐거운 추억으로 만들어주었다. 


뭐 이사 가지고 이렇게 유난을 떠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사하며 운 좋게 만난 빛나는 사람들과 손발 맞출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새로 이사 간 부모님 집에선 좋은 일이 많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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