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ARILOG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바리 Dec 15. 2021

크리스마스 하나도 기대 안되네

크리스마스 케이크 대란(?) 속 슈톨렌을 사 보았다

살면서 30번이 넘는 크리스마스를 보냈는데 올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12월 초부터 부지런히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예약한다는 사실이다. 작년엔 12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 전까지 초콜릿이 담긴 달력을 하나씩 뜯는 크리스마스 달력(정확히는 Advent Calendar, 강림절 달력)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내년엔 어떤 새로운 크리스마스 문화를 알게 될지 궁금하다. 


나는 사실 내 생일도 그렇게까지 열심히 기념하지 않는 터라, 다른 사람(?)의 생일인 크리스마스도 전혀 기대 안되는데 자꾸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어 성가시다.

2015년 크리스마스가 전혀 기대되지 않았던 사람. Photo: 우승훈


아무튼 다시 케이크 이야기로 돌아가서, 얼마 전부터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 호텔이나 유명 베이커리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예약을 했다거나, 혹은 늦어서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실제로 케이크를 받았는데 사진과 너무 달라서 실망했다거나 어디 케이크는 품질이 좋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런 이야기들을 한참 구경하다 보니 조금 나도 사보고 싶어 져서 그 호텔 케이크 얼만지나 알아보자 했다가 정말 알아만 보았다.

News1 기사 캡처


그러곤 예전에 스타벅스 일할 때 크리스마스 홀케이크를 팔았던 기억이 나서 스타벅스 애플리케이션에 들어가 보니 이미 이쪽도 예약 불가, 타 프랜차이즈 카페는 예약을 받는 가까운 매장도 없었고 평소 케이크를 그리 좋아하지 않던 터라 예약씩이나 하며 사고 싶은 케이크는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빵을 열심히 하는 베이커리나 카페에 가면 한구석에 있던 비싼 빵이 생각났다. 이름도 잘 기억이 안 나서 구글에 크리스마스 빵을 검색하니 내가 평소 좋아하던 팡도르와 함께 독일 빵이라는 슈톨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산에 눈이 내린 것 같은 모습의 팡도르도 크리스마스랑 꽤나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슈톨렌을 조금 더 검색해보니, 이미 나만 빼고 또 사람들이 다 알던 빵인지, 슈톨렌 빵지순례(슈톨렌을 파는 빵집들을 하나하나씩 방문하는 것)를 하며 후기를 남긴 사람도 있었고, 슈톨렌의 독특한 향과 맛이 좋다거나 좋지 않다거나 하는 후기도 많았다. 그리고 슈톨렌은 보관이 쉽고 빵이 꽤나 탄탄해서(?)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는 경로도 많았다. 평소 빵을 한 번에 많이 못 먹기도 하고, 성격도 게으른 나에겐 너무나 딱인 빵이었다. 


그래서 올 크리스마스 시즌엔 슈톨렌으로 기분도 내고, 이 시즌에 함께 하지 못하는 가족에게도 슈톨렌을 선물로 보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마침 오늘 종로 쪽에 갈 일이 있어 광화문 우드앤브릭에서 작은 슈톨렌을 시식용으로 사보았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것을 크리스마스 기념 음식과 선물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지 느낌이 나는 종이에 포장된 우드앤브릭의 슈톨렌. Photo: 우승훈


맛만 보는 거니까 한두 조각만 사고 싶었는데, 조각으로는 팔지 않는다 해서 작은 슈톨렌 한 덩어리(13,000원)를 사서 집에 왔다. 슈톨렌 겉면엔 슈가파우더가 뿌려져 있어 달겠거니 해서 함께 마실 커피도 내렸다. 오늘 내린 커피는 헬로모닝 원두커피의 하우스 블렌드. 맛과 향이 엄청 좋거나 특별한 건 아니지만 무난한 맛과 품질에 가격은 저렴(1kg 16,900원)해서 집에 쟁여놓고 마시기 좋은 것 같다. 


낯선 모습의 슈톨렌. 비닐 랩에 쌓여있다. Photo: 우승훈


종이 포장지를 벗긴 뒤 보게 된 슈톨렌의 모습은 꽤나 낯설었다. 이렇게나 초면인 걸로 봐서 나는 슈톨렌을 뭔지 모르고 먹은 적도 없는 것 같다. 먹는 방법을 보니 중간 부분부터 조각을 내서 먹고, 먹고 난 뒤엔 자른 단면끼리 서로 마주 보게 붙인 뒤 밀봉하는 식으로 보관한다고 되어있어 가운데 부분에서 두 조각을 잘라내어 보았다.


슈톨렌 단면. 견과류와 말린 과일 조각이 듬뿍 들었다. Photo: 우승훈


자르는 과정에서 맛있는 슈가파우더가 자꾸 떨어져서 조금 속상했는데, 일반 칼이 아니라 오돌토돌한 빵칼로 잘랐으면 더 잘 잘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암튼 그렇게 잘라낸 조각을 베어 먹어보았고,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는 주기적으로(?) 미각을 깨우는 음식을 찾곤 한다.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가는 인도, 중국, 태국 음식 혹은 흔히 차이 티 혹은 스파이스 티라고 부르는 차 같은걸 마시곤 하는데, 한꺼번에 다양한 맛을 느끼며 미각을 깨우면 기분이 좋다. 그런데 이 슈톨렌도 기대 이상으로 나의 미각을 깨웠다.


슈톨렌에선 숙성된 빵과 럼주에 담근 건과일의 향, 견과류의 고소한 맛과 오독한 식감, 슈가파우더의 달달함이 한꺼번에 입안에 느껴졌다. 조금은 낯선 맛도 섞여 있었지만, 전체적인 조화를 깨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왜 슈톨렌 빵지순례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빵집의 슈톨렌은 이런 맛이었는데, 저 빵집의 슈톨렌은 어떤 맛일까 벌써 궁금하다.


나는 화려한 크리스마스보단 편안한 크리스마스가 좋다. 그런데 예약을 해야만 만날 수 있다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예쁘긴 하겠지만 그 비용과 경쟁, 비교 조사, 그리고 시간 맞춰 수령하러 가는 과정을 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일 것 같았다. 슈톨렌은 투박한 모습의 빵이지만 크리스마스 전에 시간 될 때 여유롭게 사둬도 괜찮고, 천천히 나눠먹기도 좋다. 게으른 나는 슈톨렌으로 2021년 크리스마스를 편안히 기념해보기로 했다. 아 크리스마스 하나도 기대 안되네.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은 재수 없지만 재미있는 장강명 작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