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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Aug 31. 2023

"글 잘 봤어요"라는 무서운 인사

나왈 엘 사다위(혹은 나왈 자이나브)의 "어떻게 그리고 왜 쓰는가"

블로그도 꽤나 오랫동안 하고, 작년엔 책까지 내고 보니 "글 잘 봤어요"라는 인사를 듣곤 한다. 글을 봐주는 사람이 있고, 더군다나 "잘"보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좋은 기분보다는 그 사람이 초면이든 구면이든 쑥스러움이 먼저 날 휘감곤 한다.


일기장을 들킨 사람처럼, 사생활이나 말로 뱉기는 부끄러운 생각을 들켰다는 쑥스러움도 있지만, 때로는 글이 지금의 나보다 더 깊이, 더 앞에, 혹은 더 거칠게 있다 보니, 지금 당신 앞의 내가 글보다 못난 것 같다는 부끄러움이 더 큰 것 같다. 


"글 잘 봤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버버 하지만, 그래도 글을 쓸 때의 내가 가장 건강하기에 글쓰기를 끓을 수가 없다. 이런저런 관계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내가 누구였는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잊고 이상해질 때가 있는데, 글을 쓰거나 과거 내가 썼던 글을 다시 읽으면 다시 정신이 들고 기분이 좋아진다.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 내가 어렴풋이 느끼는 것을 글로 엮어낸 사람들의 글을 볼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드는데, 2년쯤 전, 부고 소식을 듣고서야 찾아본 글이 그랬어서 기쁘지만 아쉬웠다. 이집트의 페미니스트, 작가, 활동가이자 의사인 나왈 엘 사다위(Nawal El Saadawi) 이야기이다. 

https://brunch.co.kr/@theafricanist/128


오늘은 어쩌다 보니 그가 쓴 한 장짜리 에세이 "어떻게 그리고 왜 쓰는가"(How to Write and Why)를 읽게 되었다. 나왈은 그의 성인 엘 사다위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엘 사다위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름이라 엘 사다위 대신 어머니의 이름인 자이나브(Zaynab)를 성으로 쓰길 더 좋아했지만 어릴 시절 학교 선생님은 나왈에게 자이나브를 지우고 그 자리에 엘 사다위를 쓰라고 했다.


나왈은 비밀 일기장을 만들어 자신의 '진짜 이름'을 써넣었다. 나왈 자이나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짜 이름'을 지우고 싶어 했고, "숨겨진 진실, 숨겨진 참 나(true self), 숨겨진 언어"를 표현하는 인간의 문화적 활동인 글쓰기에 빠져들었다. 


나왈 엘 사다위 / 자이나브. Photo: Twitter/@NawalElSaadawi1


그는 특히 홀로, 고요 속에서 글쓰기를 좋아했다. 홀로 조용히 있으면 머릿속을 오가는 생각이 들린다고 했다. 그래서 결혼한 이후에도 나왈은 잠자리를 빠져나와 혼자만의 조용한 공간에서 글을 쓰곤 했다. 하지만 그런 나왈이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의심한 그의 두 번째 남편은, 나왈이 그런 게 아니라 소설을 쓴다고 설명했지만, "나야? 글쓰기야?"라며 선택을 강요했다. 나왈에게 글쓰기는 숨쉬기와 같은 것이었고, 남편은 없어도 살 수 있어서, 그는 글쓰기를 택했다.


작가이자 의사인 그의 이력 때문에 "어떻게 의사이면서 소설을 쓰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은 '이과'와 '문과'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잘못된 이분법에서 나온 이 질문에 나왈은 이렇게 썼다. 


"내게 사실과 소설은 마치 몸과 마음처럼 분리할 수 없다. 창의적인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감정과 이성, 이성과 비이성, '과학적'과 문학의 거짓 대립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상상의 이야기를 쓴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현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글을 쓰기 위해 인쇄기(Gutenberg Press)부터 인터넷까지, 기계에 의지해야만 한다. 창의적인 문학과 비문학 쓰기는 우리 뇌세포가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룰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어둠으로부터 지식의 빛으로 나아가기 위해, 부정의한 세상의 혼돈에서 정의와 자유, 사랑이 있는 새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쓴다. 나는 지구와 하늘나라의 거대한 권력자에 거절하기 위해 쓴다. 양쪽 다 전쟁과 착취, 기만 속에 살아간다. 양쪽 다 사람을 인종, 젠더, 계층, 종교, 여타 특징에 따라 차별한다. 나는 나와 세상을 더 좋게 바꾸기 위해 쓴다."
- "How to Write and Why." Nawal Zaynab. 2009.


나왈의 글쓰기에는 숙고하고 서로 떨어져 있던 생각을 연결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경계"라고 생각한 것을 뛰어넘어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하는 글쓰기야말로 인간이 더 좋은 내일을 만드는데 쓸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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