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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Mar 24. 2021

우리는 한 배를 타고 있다

이집트의 페미니스트 나왈 엘 사다위, 세계를 전체로 보다

이집트의 페미니스트, 작가, 활동가이자 의사인 나왈 엘 사다위(Nawal El Saadawi)가 3월 21일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나왈 엘 사다위. Photo: Twitter/@NawalElSaadawi1


나왈 엘 사다위는 평생 이집트와 아랍뿐 아니라 전 세계 여성의 인권에 관해 쓰고 외쳤다. 사다트 대통령 시절에는 정부를 비판하고 페미니즘 잡지를 발행하는 일을 돕다가 수감되었고, 무바라크 대통령 시절에는 살해 협박을 받고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사다위는 아랍의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해 50권이 넘는 책을 냈는데, 나는 그를 그의 부고 소식을 통해 처음 접했다. 내가 상대적으로 북아프리카 지역에 관심이 적은 탓도 있겠지만, 언어별로 불평등하게 형성된 권력과 영향력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다위의 거의 모든 저작은 아랍어로 되어있는데, 그는 영어가 유창함에도 의식적으로 아랍어로 글을 쓰려고 했고, 영어와 프랑스어가 주류화 된 세태를 비판했다.


왜 우리는 영어나 프랑스어로 읽기를 강요당하는 걸까요? (중략) 식민주의적 자본주의 권력자들은 대부분 영어나 프랑스어를 씁니다. (중략) 하지만 저는 아랍어로 글을 쓰고 식민주의와 자본주의, 인종차별과 강대국들의 가부장적 태도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세계의 지성 권력에 여전히 무시당하고 있어요. (중략) 소위 제3세계라 불리는 다른 여성 작가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의 여성 작가도  식민주의적 자본주의 가부장 권력에 의해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인용구 출처: African Arguments (2018) Nawal El Saadawi: “All people are mixed blood, the more mixed you are the better”)



사다위의 대표작으로는 이슬람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억압을 다룬 "The Hidden Face of Eve"(1977년), 여성 사형수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Woman at Point Zero"(1975년) 등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어로 번역된 책은 없다.


The Hidden Face of Eve 책 표지.
Woman at Point Zero의 인도네시아판 표지


사다위는 당시 이집트 사회에선 급진적이고 도발적이라고 불릴 법한 여성의 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와 성매매, 조혼, 여성 성기 절제(Female Genital Mutilation/FGM-이집트 의회는 2008년 여성 성기 절제를 불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여전히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2014년 전국 인구 보건 조사 결과에 따르면 15세에서 49세 사이 기혼여성의 92%가 FGM을 경험했다고 한다.) 문제와 같은 주제들을 다루었다. 이런 행보에 대해 몇몇 언론은 그를 '이집트의 시몬 드 보부아르'라고 불렀는데, 사다위는 이런 비교를 탐탁지 않아하며 "내가 보부아르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라 했다고 한다.


영국 Channel 4와의 인터뷰(공유 영상)에서 사다위는 페미니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https://youtu.be/djMfFU7DIB8


페미니즘은 서양의 발명품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의 생각과 달리 페미니즘은 미국 여성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페미니즘은 문화와 전 세계 여성의 투쟁 속에 새겨져 있는 거예요.
우리는 여성을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종교적으로 해방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역사적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라고 불러요. 왜냐하면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여성에 대한 억압이 이집트나 아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모든 나라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임을, 역사적인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종교에서 여성은 저항했어요. 인도와 이집트, 힌두교와 유대교, 기독교와 이슬람까지 여성들은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어요.
또한 우리는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계급적 억압에 맞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또한 자본주의에 맞섭니다. 자본주의는 가부장 제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부장제에 맞서는 것이지 남성에 맞서는 게 아니에요. 가부장제라는 체제에 맞서는 것입니다. 종교, 경제, 문화, 심지어 과학까지 모든 것에서의 남성이 지배하는 것에 말이죠.


페미니즘에 대한 사다위의 보편적 언급에서 볼 수 있듯, 사다위는 아랍 세계에서 특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이슬람의 문제로만 보지 않았다.


전 세계를 다니며 저는 여자 아이들이 아주 비슷한 방식으로 길러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는 한 배를 타고 있는 거예요. 가부장적이고 종교적이며 자본주의적인 체제는 보편적입니다.

(인용구 출처: Egypt Today (2018) I don't fear death: Egyptian feminist, novelist Nawal El Saadawi)


끝내 입후보 하진 못했지만, 2004년엔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기도 했고, 2011년 '아랍의 봄'엔 80세의 노령에도 시민들과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쳤을 만큼 현실 정치와 민주주의에도 관심이 많았던 사다위는 정치적으로 억압적인 체제 또한 보편적인 관점으로 보았다.


2018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군부 출신의 압델 파타 엘 시시(Abdel Fattah el-Sisi)가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이집트에는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가 존재하냐는 앵커의 질문에 자본주의적이고 인종차별적이며 종교적인 체제가 있는 한 민주주의는 없다며, 이는 이집트 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잠시만요, 이집트의 민주주의는 영국이나 미국의 민주주의보다 더 많지도, 적지도 않아요. 저는 세계를 전체로 봅니다. 따라서 이집트가 특별히 민주주의를 결여하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저는 전 세계를 다녔어요.  하지만 아직 민주주의 국가를 보지 못했습니다. (중략) 세계 어디에도 민주적인 선거는 없어요. 돈과 권력이 있을 뿐이에요. 트럼프가 민주적으로 선출되었다고 생각하나요? 오바마 시절에 저는 미국에 망명한 지 30년쯤 되던 때였어요. 저는 빌 클린턴과 오바마의 선거 유세를 보았습니다. 이들의 유세가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시나요? 그저 돈, 돈, 돈, 그리고 권력이었어요. 저는 카이로의 타히르 광장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보았어요. 미국은 무슬림 형제단(Muslim Brothers: 보수 이슬람 사회운동/정치 단체)을 돈으로 지원했어요. (중략) 선거는 민주주의와 상관이 없고, 민주주의는 선거와 상관이 없어요. 모든 곳에서 독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결탁한 독재가 있는 한, 자본주의적이고 인종차별적이며 종교적인 체제가 있는 한 진정한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어요.



"우리는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엘 사다위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많은 이들이 아랍 세계의 여성 인권을 걱정하고, 아프리카의 민주주의를 걱정한다. 이집트의 엘 사다위는 아랍과 아프리카가 교차하는 이집트에서 억압의 현상이 아닌 억압의 체제를 들여다보았고, 전 세계 시민들이 똑같은 억압을 겪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선진국'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사람들에겐 이런 주장이 생소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일반화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엘 사다위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정말 '한 배'와도 같은 '한 체제'아래서 억압받고 고통받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최근의 뉴스를 떠올려보자. 매일같이 수많은 여성들이 폭력의 희생자가 되거나 생존자가 되고, 역시나 많은 노동자가 위험한 혹은 착취적인 노동 환경에서 일하다 다치고 사망하며, 소위 말하는 '선진국'에서는 흑인과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 차별 범죄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 어디에도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없다.


이 정도면 우리와 '한 배'에 탄 것일 수도 있는 엘 사다위의 이야기를, 아프리카의 이야기를, 세계 어딘가에서 이 거대한 억압과 폭력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해볼 만하지 않을까?




이집트 청년들과 함께 있는 엘 사다위. Photo: Twitter/@NawalElSaadawi1



저는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죽을 것입니다. 죽기 전까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인용구 출처: Twitter/@NawalElSaadawi1)





척박한 땅에서 그 존재가 투쟁이었던 페미니스트, 나왈 엘 사다위의 명복을 빕니다.

Rest in Power, Nawal El Saada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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