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낙하 쇼
2018년 르완다에서 일할 때 살았던 집을 생각하면 네 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방 하나를 아예 잠가놓고 안 썼는데도 너무 컸던 크기, 동네에서 외국인이 살던 집은 여기 하나뿐이라 모토(오토바이 택시)를 타면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내려줄 정도의 유명세(?), 밖에서 보면 유리처럼 반사되는 구조라 새들이 종종 두드리곤 했던 창문, 그리고 마지막으로 '웅-'하는 소리를 내며 마을 위를 날아다니던 드론이다.
내가 살던 곳은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1시간 30분 정도 남서쪽으로 내려오면 있는 중소도시의 외곽이었는데, 이곳엔 특이하게 드론 비행장이 있었다. 한 미국 회사의 시설로, 드론을 이용해서 수혈을 위한 혈액 등을 빠르게 운송하는 '혁신'을 시도하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천 개 언덕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언덕이 많고 도로가 굽이굽이라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고, 세계은행 총재가 방문할 만큼 글로벌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웃에 사는 나에게 이 '혁신'적인 곳의 문제는 드론이 우리 동네 위를 너무 마음대로 날아다닌다는 것이었다. 아마 매일 정기적으로 시범비행을 하는 것 같은데, 동네 위, 우리 집과 이웃집 마당 위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날아다녔다. 카메라가 달렸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매일같이 마당 위를 날아다니면서, 내가 사는 2년 동안 그 회사의 누구도 마을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거나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그 드론에 카메라가 달렸는지, 왜 그렇게 마을 위를 빙글빙글 도는지, 어떤 정보를 수집하는지, 끝까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그런 '혁신'을 향해 날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드론이, 2018년 어느 날 한날한시 모두 추락했던 적이 있다. 다행히도 각 드론엔 비상용 낙하산이 있어서 모두 천천히, 안전하게 떨어졌는데, 나도 모토를 타고 퇴근하던 길에 그렇게 낙하산에 매달려서 떨어지기 시작하는 드론들을 보았다. 여러 대의 드론이 그렇게 떨어지는 모습도 인상 깊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행동도 인상 깊었다. 어른들은 마당에 놀고 있던 아이들을 얼른 지붕 아래로 불러들이며 챙겼고, 드론이 다 떨어진 뒤엔 모두가 그 드론이 떨어진 바나나 밭으로 달려갔다.
늘 머리 위를 날아다니지만 가까이에서 본 적 없는 그 드론을 직접 본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마치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경기를 보듯 우리는 그 드론을 구경했고, 그 드론을 구경하는 서로를 보며 재밌어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만져볼 생각은 하지 못하던 와중에, 한 3분쯤 지났을까? 드론 비행장에서 트럭이 와서 드론을 수거해 갔다. 나는 그들이 드론을 수거해 가기 직전에 드론 사진을 몇 개 찍었는데, 다음날 어떻게 알았는지 그 회사와 관련이 있는 지인이 연락을 해서 어제 찍은 사진은 어디도 올리지 말고 혼자만 보라고 당부했다. 지인을 통해서긴 하지만, 이제야 마을 사람의 존재를 깨닫고 연락을 해온 회사가 얄미웠다.
그 회사는 정말 사람들을 살리는 '혁신'을 일궈냈을까? 그 뒤로는 소식을 잘 찾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때 그 '드론 낙하 쇼'같은 걸 좀 자주 해서 이웃들에게 볼거리라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재미도 엄청난 '혁신'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