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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Sep 13. 2023

코로나19 백신은 아프리카에서 더 비쌌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대형 제약사와 맺은 코로나 백신 계약서 공개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은 질병관리청에 코로나19 백신 계약서 일부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코로나19 백신 피해자 측에서 질병관리청에 제기한 정보공개청구가 거부된 이후 제기된 행정 소송에 대한 판결이었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은 해당 계약에 비밀유지 조항이 있으며, 향후 이들 제약사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항소를 결정했고, 아직도 코로나19 백신 계약서는 비공개로 남아있다.

관련기사: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230304.99099000845


이번달 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화이자와 얀센 등 코로나19 제약사와 체결한 코로나19 백신 계약서 내용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지난해 중순부터 남아공 복지부를 상대로 코로나19 백신 계약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해 온 Health Justice Initiative가 제기한 정보 공개 소송에 프레토리아 고등법원이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린 결과다.


현재 Health Justice Initiative 홈페이지에 공개된 계약서는 총 4건(COVAX, 존슨앤존슨, 화이자, 인도세럼연구소)이며, Health Justice Initiative와 이해당사자 그룹(연구소, 시민단체 등)은 이를 분석해 "대형 제약사의 협박: 범유행 기간 백신 공급의 비밀(The Big Pharma Bullies: Secrecy for Vaccine Supplies in a Pandemic)"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 보기: https://healthjusticeinitiative.org.za/pandemic-transparency/#contracts


이 보고서에서 발견한 주요한 내용으로는 

백신 제조사들은 남아공 정부에 더 비싼 가격을 청구함: 존슨앤존슨(얀센)은 EU대비 15% 더 비싼 가격, 화이자는 AU대비 33% 더 비싼 가격, 인도세럼연구소는 EU에 비해 150% 비싼 가격을 남아공 정부에 청구했다.

남아공 정부가 대형 제약사와 맺은 백신 계약 가격. 출처: 알자지라

가격은 더 비싸게 받지만 공급 연기에 대한 보상 조항 등은 없음

화이자의 경우 화이자가 백신 공급에 실패할 경우 4천만 달러 선금 중 50%만 환급함

남아공 정부가 구입한 백신을 다른 나라에 기부하거나 판매하려면 제조사의 허가를 받아야 함 (이는 국가 간 백신 공유를 방해함)

국제 백신 접근성 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COVAX조차도 자신의 의무인 공급 수량이나 가격, 일정 등은 명시하지 않고 남아공 정부의 의무는 과도하게 요구하는 불평등한 계약을 맺음


이 보고서의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된다.


4건의 백신 계약 모두에서 제약사들의 강압적인 태도와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개발도상국의 백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의 냉정한 태도가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계약 조건은 압도적으로 일방적이고 다국적기업과 그들의 지적재산권(IP) 제국을 지키는데 유리했습니다. 이로 인해 글로벌 남반구 정부와 이들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글로벌 위기(2020~2022년)에 부족한 공급을 확보해야 하는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고, 비밀주의, 투명성 부재, 공급 지연 또는 미공급, 폭리를 위한 가격 부풀리기 등 비정상적으로 많은 요구와 조건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부족한 공급으로 인해 남아공 정부의 주권은 침해되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비양심적이고 제국주의적이며 비윤리적입니다.


또한 이들은 대형 제약사들의 이러한 행태를 백신 부정의를 넘어 '백신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비판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아프리카인들을 위한 줄이 따로 있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백신 공급이 막 시작되었을 때, 아프리카 국가들을 포함한 남반구 국가들은 백신을 얻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사람들이 코로나19를 서서히 잊어가는 듯한 지금까지도 저소득국가의 코로나19 접종률은 정세계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이렇게 비싼 가격을 주고서라도, 불공정한 계약을 맺어서라도 백신을 들여오고자 노력했던 남아공 또한 2회 접종 완료를 기준으로 할 때 접종률이 50%가 넘지 않는다.


코로나19 범유행 기간 동안 남아공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제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화이자, 존슨앤존슨, 아스트라제네카, 노바벡스의 백신 개발 임상 시험이 남아공에서도 진행되었고, 2021년 11월, 오미크론 변이가 발견되었을 때 남아공 정부는 신속하게 국제사회에 이 사실을 알렸으며(하지만 돌아온 것은 입국금지라는 처벌이었다), 인도와 함께 백신 제조사들의 지적재산권 독점을 완화하고 백신 접근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취지의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의 특정 조항 유예 안'을 세계무역기구에 제안하기도 했다. 

남아공과 오미크론에 관한 글: https://brunch.co.kr/@theafricanist/143


이러한 남아공조차 범유행 기간 동안 코로나19 백신 수급을 위해 부당한 계약을 강요당했고, 심지어 약속된 공급 또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반응이었을까? 2021년 말, 다카르 평화 안보 국제 포럼에서 남아공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자국 인구보다 더 많은 백신을 사들이고 있는 서방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던 적이 있다. 


"그(시릴 라마포사 대통령)는 2021년 말, 다카르 평화 안보 국제 포럼에서 서방 국가들이 자국 인구보다 더 많은 백신을 주문하고도 아프리카 국가들이 백신을 필요로 할 때면 '식탁의 부스러기'만 준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아프리카를 '파트너'라 부르면서 그런 욕심을 부리는 모습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남아공이 인도와 더불어 세계무역기구에 제안한 코로나19 기술에 관한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의 특정 조항 유예안'이 백신 접근성 향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여전히 채택되지 않았다며, 백신을 직접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필요한 의약품의 접근성을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확보하는 길이자 경제 회복의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했다. (중략) 이 유예안이 통과된다면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과 관련된 특허 독점이 완화되고, 개발도상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이에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과 세계보건기구 등이 적극적으로 지지를 밝혔지만, 코로나19 백신 개발 기업이 다수 있는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반대가 계속되어 아직 통과되지 않고 있다" - 내일을 위한 아프리카 공부. 242-243쪽.


이때도 존슨앤존슨은 벨기에와 같은 유럽 국가들에 연구개발 투자 철회 가능성을 언급하며 인도와 남아공의 제안을 저지하기 위한 로비를 펼쳤다. 그렇게 화이자와 존슨앤존슨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팔아 벌어들인 수입으로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가 되었다. 


다음 전염병 대유행에서도 각국은 이렇게 비윤리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제약회사들에게 휘둘려야 할까? 


연대와 파트너십을 말하지만 사실은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조차 시장에 맡겨진 우리 지구촌, 이대로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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