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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Jun 17. 2024

아프리카 어린이날, 청소년에게 권력을

76년 6월 16일 소웨토 봉기가 보여준 청소년의 정치적 힘과 가능성

1976년 6월 1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웨토(Soweto)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영어와 함께 아프리칸스(어)가 교육 언어로 강요되는 것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다. 아프리칸스는 지금도 남아공의 공용어로 널리 쓰이지만, 18세기 남아공 지역에 정착했던 네덜란드인들이 사용했던 언어였기에 당시 남아공의 흑인들에게는 압제자의 언어로 인식되었고 다수의 흑인 학생들은 아프리칸스를 알지 못했다.


소웨토에서 대규모 학생 저항에 직면한 아파르트헤이트 정부는 중무장한 경찰을 투입, 잔혹한 폭력을 휘두르며 청소년을 살해했다. 200명에 가까운 청소년이 희생되고 천명 이상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소웨토 봉기(Soweto Uprising)라고 부른다. 이후 아프리카연합은 이날을 아프리카 어린이날(International Day of African Child)로 지정했고, 남아공 정부는 청소년의 날로 지정해 매년 기념하고 있다.


소웨토 봉기. Photo: Alf Kumalo Family Trust


소웨토 봉기가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폭압과 아프리카인을 영원히 백인 아래 두는 것을 목표로 했던 반투 교육의 도입에도 멈추지 않고 흑인 그리고 학생들의 정치의식을 키워나간 흑인의식운동(Black Conciousness Movement)과 남아프리카 학생회(South African Student Organisation)가 있었다. 이들 운동 조직과의 교류 속에서 소웨토 학생 대표 위원회(Soweto Students Representative Council)가 1976년 6월 16일 아침, 아프리칸스를 강요하는 정책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평화시위를 조직했고, 예상보다 더 많은 청소년이 자발적으로 합류했다.


하지만 시위가 시작된 지 두 시간여 흘렀을 때, 경찰은 총을 쏘기 시작했고 희생자가 나왔다. 경찰 발포로 청소년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이내 더 많은 학생들이 모여서 시위를 벌이며 소웨토 곳곳에 함성과 불길이 오르고 총성이 울려 퍼졌다. 첫날의 학살 이후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더 많은 경찰력을 투입했고, 18일까지 이어진 잔혹한 진압 끝에 봉기는 막을 내렸다.


경찰 앞에 무릎꿇은 봉기 참가자. 손가락으로 V를 그리고 있는게 흥미롭다. Photo: Jan Hamman


학교에 머무르며 고분고분하게 흑인을 위해 마련된 교육을 받아야 할 청소년들이 학교를 뛰쳐나와 자신의 의지와 의식으로 반투 교육, 나아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반대하는 모습이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게 얼마나 큰 위협으로 다가왔을지는 그들이 이 시위를 막기 위해 대낮부터 쏟아부은 폭력의 잔혹함에서 엿볼 수 있다. 이날 봉기는 결국 진압되었지만, 이때 드러난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민낯과 울려 퍼진 청소년의 외침, 새로운 체제와 문화의 모색은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지금은 많은 경우 이날을 마치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더 많이 학교에 가는 것, 더 좋은 교육 시설과 교구를 마련하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날처럼 기념하곤 하지만, 사실 진짜 기억해야 할 것은 소웨토 봉기에서 드러난 청소년의 정치적 힘과 주체성, 자율성이다. 


2024년 아프리카 어린이날을 기념해 교육 금융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한 아프리카연합


최근 한국에선 기후위기에 맞서 더 많은 청소년이 권리를 외치고 근원적인 변화를 요구하며 행동에 나서고 있다. 페미니스트 운동을 비롯해 여러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청소년의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다. 동시에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기득권 성인들이 학생인권조례나 청소년 운동에 가하는 공격도 심해지고 있다. 일 년에 하루이틀만 어린이의 날이고, 나머지는 어른이 주인공이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어른의 날인 세상은 여전히 공고해 보이지만, 청소년들이 가진 힘과 열망,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을 언제까지고 억누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루 지나긴 했지만 아프리카 어린이날, 소웨토 봉기 기념일을 맞아 역사를 바꾼 소웨토 청소년들이 보여준 힘과 가능성, 그리고 당시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교육과 경찰력으로 자행한 억압과 폭력을 마음에 되새기며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고민해 보면 좋겠다. 학교 교육이 청소년을 온전한 정치적 주체로, 자율성을 지닌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데 더 많은 학생이 학교에 가도록 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런 교육이 청소년을 누군가의 아래에 머물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반투 교육과 본질적으로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은 자신의 권리와 권력을 충분히 누리며 발휘하고 있을까?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너무나 많은 차별이 당연시되는 것은 아닐까?


소웨토 봉기에 나선 청소년들. Photo: Peoples Disp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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