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frifilm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바리 Aug 12. 2018

편견의 문법으로 만든 영화

[영화] Sara's Notebook (2018)

넷플릭스를 통해 Sara's Notebook이라는 영화를 봤다. 스페인에서 제작된 영화로 스페인에서는 꽤 흥행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개봉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영화의 무대는 콩고민주공화국(이후 DR콩고) 동부, 우간다 캄팔라, 르완다 챵구구이다. 아마 영화 자체는 우간다에서 모두 촬영한 것 같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정확히 나오지 않는데,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보이는 기기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선 최근을 다루고 있는 듯하다.



영화는 백인 기자들이 DR콩고 동부의 열대우림에서 반군을 몰래 촬영하다가 들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들이 들키기 직전에 반군 캠프에 있는 한 백인 여성의 사진도 찍는데, 그가 바로 영화 제목에 등장하는 사라이다.


반군들과 함께 찍힌 사라. 예고편 캡쳐 Youtube / Buenavistacine


사라는 한 국제 NGO(아마도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일하다가 2년 전 DR콩고에서 실종된 이후 단 한 번의 연락도 없다가 이렇게 사진에 찍혔다. 이 사진을 본 사라의 언니, 라우라는 스페인에서 우간다로 날아와 사라가 일했던 NGO에서 사라의 물품을 찾고, 사라의 일기장에 적힌 전 애인 스벤에게 연락을 취한다.


캄팔라의 올드 택시 파크. 예고편 캡쳐 Youtube / Buenavistacine


스벤을 만난 라우라는 그의 도움을 받아 DR콩고 진입을 시도하지만 착륙장소인 비행장이 반군에게 점령당하는 바람에 스벤만 총상을 입고 르완다 챵구구의 세이브 더 칠드런 시설로 비행기를 돌려야 했다. 그 시설에서 스벤은 자미르라는 콩고 난민을 라우라에게 소개시켜주고, 자미르와 라우라는 키부 호수를 건너 DR콩고에 도착해 반군 지역으로 진입한다. 그곳에서 라우라는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자미르의 과거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그 뒤의 이야기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언급하지 않겠다.

  

라우라는 왈리켈레로 향하던 중 반군을 마주친다. 예고편 캡쳐 Youtube / Buenavistacine
반군에게 잡힌 라우라. 예고편 캡쳐 Youtube / Buenavistacine

영화 예고편: https://youtu.be/brjhVjts4SA


이 영화는 2018년 개봉했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다루는 방법은 10년 전 영화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전형적인 백인 주인공의 '아프리카' 배경 영화다. '야만적인' 아프리카 한복판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백인 주인공 영화는 이제 더 안 만들어도 될 것 같은데 또 나오고 말았다.


'아프리카' 캄팔라

영화 초반부의 배경인 캄팔라를 그리는 방식부터 불편함을 느꼈다. 애써 캄팔라의 발전된 모습은 피하고, 교통체증, 거리의 노점상, 특이한 사람, 혼란스러움 등을 부각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캄팔라의 특정 지역이 혼잡한 것은 사실이고, 처음 간 사람에게는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소위 말하는 '무중구'(외국인)들이 다니는 곳은 거의 나오지도 않고 '아프리카'하면 떠오를만한 장소들만 영화에 담겼다. 라우라가 다른 외국인을 만나는 장면에서 조금 나온 '무중구'장소들마저도 굉장히 이국적인 혹은 식민지 시대 백인들이 흑인들을 부리던 분위기라고 느꼈다. 왜 그냥 카페나 쇼핑몰에서 만날 수 없었던 것일까? 마지막으로, 라우라를 만난 다른 백인들이 환영인사로 '아프리카에 온 것을 환영해요'라고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캄팔라에 온 것도 아니고, 우간다에 온 것도 아니고, '아프리카'에 온 것을 환영했다. 이 부분은 어쩌면 아프리카 대륙에 지내는 유럽/북미인들의 문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캄팔라. 고층 빌딩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예고편 캡쳐 Youtube / Buenavistacine
영화에 등장하는 캄팔라. 예고편 캡쳐 Youtube / Buenavistacine
지난달 내가 찍은 캄팔라. Photo: 우승훈
지난달 내가 찍은 캄팔라. Photo: 우승훈

병원도 여객선도 없는 챵구구?

라우라는 사라의 옛 애인 스벤과 함께 경비행기를 타고 DR콩고로 넘어가지만, 반군이 착륙장소를 점령하는 바람에 스벤은 총상을 입고 르완다 챵구구로 비행기를 돌린다. 다른 도시도 있는데 왜 꼭 챵구구로 가야 했냐는 개연성은 둘째 치고, 챵구구에서 스벤이 치료를 받은 세이브 더 칠드런 시설은 믿을 수 없이 낙후되어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는 게 충격적이었다. 챵구구에 세이브 더 칠드런 시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영화에 나온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큰 의문은 총상 환자를 왜 병원이 아닌 NGO로 데리고 갔냐는 것이다. 르완다 서부의 거점 도시 중 하나인 챵구구에는 병원과 보건소가 꽤 있다.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아프리카의 낙후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억지 설정이다.


라우라는 부상 입은 스벤 대신 시설에서 만난 콩고 출신의 자미르와 국경을 넘는다. 국경 넘는 장면도 좀 이상했다. 영화에선 챵구구에서 엔진 달린 나룻배 같은 것을 타고 콩고 고마로 이동하는데, 고마 바로 옆 르완다 도시인 기세니와 챵구구는 페리를 통해 이동할 수 있다. 영화에 나온 것 같은 배가 없는 건 아닌데, 왜 꼭 그 배를 태웠어야 했나는 의문이 든다. 페리가 특별히 럭셔리하거나 비싼 것도 아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라우라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최종 목적지가 왈리칼레면 챵구구에서 육로로 국경을 건너 왈리칼레로 가는 방법도 있다. 챵구구는 르완다와 DR콩고의 국경 도시고, 고마~왈리칼레와 챵구구~왈리칼레는 지도상으로는 비슷한 거리다. 이 모든 것이 그냥 예쁜 그림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물론 이런 배를 태우면 그림이 더 예쁘긴 하다. 예고편 캡쳐 Youtube / Buenavistacine


사람 죽이는 아프리카인, 사람 살리는 백인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부분이다. 이 영화에서 사람을 죽이거나, 죽는 역할은 거의 모두가 아프리카 사람들이고, 사람을 살리거나 살리려고 애쓰는 역할은 거의 모두가 백인이다. 사람을 살린 아프리카인은 딱 두 명 나오는데, 그마저도 한 명은 '주술'적인 치료를 하는 치료사이다. 아프리카는 야만, 백인은 문명이라는 아주 오래된 이분법적 사고가 이 영화에 녹아 있다. 이 영화는 소년병과 반군, 그리고 그 배경에 있는 서구 국가들을 은근히 비판하는 듯하면서 아주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선 사람이 너무 많이 죽는다. DR콩고 동부에 최소 50개 이상의 반군 조직이 있다는 것, 국가의 통제력이 약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라우라가 목격하는 것 처럼 가는 길마다 반군들이 사람들을 쏴 죽이는 것을 볼 수 있을 만큼 심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라우라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죽고, 못해도 100여 명은 반군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웁살라 대학교에서 만든 UCDP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지역에서 사망한 사람은 약 400명이다. 통계가 모든 사상자를 포함하지 못했다고 해도, 영화는 사람을 너무 많이 죽였다. 그냥 아프리카인들이 다른 아프리카인들을 짐승처럼 죽이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내전의 참혹함을 표현하려 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다.


     

불분명한 주제

이 영화의 주제는 아주 불분명하다. 초반부에는 DR콩고의 혼란의 원인이나 그에 대한 서구 사회와 NGO의 책임을 고발할 것처럼 하다가 흐지부지되고, 주인공은 외부인의 개입이나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는 척하다가 또 흐지부지하고 결국엔 그냥 전형적인 백인 구원자(White Savior)처럼 사고하는데 그친다. 이렇게 단순히 접근할 거라면 왜 그리도 복잡한 콩고의 반군 이야기랑 엮었는지 잘 모르겠다.



DR콩고와 스페인은 큰 연과성도 없는데 DR콩고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었다고해서 궁금했다. 그리고 소년병을 다룬 영화 Beast of No Nation (2015)을 선택한 안목이 있는 넷플릭스였기에 기대도 살짝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나쁨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잘난척하는 유럽인들의 어드벤처를 위해 아프리카는 철저히 부정적으로 묘사되었다. 이런영화가 2018년에 나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참고: DR콩고 동부의 반군들

1994년 르완다에서 제노사이드가 일어나며 수많은 난민, 특히 제노사이드의 책임자들이 DR콩고 동부로 도망쳐 세력화하고, 그로 인해 르완다와 전쟁을 겪으면서부터 지금까지 DR콩고 동부는 크고 작은 분쟁을 겪고 있다. 분쟁의 원인은 다양하다. 복잡한 민족 구성, 풍부한 자원, 외세의 개입, 빈곤, 중앙정부의 부족한 통제력 등의 이유로 이 지역에는 반군들이 우후죽순 생겨고, 세계에서 UN 평화유지군이 가장 많이 파견되는 지역 중 하나가 되었지만, 여전히 지속 가능한 평화는 구축되지 못하고 있다. 오랜 분쟁으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었고, 또 다른 수백만의 사람들이 고향을 잃었으며, 백만 명의 여성이 강간당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은 민간인이며, 죽음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반군들에게 착취당하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