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스트 그레이더 (2011)
2003년 당시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케냐의 므와이 키바키 대통령이 무상초등교육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한다. 이 소식을 들은 84세의 키마니 마루게 할아버지도 초등학교에 등록하러 찾아가지만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책이랑 필기구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날에는 교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마루게 할아버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책과 필기구를 사고, 초등학생처럼 셔츠에 파란 스웨터, 반바지, 하얀 양말에 구두까지 갖춰 입고 다시 학교를 찾아갔고, 결국 교문을 넘어서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시작한 배움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저런 노인에게까지 배움의 기회를 줘야 하느냐, 어린아이들에게 써야 할 자원이 낭비되는 것 아니냐라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로 인한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어려서는 백인 농장에서 일하느라, 청년이 되어서는 마우마우 투쟁으로 잡혀서 감옥살이를 하느라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는 마루게 할아버지, 그는 왜 다시 학교에 가야 했었을까? 그에게 배움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그가 글을 배워서 꼭 읽고 싶다는 편지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마루게 할아버지 역할을 연기한 올리버 리톤도는 케냐 출생으로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졸업 이후엔 BBC 등 언론사에서 저널리스트로 경력을 쌓는 동시에 영화배우 활동도 해왔다.
영화 속에서 마루게 할아버지의 가장 큰 조력자로 나오는 오빈츄 선생님 역할을 연기한 나오미 해리스는 영화 속에서 중간중간 스와힐리어로 연기를 하기도 하지만, 런던 출생으로 케냐와 상관이 없다고 한다. 나오미 해리스는 007 시리즈의 '이브 머니페니'로도 유명하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을 수 있다.)
이 영화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마루게 할아버지가 84세의 나이에 초등학교에 등록했다는 것, 그리고 영국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마우마우' 운동의 투사였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세부적인 이야기는 약간 다르게 설정되었다.
마루게 할아버지의 출생 연도는 공식 서류가 없어서 정확하진 않지만, 본인은 스스로가 1920년 태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4년 학교에 등록할 당시의 할아버지 나이는 84세였고 30명의 증손주들이 있었으며, 심지어 손주 두 명은 같은 초등학교의 '선배'였다고 한다. 마루게 할아버지는 지금까지도 기네스 기록에 '가장 늦은 나이에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더 나이가 많은 초등학생이 있다고 보도되기도 했지만, 기네스 기록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이 할아버지가 학교에 가게 된 '동기'가 영화와 실화의 가장 큰 차이다. 영화에서는 할아버지가 꼭 읽어야 하는 편지가 있어서 학교에 갔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 마루게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는 돈 세는 법을 배우고, 성경 읽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고 한다. 확실히 영화에서 그린 동기가 더 극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 늦은 나이에 글을 읽고 쓰는 것을 배우려는 사람들 대부분은 돈 세는 법이나 각종 계약 문서를 읽는 법을 배워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나, 성경을 읽기 위해서 배움을 시작한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다니는 노인'으로 유명해진 마루게 할아버지는 2005년 UN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아래 영상은 뉴욕에 방문했을 때의 영상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그렇고, 실제로도 배움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영화에서처럼 주변 사람들의 시기를 사서 고생하기도 했고, 학교 내에서 마루게 할아버지를 지키던 오빈츄 선생님은 전근 보내지기도 했다. 마루게 할아버지는 이를 항의하기 위해 염소를 팔아 나이로비를 다녀오기도 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3학년쯤 되었을 때, 2007-2008 선거 후 폭력사태가 터졌고, 그로 인해 할아버지는 집을 잃고 난민캠프에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난민 캠프에 있으면서도 멀리 떨어진 학교에 다녔다고 전해진다. 이후 나이로비로 옮겨간 할아버지는 그곳에서도 학교를 다니며 학업을 이어나갔지만, 결국 200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결국엔 초등교육을 마치지 못했다.
마루게 할아버지의 실제 모습이 보고 싶다면 아래 영상들에서 볼 수 있다.
마루게 할아버지는 떠났지만, 지금도 아프리카 각국에서는, 아니 전 세계에서는 또 다른 마루게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초등교육에 도전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조차 배움의 기회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Elimu ni nguvu' (배움이 곧 힘이다/스와힐리어)라고 한다. 누구나 마음껏 배울 수 있는 세상이, 누구나 교육을 통해 힘을 기를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공유한다.
아그네스: 이게 뭐예요? (할아버지의 죄수 팔찌를 가리키며)
마루게: 할아버지는 죄수였단다.
아그네스: 왜요? 나쁜 짓 했어요?
마루게: 와중구(스와힐리어로 백인 혹은 외국인을 뜻함), 영국인들이 우리 땅을 뺏었어. 그래서 그들보고 땅을 돌려내라고 했지. 근데 그들은 우리 보고 조용히 하라 했어. 그래서 우리는 아주 크게 소리쳤지.
소년: 그래서 땅을 돌려받았어요?
마루게: 몇몇 사람들만, 1963년에. 그게 바로 '우후루'야. '우후루'가 무슨 뜻인 줄 아니? 바로 '자유'란다.
Agnes: Hii ni nini?
Maruge: I was prisoner
Agnes: kwa nini? ulifanya vibaya?
Maruge: Wazungu, the british stole our land, so we said they must give it back. They told us to be quiet. So we spoke very loud.
School Boy: Walirudisha mashaba?
Maruge: To some, in 1963. That was uhuru. What does 'uhuru' mean? It's 'freedom'.
표지 사진: 교실의 마루게 할아버지. Photo: 영화 공식 홈페이지 / Kerry Brown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