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소셜 네트워크와 농업기술"
정말 오랜만에 학술회의에 갔다. 독일 최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의 이름을 땄다는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ES)이 개최한 사회관계망과 농업기술, 농촌발전과 관련한 국제 학술회의였는데, 독일, 우간다, 탄자니아, 케냐의 연구자들이 각각 독일의 농촌개발모델, 사회관계망과 농업기술 전파, 우간다의 유기농 농업, 고등교육과 농촌발전, 케냐 낙농업의 기술 적용 사례를 발표했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작년 2017년 르완다에서 정식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르완다의 로컬거버넌스부(Ministry of Local Governance)와 협력하며 사회보장분야에 관여하고 있다. FES가 르완다에 진출한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독일의 원조규모가 국가 단위로는 르완다에서 세 번째로 크고, FES가 독일의 유력 정당인 사민당과 협력하는 기관이라 르완다에서 입지가 빠르게 확장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FES는 특별히 농업 분야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진 않지만, 사회보장 프로그램이 필요한 대다수 르완다 사람들이 농촌에 살고 있으니, 어떻게 농촌을 개발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이번 학술회의를 기획한 것 같다.
<참조> 2016-2017 르완다 ODA 출처 (단위: USD)
월드뱅크 268,207,536
미국 165,218,823
아프리카개발은행 135,299,819
유럽연합 94,538,828
글로벌 펀드 77,879,735
UN 60,900,090
영국 40,969,445
독일 34,671,527
벨기에 30,147,549
중국 25,478,092
일본 24,953,117
네덜란드 24,388,528
한국 19,080,141
스위스 10,101,573
스웨덴 6,925,789
OPEC 국제개발기금 5,576,957
사우디 발전 기금 5,363,985
인도 4,682,500
쿠웨이트 아랍경제발전기금 3,709,364
아랍아프리카경제개발은행 3,150,820
출처: Ministry of Finance and Economic Planning (Rwanda), External Development Finance Report: 2016/2017 Fiscal Year.
내가 하는 일과 가장 관련이 있었던 것은 가나 출신 연구자이자 독일의 킬 대학교 교수인 Awudu Abdulai가 발표한 사회관계망과 농업기술 전파에 관한 내용이었다. 주요 내용은 농민들이 새로운 농업기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친구나 친족의 영향이 크다는 내용으로, 평소 '그렇지 않을까'라는 내용을 학술적으로 풀려고 시도한 것이 흥미로웠다. 발표 내용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남반구 국가의 농업 발전 전략에 자주 이용되고, 내가 일하는 사업에서도 쓰고 있는 전파교육체계(Extension System)를 구성할 때 고려할 만한 내용이었다. 발표가 끝나고,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다른 농민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새로운 농업기술을 전파하는지에 대해서 물었는데, 그 점도 연구해보려 했는데, 사례마다 다르고, 연구 디자인을 하기가 어려웠다는 답변을 받았다. 만약 다른 농민들에게 더 영향력이 있는 농민에 대한 특징 연구가 있었다면, 실제 사업에 적용할만한 내용이 더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흥미로웠던 발표는 우간다 유기농 농업 운동(National Organic Agricultural Movement of Uganda, NOGAMU)이라는 기관의 Jane Nalunga가 발표한 우간다 유기농 농업에 관한 것이었다. 유기농 농산품의 주요 소비자는 소위 말하는 선진국이지만, 생산자 수는 의외로 남반구 국가에 많았다. 우간다는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유기농 생산자가 많이 등록된 국가라고 한다. 유기농 농법이 전통적인 농업 방식에 가깝고, 시장성이 좋다는 것을 강조했는데, 이점도 우리 사업에서 고려했던 점이라 흥미로웠다. 아프리카 국가의 유기농 생산자는 어떤 사람들이고, 주 소비자는 누구이며, 어떻게 전통 농법과 융합되고 있는지를 연구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참조> 유기농 농업 관련 주요 통계
유기농 농업 생산자 수 (2016년)
1위. 인도 835,000명
2위. 우간다 210,352명
3위. 멕시코 210,000명
*한국 12,896명
*르완다 4,013명
유기농 농지 규모 (2016년)
1위. 호주 27,145,021ha
2위. 아르헨티나 3,011,794ha
3위. 중국 2,281,215ha
*우간다 262,282ha
*한국 20,165ha
*르완다 1,284ha
유기농 시장 규모 (2016년)
1위. 미국 43.1 billion USD
2위. 독일 10.5 billion USD
3위. 프랑스 7.5 billion USD
출처: FiBL & IFOAM, The World of Organic Agriculture: Statistics & Emerging Trends 2018.
사실 이번 학술회의 분위기는 학술적이라기보다는, 형식적인 느낌이 강했다. FES는 국제학술회의를 주최한다는데 의의를 두는 것 같았고, 주로 독일의 고등교육진흥원(DAAD)의 장학프로그램 동문들로 구성된 발표자들도 각자의 주제를 아주 개괄적으로 다루었다. 처음 발표자였던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재무장관 Doris Ahnen의 발표가 끝나고 재무장관을 포함하여 FES와 관련된 독일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래도 공공기관이나 NGO에서 온 청중들이 꽤 열심히 참여했고, 학술적으로는 좀 생소했던 농촌발전의 연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느낄 수 있었고, 특히 아프리카 연구자들의 발표가 주를 이뤘다는 사실이 좋았다. 내가 그동안 참석했던 학술회의는 주로 유럽인/미국인들이 학술회의를 주도하고, 한두 명의 아프리카 출신 연구자들이 구색을 맞춰주는 느낌이 강했었다. 물론 이번 학술회의가 전체적으로 구색 맞추기 느낌이 강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프리카 출신 사람들이 회의를 구성하고 주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학술회의가 끝나고는 한국대사관에서 개최한 국경일 리셉션에 갔는데, 거기서는 조금 힘들었다. 대사관저와 행사는 아주 멋졌지만, 낯설고 무슨 이야길 해야 할지조차 막막한 외교관들이나 외국 기관 사람들이 많았고, 심지어 한국 사람들도 대부분이 모르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스탠딩으로 진행되는 그런 사교행사는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는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 건 비슷한데, 나는 리셉션보다 학술회의가 훨씬 편하다. 간만에 학술회의의 맛을 보니 공부하던 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