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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Dec 08. 2018

연습도 실전처럼

적십자의 응급처치 교육 구경기

아침부터 사무실 근처에 곡소리가 끊이질 않아서 뭔 일이 났나 나가봤더니 적십자에서 지역 내 적십자 봉사자를 대상으로 응급처치 교육을 하고 있었다.


적십자 봉사자 조끼. Photo: 우승훈


산사태, 교통사고 등 각종 상황을 가정하여 실습을 하는데 이게 연극 실습인지, 응급처치 실습인지 헷갈릴 정도로 각자의 역할에 몰입한 모습이 놀라울 정도였다. 그 봉사자 대다수가 우리 사업 참여자이시기도 하고, 워낙 연기들이 출중하셔서 하던 일을 멈추고 한참을 구경했다.


부상자 역할을 맡으신 분들은 동네가 떠나가라 고통스러운 소리를 지르거나, 정말 환자 같은 신음소리를 내셨고, 리더의 상황판단과 지시를 들으며 늠름하게 등장한 응급처치 요원들은 그 난리통에 웃음기 하나 없이 "괜찮을 거예요"라며 침착히 부상자를 진정시키고 부상자들을 담요 위에 눕히거나, 회복자세를 취하게 하는 등 처치를 진행했다. 


특이하게도 도둑과 기자 역할을 맡은 분들도 있었는데, 도둑님들은 호시탐탐 응급처치 물품과 부상자들의 소지품을 노리다가 물건을 쥐고 전속력으로 도망갔고, 경찰 역할을 맡은 분들이 재빨리 뒤를 쫓아 체포했다. 한편 기자님들은 부상자와 응급처치 요원 주변을 맴돌며 끊임없이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그러다가 교관이 상황 종료를 선언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나 둥글게 서서 다 함께 노래했다. 기승전결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게,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교육이 끝나고 교관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르완다 전역의 각 섹터에서 5일 동안 진행되고, 지역에서 응급상황 발생 시 지역의 응급처치 요원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CPR을 포함한 기초적인 기술을 전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교관은 우리 기관이 하는 일에 대해서 물어보더니, 약간의 비용을 내면 적십자에서 교관을 보내 추가적인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며, 생명 없이는 아무것도 없으니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사업 참여자이자, 이번 적십자 교육에 참여한 분들도 교육이 더 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내년도 리더 양성 교육 커리큘럼에 추가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몇 달 전 사업 참여자를 대상으로 했던 설문조사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집에서 한 시간 이상 떨어져 있다고 답한 분들이 약 30%였고, 심각한 질병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이 한 시간 이상 떨어져 있다고 답한 분들은 80%에 달했다. 그리고 지역 내 포장도로가 없어 엠뷸런스의 접근성도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만약 밭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생존 가능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다. 심지어 나도 사무소가 수도에서 떨어져 있고, 메인도로에서 좀 떨어져 있어 내가 쓰러지는 등 응급 의료 상황에 빠지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가끔 두려워하곤 했다. 이번 교육을 보며, 아 그래도 CPR을 할 수 있고, 들것에 사람을 잘 실을 수 있는 참여자분들이 계신다는 점에 안도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각 그룹마다 응급처치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중요한 순간에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 교육에 여유시간이 있고, 그때도 참여자분들이 원한다면 응급처치 교육도 포함하면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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