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바리 May 06. 2019

국제개발은 끝났다?

개발에서 운동으로, 한 인류학자의 제안.

몇 해 전, 영국의 Red Pepper라는 진보성향의 독립잡지에 런던정경대(LSE)의 인류학자 Jason Hickel의 글이 실렸다. 제목은 상당히 도발적이었지만, 막상 읽어보니 그렇게 새롭지는 않아 조금 아쉬울 정도였다. 글의 제목은 '국제개발의 죽음(The death of  international development)'이다. 마치 의사가 사망선고를 하는 것만 같은데, 그동안 국제개발 분야가 얼마나 이룬 것이 없는지 조목조목 나열하고, 국제개발이 사실은 다국적 기업이나 선진국들의 경제적 침략에 이용된다고 주장하고선, 우리의  지구는 유한하다며, 국제개발의 대안으로 탈발전(de-development)을 제시한다.


Essay: The death of international development 


"International development is in serious crisis. Charities are worried about the fact that public support for development is waning – that people just don’t seem to ‘buy it’ any more. According to a recent report by the development umbrella group Bond, ‘Efforts to eradicate poverty appear to many members of the public to have failed, and scepticism about the effectiveness of aid and global development initiatives has risen.’ People are less and less likely to believe that foreign aid is some kind of silver bullet, that donating to charities will solve anything, or that Bono and Bill Gates can save the world."
"국제개발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자선단체들은 사람들이 더 이상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개발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가 약해지고 있다. 최근 발간된 국제개발 협의체 '본드'의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대중들에겐 빈곤 퇴치를 위한 노력이 실패한 것으로 보였고, 원조와 국제개발 시도들의 효과성에 대한 비관론이 떠올랐다'. 해외원조가 어떤 만병통치약일 거라는 믿음,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뭔가를 해결할 것이라는, 혹은 보노와 빌 게이츠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글쓴이는 국제개발이 대중들의 믿음을 잃고, 그 결과 기부와 지지를 잃고 있다고 말하며, NGO들이 이런 추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제개발 NGO들은 새천년개발계획(MDGs)에 나오는 모성사망률 등등의 지표를 들어가며 분명 이전보다 나아졌다며 대중들의 비관론을 반박하는데, 대중들은 어마어마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개발업계가 세계적인 기아를 끝내고, 빈곤을 역사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심지어는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국제개발업계의 발전과 생존은 그들이 실패했음을 받아들이는데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왜 지표의 개선이 현실을 개선하지 못했는지, 왜 이 세계의 불평등은 심해져가는지를 기존에 쌓았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일이 있더라도 방법론의 대전환을 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글을 쓴 Hickel 교수도 비슷한 말을 한다. 


"These efforts miss the point: development doesn’t need better marketing; it needs a total overhaul. The present crisis presents a monumental opportunity to allow  development as we know it to wither away and leave space for the  evolution of a new approach: an approach framed not in terms of charity  but in terms of justice, and focused not on symptoms but on systems. "
"이러한 노력들(국제개발 NGO들이 자신들이 무언가 이루었다는 것을 대중에게 심어주기 위해 펼치는 마케팅 등)은 포인트를 놓치고 있다. 개발엔 더 나은 마케팅이 필요하지 않다. 대신 철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지금의 위기는 지금 우리가 아는 개발을 보내고, 새로운 접근법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념비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새로운 접근은 자선이 아닌 정의에 관한 것이며, 증세가 아닌 체제에 집중한다."


이미 업계에는 모금 전문 대행업체가 있을 정도로 마케팅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 나는 이것이 '누구를 위한 마케팅'인지, 그렇게까지 해서 현장에서는 실패만 거듭하는 개발단체들이 살아남는 것이 바람직 한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Hickel 교수는 뒤이어 개발협력이 개선되고 있는 지표들과 달리 실패하고 있다는 이유를 든다. 절대 숫자가 아닌 비율로 지표를 삼은 점, 인간다운 삶과 동떨어진 하루 1.25달러를 빈곤선으로 잡아둔 점이 지표와 현실의 괴리를 낳는다며, 많은 학자들이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을 지적했다고 말한다. 또한 빈부격차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 67명이 가진 부가 가장 가난한 사람 35억이 가진 부와 같다는 예도 들었다. 결국 세계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숫자는 늘었고,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의 격차는 커진 것이다. Hickel교수는 이것이 개발업계의 진짜 위기라고 말한다.


 "It’s not terribly difficult to figure out why. International development is failing because it fundamentally misses the point about poverty.  It assumes that poverty is a natural phenomenon, a problem that exists  out there, as if on an island disconnected from the rich world. Maybe it  has to do with bad climatic conditions and tropical diseases in poor  countries, or perhaps it’s because they don’t have the right technology.  All they need is a bit of aid to help them up the ‘development ladder’.  "
"이유를 알아내는 것은 그렇게 심하게 어렵지 않다. 국제개발은 근본적으로 빈곤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실패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이 일들이 부자 나와 동떨어진 섬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빈곤은 자연현상이고, 저 밖에 존재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어쩌면 가난한 나라의 좋지 않은 기후와 열대질병, 혹은 그들이 적정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음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건 '발전의 사다리'를 놓을 수 있는 약간의 원조라고 결론 내린다."


이런 시각은 개발'과학'의 '전문가'들이 이끄는 기술적인 개입으로 이어진다. TED의 이야깃거리로 좋을 만한, 혹은 기부기관들이 좋아할 만한 그런 사업들, 구충 캠페인, 소액대출, IT교실 같은 사업들은 빈곤의 정치적 맥락을 의도적으로 피해 간다. 그리고 이런 사업들은 "사람들이 권력과 대치하지 않고도 기존 경제질서의 지주들에 도전하지도 않으며, 세계 계급 질서 속에서 스스로가 어디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도 않으면서 빈곤의 문제를 고쳐나가고 있다고 느끼도록 해준다." 


Illustration: Andrzej Krauze

국제개발사업의 비 정치성에 대해 항상 고민하게 된다. 어찌 보면 가진 자들의 자원을, 권력을 분배하는 일이 빈곤 퇴치, 인권 증진의 기본일 텐데, 개발 NGO들은 다른 NGO들에 비해 유독 비정치적인 태도를 취한다. 물론 국제개발 업계의 무대가 되는 많은 나라들의 주권도 생각해야 하고, 현실적으로 해당 나라 정부에 등록을 해야 하는 것도 생각해야 하지만, 지금처럼 시민적, 정치적 권리나 역량에 대한 발전 없이 현상적인 문제에만 치중하는 것은 근본적인 원인은 건드리지도 못하는 대증요법인 것 같고, 더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시민의 안위가 아닌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정권에, 혹은 착취적인 국제 시스템의 유지에 부역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개발업계의 근원부터 비판하는 앞부분에 비해 중반 이후는 읽는 재미가 많이 줄었다. 중반부에 소개된 '원조의 역류'부분은 마치 '종속이론'과 비슷한 내러티브로 흘러가며, 크게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을 다룬다. 그리고 결론부에서는 만약 우리 지구의 모든 인류가 선진국의 중산층처럼 산다면, 지구의 자원으로는 모자랄 것이므로 완전히  패러다임을 바꾸어 탈개발(de-development)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한다.


탈개발(탈성장)에 대해 지난번 [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까? (2007/2015)]라는 책을 리뷰했던 적이 있는데(https://brunch.co.kr/@theafricanist/37) 탈개발/탈성장 담론은 그 취지에 대해선 항상 이해가 되는데, 실현 방안에 대해선 항상 어렵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루는 대안, 실현 방안 부분은 그래도 약간 내 취향(?)에 맞았다. Hickel 교수는 구조조정, 부채탕감, 국제기구 민주화, 자유무역 보류 등을 통해 세계 경제의 불균형을 바로잡으면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해볼 수 있을 것이고 동반성장의 논리에서 벗어나고 부가 행복과 자유를 의미한다는 가정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경제체제는 한계에 달해있고, 극적인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며 변화의 시점에 개발업계의 '전문가', 기술가들이 아닌 능동적으로 권력에 맞서고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 새로운 사회운동(미국 '월가를 점령하라', 스페인 '분노한 사람들', '아랍의 봄', 캐나다 'Idle no More' 등)에서 힌트를 찾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이 연대하여 이 세계의 담론을 바꾸는 운동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우선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사람들에게 탈발전(de-development)을 설득해 내는 것이 아주 결정적이고도 어려운 지점인 것 같다. 북반구 '선진국'들이 누릴 것을 다 누리고서 탈개발을 하자고 하는데,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만한 이유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이 어려운 허들을 넘을 수 있다면, 번지르르한 학위와 경력으로 무장한 엘리트나 업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전문가'가 틀을 짜는 사업이나 개발 대신, 그냥 사람들, 특히 당사자들이 판을 짜는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 어느 개발 프로그램보다 더 근본적인 발전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사업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권력과 싸워나가는 운동에 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습도 실전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