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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Oct 15. 2018

아프리카 최연소 억만장자 납치사건

탄자니아의 대기업 MeTL그룹 CEO 모하메드 데우지, 다레살람에서 납치

2012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오후, 나는 탄자니아 다레살람(Dar es Salaam) 마사키(Masaki)의 어느 쇼핑몰에서 현금을 찾고, 장을 본 뒤 근처의 슬립웨이(Slipway)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방엔 열쇠와 미러리스 카메라, 핸드폰, 방금 뽑은 현금이 두둑이 담긴 지갑이 들어있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등에 자꾸 땀이 차서 백팩을 한쪽으로 메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SUV 차량 한 대가 뒤에서부터 빠르게 나에게 밀착하더니 내 백팩을 낚아채 갔다. 나중에 보니 어깨에 빨갛게 상처가 남아있을 정도로 세게 낚아채 갔는데, 그땐 아픔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나를 압도했다. 그저 멀어져 가는 내 백팩과 그 와중에 여유롭게도 차량에서 머리를 내놓고 날 쳐다보는 도둑의 비웃음을 보며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한 바자지(Bajaj,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툭툭이라고도 불리는 삼륜 오토바이)와 그 바자지의 승객이었던 한 아주머니가 나보고 타라고 빵빵거리기 전까진 무슨 상황인지 파악도 안 되었다. 그 바자지 운전사와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도둑을 잠시 뒤따라 갔지만, 마사키의 쭉쭉 뻗은 도로에서 바자지가 SUV 차량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설령 따라잡았어도 그들과 싸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사건 전에 이미 나는 일명 '차치기'라 불리는 차량 날치기 사고에 대해 많이 들었다. 누구가 가방을 뺏기지 않으려고 하다가 많이 다쳤다더라, 누구는 차치기 당하면서 넘어져 뇌진탕이 왔다더라 등등... 이미 사람의 목숨은 안중에 없는 자들이었다. 추적을 포기하고, 아주머니를 목적지에 내려드리고 나니 수중에 겨우 몇 백 원밖에 없고 집 열쇠도 없는 내 상황이 보였다. 일단 바자지 운전사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돈은 나중에 받아도 되니까, 혹시 시내에 갈 곳이 있냐고 물어봐서 그 전엔 한 번도 가본 적 없었던 한국식당으로 가자고 부탁했다. 한국 식당 주인께서 여러모로 연락을 취해주셔서 시내의 지인 집에서 그날 밤 묵을 수 있었고, 다음날 무사히 내가 사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바자지 운전사 연락처를 잃어버려 그 은혜를 갚지 못한 것이 지금도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차치기를 당하고 일주일 내내 앓아누웠다. 그땐 탄자니아고 뭐고 다 싫어져서 집에 가고 싶었는데, 주변의 도움 덕분에 계속 남아서 나쁜 기억은 툭툭 털어버리고 더 좋은 기억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다.


외국인들이 밀접한 지역이라 그런지 특히 이 마사키 지역에서 강도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데, 알려진 사건으로는 작년엔 야생동물 보호 단체인 PAMS 재단의 설립자였던 웨인 로터(Wayne Lotter)가 마사키 지역을 택시를 타고 지나가다가 괴한들에게 총격을 당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일반인들에게도 사고가 빈번한 곳이라 주 탄자니아 한국 대사관은 마사키 지역 안전에 대한 공지를 반복해서 올린 바 있다. 아래는 주 탄자니아 한국 대사관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마사키 관련 안전 공지들이다.



지난 목요일엔 '아프리카 최연소 억만장자'이자 '탄자니아 최고의 부호'라고 불리는 모하메드 데우지(Mohammed Dewji)가 바로 이 마사키 지역에서 납치당했다. 


모하메드 데우지. Photo: Wikimedia Commons


MeTL(Mohammed Enterprises Tanzania) 그룹의 CEO인 모하메드는 목요일 이른 아침, 늘 하던 데로 운동을 하러 오이스터 베이의 콜로세움 호텔로 차를 타고 가다가 두 명의 백인이 포함된 괴한들에게 납치되었다. 목격자들은 두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있던 괴한들이 호텔 앞에서 기다리다가 모하메드를 납치했으며, 이 과정에서 하늘을 향해 총을 쏘기도 했다고 전했다.


마사키 지역과 이번 납치사건이 발생한 콜로세움 호텔의 위치. Google 지도 캡쳐.


콜로세움 호텔의 헬스장. Photo: 콜로세움 호텔 홈페이지.


남아공의 독립 공공정책 싱크탱크인 SAIIA(The South African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는 2012년 모하메드가 이끄는 MeTL 그룹에 대해 2만 명 이상이 일하고 있고, 2011년 기준 탄자니아 GDP의 2.5%에 기여할 정도로 탄자니아 경제의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 대기업으로, 농업, 제조업, 음료, 에너지, 물류 등을 포함한 11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또한 양가(Young Africans)와 더불어 탄자니아 축구 리그의 전통적인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심바(Simba)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아래는 MeTL그룹 페이스북에 올라온 광고 사진들이다.



모하메드의 아버지인 굴람 데우지(Gulam Dewji)가 1970년대 세운 생필품 무역 업체에서 출발한 MeTL그룹은 90년대 말, 미국의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모하메드가 합류하고 정부 소유의 방직과 식용유 설비를 인수하며 대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포브스(Forbes)는 모하메드의 자산을 15억 달러로 평가하고 있고, 포브스 아프리카는 2015년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는 기업 경영뿐 아니라 사회참여에도 적극적이었는데, 여당 CCM 소속으로 출마해 국회의원을 두 번 역임(2005년-2015년)했으며, 2014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모 데우지 재단(Mo Dewji Foundation, Mo는 그의 별명)을 설립해 교육과 보건, 공동체 발전분야에서 약 3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자선활동을 펼쳤다. 재단 홈페이지에서 그는 재단 설립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저는 축복받았고, 우리 회사 MeTL의 성공이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성공과 그 결과물인 부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신은 몇몇 사람들에게 부로 축복을 내리고, 이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조금 덜 축복받은 사람들에게 이 부를 재분배하고 인류애를 위해 기여할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MeTL과 모 데우지 재단을 통해 이것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어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제 조국에 돈을 돌려주는 것이 가장 먼저이고 중요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신이 당신을 재정적으로 축복했을 때, 당신 삶의 수준을 높이지 말고, 기부의 수준을 높이세요. 
모 데우지 재단 홈페이지 캡쳐.


알자지라는 다레살람의 행정부 책임자인 Paul Makonda와 다레살람 경찰국장 Lazaro Mambosasa를 인용해 당국이 납치범들이 국경을 빠져나지 못하도록 보안을 강화하고 있으며, 사건 당시 경비를 서고 있던 호텔 경비를 포함한 관련 인물들에 대한 심문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탄자니아 언론 The Citizen은 오늘 Mambosasa를 인용해 지금까지 26명의 용의자가 체포되어 심문받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지금까지 그의 흔적을 찾았다거나 납치범이 어떤 요구를 했다거나 하는 소식은 없다.


다레살람의 강력범죄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도시는 빠르게 발전해 가는데, 거리는 점점 더 걷기 위험한 곳으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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