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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Oct 06. 2019

The Slave Ship

죽음의 항해: 노예무역과 노예 무역선에 대하여

지난달, 한-아프리카재단에서 주최하는 2019 한-아프리카 국민외교사절단의 일원으로 앙골라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다녀왔다. 앙골라 일정 중에는 범아프리카 평화문화 포럼 참석과 더불어 노예 박물관 방문이 있었는데, 앙골라 해안을 통해 팔려나간 아프리카인 노예의 수가 엄청난데 비해 박물관 자체는 아주 작았다. 하지만, 그 박물관이 수많은 노예들이 마지막으로 밟았을 아프리카 땅인 루안다 해변에 있었기에 박물관 내부보다는 박물관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아프리카와 노예무역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었다. 가슴이 참 먹먹했다.


노예 박물관 앞 해안. 이날 해안에는 박물관 관람 후 보트를 타는 관광객과, 현장학습을 나온 학생들이 있었다. Photo: 우승훈


노예무역을 생각하면 아프리카인들이 주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팔려간 노예무역을 떠올리는데, 이미 그리스 로마 시절에도 지중해를 오가는 노예무역이 있었고, 9세기경에는 아프리카인들이 지중해, 중동, 아시아 일부 지역에까지 노예로 팔려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까지의 노예무역 규모는 16세기에서 19세기 중반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사이의 노예무역 규모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고, 역사적 의미도 현대의 경제질서를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는 아프리카-아메리카 노예무역에는 비할 것이 못된다.


유네스코에서 발간한 「아프리카 통사 (General History of Africa)- V. Africa from the Sixteenth to the Eighteenth Century」는 노예무역 규모에 대한 몇몇 학자들의 추산치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대서양 노예무역 규모의 초기 연구자인 P.D. Curtin이라는 학자는 당시 노예무역의 규모로 1,100만 명이라는 숫자를 내놓았고, 이후 학자들은 대체로 Curtin의 추계보다 40% 더 높은 숫자를, 즉 1,540만 명가량이라는 추산치를 내놓았다고 한다. 여기에 사하라 사막, 홍해, 인도양의 노예무역 규모를 연구한 Ralph Austen의 연구 결과를 더하면, 1500년부터 1890년까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팔려 나간 노예의 숫자는 약 2,200만 명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 책에는 노예무역 중간에, 즉 대서양에서 사망한 아프리카인의 숫자는 언급되지 않는데, 온라인에서 찾은 한 자료에서는 대서양에서 무역 중에 사망한 아프리카인이 약 18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매해 3월 25일은 UN에서 정하는 국제 노예제도 및 대서양 노예무역 희생자 추모의 날 (International Day of Remembrance of the Victims of Slavery and the Transatlantic Slave Trade)이다. 그래서 몇 해 전 3월 25일 즈음, 소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노예 무역선의 비 인간적인 환경에 대한 글, 그림 사진 등이 많이 공유된 적이 있었고, 친구가 보라며 카톡으로 공유해준 글 중간에 있는 그림, 사람을 마치 짐짝처럼 차곡차곡 쌓아놓은 아래 그림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Sheol © Rod Brown


이미 사람을 노예로 만든 자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던터라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이 그림은 너무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에 조사를 좀 해보았다. 우선 이 그림은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그림으로, 1996년 로드 브라운(Rod Brown)이라는 작가의 작품이고, 미국과 영국 양국에서 전시되었던 작품이다. 그림 이름은 Sheol이며, 우리말로는 지옥이나 무덤이란 뜻이다. 제목이 그림이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 그림의 작가 로드 브라운은 30년 넘게 아프리카-아메리칸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는 예술가로 (공식 홈페이지: http://rodbrownsartcollection.com/ ) 아프리카인 노예들에 대한 그림도 많이 그렸다. Sheol은 브라운이 미국에서 노예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의 전시전을 열었을 때 전시한 작품 중 하나이다. 이 그림은 흥미롭게도 한국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작가 줄리어스 레스터(Julius Lester)가 브라운의 전시작품들 중 그중 몇몇 그림을 뽑아 글을 써 그림책으로 만든 책이 있는데, 그 책이 한국에 '자유의 길' (낮은산 출판사)이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위의 그림이 진짜 있었던 일이냐고 한다면, 나는 '사실과 상상 사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작가가 이 그림을 그리면서 구술증언이나, 문헌자료에 근거했다는 언급이나, 이 그림이 과장되었다고 말하는 코멘트 같은 건 찾을 수 없었지만, 조사하면서 찾은 다른 자료들에서 노예 무역선의 환경에 대해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그 증거들은 뒤에 이야기하겠다.


그의 다른 그림들 중에도 인상적인 것들이 많다. 아래 그림을 포함한 더 많은 그림은 앞서 언급한 공식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 Rod Brown


몇년 전 위 그림을 처음 봤을 땐 탄자니아의 바가모요가 떠올랐는데, 이젠 루안다 노예 박물관 앞 해안도 함께 떠올릴 것 같다. 다레살람 북쪽에 위치한 바가모요는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노예무역이 활발했던 항구도시 중 하나이다. 당시 노예로 팔려가게 된 아프리카인들이 "마음을 놓고 간다 (Bwaga Moyo)"고 해서 바가모요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그 표현이 참 마음아팠고, 떠나기 직전 그들의 뒷모습이 그림 속 사람들 같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서양에 접해서 아메리카로 실려가는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루안다와 달리, 바가모요는 인도양에 접해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동이나 인도로 팔려갔지만, 어디로 팔려간들, 마음은 똑같지 않았을까 싶다.


2013년의 탄자니아 바가모요 해변 © 우승훈


앙골라의 국립 노예 박물관 외관. Photo: 우승훈


노예무역 경로. David Eltis and David Richardson, Atlas of the Transatlantic Slave Trade(New Haven, 2010)


이렇게 주로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형성된 '노예 해안'에서 배에 오른 아프리카인들은 노예 무역선에서 무슨 일을 당했을까?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노예로 팔려와 브라질에서 일하다가 뉴욕으로 도망가 자유를 찾은 마호마 가도 바쿠아쿠아(Mahommah Gardo Baquaqua)는 베닝에서 브라질로 이동하는 노예무역선에서의 경험을 증언한 바 있다.


우리는 벌거벗은 채로 배에 실렸어요. 남자들이 한편에 욱여넣어졌고 여자들은 다른 편에 있었어요. 짐칸은 너무 낮아서 일어설 수 없었고, 쭈그려있거나 앉아있어야 했어요. 낮이고 밤이고 우리에겐 똑같았어요. 잘 수도 없었어요.
We were thrust into the hold of the vessel in a state of nudity, the males being crammed on one side and the females on the other; the hold was so low that we could not stand up, but were obliged to crouch upon the floor or sit down; day and night were the same to us, sleep being denied.
   - Mahommah G. Baquaqua의 자서전 중     
     (http://docsouth.unc.edu/neh/baquaqua/baquaqua.html)


노예 무역선에 대한 자료로 가장 유명한 건 아마 이 그림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작년 방영된 KBS 다큐 '바다의 제국'에 잠깐 나온 적이 있고, 앙골라의 국립 노예 박물관에도 같은 그림이 소개되어 있었다.



위 그림은 영국의 노예선 Brookes(원래 배 이름은 Brooks인데, 잘못 알려졌다 함)호의 묘사도이다. 이 그림은 영국의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노예제의 비인간성에 대해 고발할 때 널리 쓰인 그림이다. 이 그림에 따르면 노예 한 사람에게 허용된 공간은 40cm 남짓 되는 폭. 더 자세히 말하자면, 도면에서는 남성과 여성, 아동에 따라 다른 공간을 계획해놓았다.

남자: 6피트 * 1.4피트 (182cm * 42.6cm)

여자: 5.1피트 * 1.4피트 (155cm * 42.6cm)

아동: 5피트 * 1.2피트 (152.4cm * 36.576cm)

이게 얼마나 좁은 건지 감이 잘 안 와서 보통사람들의 어깨너비를 알아보고 싶었지만, 어디 마땅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보통사람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어깨 중 하나인 박태환의 어깨 너비를 찾을 수 있었는데, 팔뚝의 삼각근을 제외하고도 어깨너비가 46cm라고 한다.

 

선실의 높이는 제대로 앉을 수도, 당연히 일어설 수도 없는 정도의 높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계획에서 잡은 최대 인원보다 더 많은 인원을 배에 탑승시키기 때문에, 실제로 한 사람당 허용된 공간은 위에 적힌 공간보다 더 작다고 보면 된다.


브룩스호는 리버풀에서 1780년대 건조된 노예 무역선이다. 1783년의 항해 기록엔 609명이 탑승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림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 붐비는 선실에 갇혀서 68주를 이동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을 통한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활동은 작은 결실을 거두어 1788년, 배에 싣는 노예제의 숫자를 선박의 톤수에 따라 제한하는 법이 제정되었다(The Dolben Act). 1톤당 1.75명 만을 허용하는 이 법령에 따르면 267톤인 브룩스 호는 454명이 최대 탑승인원이다. 1783년의 항해에선 155명이나 초과해서 탑승시켰던 것이다.

브룩스호는 유명하긴 하지만, 예외적인 사례는 아니다. 다른 배의 묘사도에서도 비슷한 증거들이 발견된다.


프랑스의 노예선 Vigilante 그림©Schomburg Center for Research in Black Culture
©Wilberforce House, Hull Museums

2007년 영국 더럼대학교(Durham University)에선 노예제 폐지 200주년을 맞아 노예 무역선 브룩스를 재현하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Durham University


Brookes 다음으로, 어쩌면 그보다 악명으로는 더 유명할지도 모를 노예 무역선은 Zong호이다.


Zong호는 1780년 건조되어 역시 리버풀에 등록된 노예 무역선이다. 크기는 다른 배들보다 작은 약 110톤. 1781년 9월 6일, 442명의 아프리카인과 선원 17명 포함, 총 459명을 실은 Zong호는 노예 해안, 지금의 가나 남부 해안을 떠나 자메이카로 향했다. 하지만 459명이란 숫자는 Zong호가 감당할 수 없는 인원수였다. 영국 법에서 정하는 기준에서 Zong호는 오직 193명 만을 실을 수 있는 사이즈였다. 과적에다가 항로를 잘못 들어 여정이 지체된 이들은 선내 물 부족과 아프리칸들의 반란에 겁을 먹고선 132명의 아프리카인들을 세 번에 걸쳐 바다에 던져버렸다. 노예선들은 보통 보험에 들어있었는데, 그 조건들이 마치 가축에 대한 보험과 비슷했다. 만약 노예로 팔려가던 사람들이 배에서 죽거나 자살하는 경우엔 보험처리가 안되고, 위급한 상황에서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들에 대해선 보험금 청구가 가능했었다. 선장 Luke Collingwood는 물을 아끼고, 자메이카에 갔을 때 '시장성 있는' 노예들을 살리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을 죽이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Walvin 2011, 2013)


Zong 호의 소유주는 이 일이 있고 난 이후, 보험사에 아프리카인들의 사망에 대한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보험사는 지급을 거부했고, 결국 법정에서 Zong 호의 선주와 보험사는 공방을 벌였다. 재판장 맨스필드 백작은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 노예에 관한 사건은 말이 바다에 던져진 것과 같은 사안이다". 사람들이 죽었지만, 법정에서 그 누구도 살인이나 도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보험사와 선주는 '과실'이나 '의도성'에 대한 것으로 공방을 벌였다. 결국 재판은 고의적인 화물 파손의 관점에서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로 끝난다. (Walvin 2011, 2013) 법정에서조차 아프리카인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지만, 이 법적 공방이 남긴 상세한 자료들은, 이후 노예제 폐지운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Zong호 밖으로 병든 아프리카인들을 내던지는 선원들. Picture: www.blackpast.org


이후 다양한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혹은 에릭 윌리엄스가 「자본주의와 노예제도」에서 주장하듯 식민지 수익률의 감소로 인한 경제적 판단으로) 영국에서는 1807년 노예무역 폐지법이 통과된 뒤, 1833년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미국에선 1808년 노예 수입이 금지된 뒤, 1863년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


노예무역 시기, 유럽과 북미 국가들은 이 노예의 노동력을 통해 부를 축적했고, 이미 수많은 노동 가능 인구를 노예로 잃은 아프리카 대륙은 노예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군벌로 인해 심각한 불안정과 폭정을 겪어야만 했다. 게다가 아프리카 각국의 대외 무역 상품이 노예나 보석에만 국한되고, 농산품 무역 등은 아메리카 대륙에 밀리다 보니 농업 등 국내 경제 기반도 발달할 수 없었다. 아프리카의 소위 말하는 '저개발'과 취약한 대외 경제 구조는 상당 부분 이 시기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쩌면 현대 국제경제체제의 불평등 문제의 해결은 이 노예무역에 대한 올바른 보상과 그때 형성된 불평등한 구조를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국제연맹은 1926년 조약에서 노예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소유권 행사에 부속되는 권한의 일부 혹은 전부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지위 또는 상황이다."

"the status or condition of a person over whom any or all of the powers  attaching to the right of ownership are exercised" (League of Nations,  Convention to Suppress the Slave Trade and Slavery, 1926년)


국제연맹의 정의보다 조금 더 노예를 쉽게, 그리고 현대적 맥락에서 설명하는 표현은 김지혜 교수가 쓴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찾을 수 있다.

노예는 사람으로서의 권리 없이 노동의 필요만이 요구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울타리 안에 존재하지만 그 땅의 '주인'과 평등하지 않은 사람, 정치적 권리가 박탈되어 권리를 요구할 수 없는 사람, '주인'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흔적 없이 소멸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현대사회에서 부르는 이름이 무엇이든 그는 '노예'가 된다. (p.148)


이러한 정의에 이어 김지혜 교수는 한국의 고용허가제가 '현대판 노예제'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일할 권리를 주는 제도라기보다는 한국의 고용주가 외국에서 노동력을 들여올 권한을 주는 제도이며, 이주노동자는 자신을 채용한 고용주에게 전속되고, 마음대로 떠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김지혜 교수는 "이렇듯 어떤 고용관계가 오로지 고용주를 위해, 고용주에 의해 결정된다면, 노예제가 아주 먼 남의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얼마 전 이탈리아 남부에서 감비아 출신 이주 노동자에게 시급 1.5유로(약 2천 원)를 주면서 휴일도 없이 노예처럼 부린 농장주가 적발된 사건이 있었고, 나이지리아에선 '아기 공장'이 적발되었으며,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비인간적 대우를 받은 사례는 샐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여전히 미국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노예제도와 과거 노예제도의 유산은 여전히 건재하다.

 



 <참고자료>

 

League of Nations, Convention to Suppress the Slave Trade and Slavery, 25 September 1926, 60 LNTS 253, Registered No. 1414

Editor Ogot, B.A. (1999) General History of Africa V. Africa from the Sixteenth to the Eighteenth Century. Paris: UNESCO.

Walvin, J. (2013). Crossings. London, GB: Reaktion Books

Walvin, J. (2011). Zong : A Massacre, the Law and the End of Slavery. USA: Yale University Press

Wolfe, B. Slave Ships and the Middle Passage. (2018). In Encyclopedia Virginia. (http://www.EncyclopediaVirginia.org/Slave_Ships_and_the_Middle_Pa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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