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프리카의 12번째 노벨 평화상 수상자, 아비 아흐메드 총리
1901년 첫 번째 수상자를 배출한 노벨 평화상은 1936년 아르헨티나의 외무장관 Carlos Saavedra Lamas를 제외하면 모두 유럽과 북미의 남성에게만 돌아갔다. 1960년 남아공의 알베르트 루툴리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노벨 평화상의 국제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1980년 이후엔 26명의 수상자가 유럽과 북미 밖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그중 12명은 아프리카 각국 국적의 수상자이다.
어쩌면 아프리카에 갈등이 더 많기 때문에 평화상 수상자도 많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프리카인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평화를 위한 아프리카 각국 사람들의 노력에 대한 국제적인 인정과 관심일 뿐 아니라, 아프리카인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끼고 평화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크다.
1960년 아프리카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Albert John Lutuli (남아프리카공화국, 1898-1967), 남아프리카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맞선 흑인 민중의 파업과 시위의 선봉에 섰던 운동가.
1978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Mohammad Anwar al-Sadat (이집트, 1918-1981), 1978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스라엘의 총리와 평화 협정을 맺은 이집트 대통령.
198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Desmond Mpilo Tutu (남아프리카공화국, 1931-),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비폭력 노선을 주장한 남아공 흑인들의 해방 투쟁의 살아있는 상징.
1993년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Nelson Rolihlahla Mandela(남아프리카공화국, 1918-2013), Frederik Willem de Klerk(남아프리카공화국, 1936-),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평화로운 종식과 '무지개 국가' 남아공의 초석을 세운 남아공 백인 정권의 마지막 대통령과 최초의 흑인 대통령.
2001년 그가 몸담은 UN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Kofi Annan (가나, 1938-2018), 르완다와 보스니아 제노사이드에 대한 국제사회, 그리고 UN 직원이었던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UN이 인권과 평화를 중심으로 재편되는데 기여한 UN 사무총장. '아프리카의 자랑스러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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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Wangari Maathai (케냐, 1940-), 국토의 황폐화에 맞서 여성들이 나무를 심는 풀뿌리 운동인 Green Belt Movement를 시작하며, 나무를 심는 행위를 지속가능 발전과 민주주의, 여성의 권리까지 확장한 운동가.
2005년 그가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던 국제 원자력기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Mohamed ElBaradei (이집트, 1942-), 원자력의 군사적 활용을 방지하고 가능한 한 안전한 방식으로 평화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한 국제 원자력기구의 사무총장.
2011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Ellen Johnson Sirleaf (라이베리아, 1938-)와 Leyman Gbowee (라이베리아, 1972-), 내전으로 폐허가 된 라이베리아의 화해와 평화 구축 과정에 비폭력과 여성참여를 이끌어 낸 운동가(Gbowee)와 이 여성들의 지지를 받아 탄생한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민주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Sirleaf).
2015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국민 4자 대화 기구 (튀니지), 2011년 자스민 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아 국민적 대화를 통해 평화로운 민주주의 공고화를 이끌어 낸 범 시민사회 기구.
2018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Denis Mukwege (콩고민주공화국, 1955-),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의 오랜 분쟁 지역에서 성폭력 생존 여성들과 함께 일하며, 분쟁에서의 성폭행의 무기화를 끝내기 위해 목소리 내는 의사.
관련 글: https://brunch.co.kr/@theafricanist/48
그리고,
201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며 아프리카인으로는 열두 번째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노벨 평화상 역사에는 백 번째 수상자로 이름을 올린 Abiy Ahmed Ali (에티오피아, 1976-),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해묵은 국경 분쟁을 평화롭게 끝낸 에티오피아의 개혁 총리.
지난 11일, 노르웨이의 노벨 위원회는 에티오피아 총리 아비 아흐메드를 2019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발표 전 아비 아흐메드 총리는 최근 세계를 향해 성장주의 신화의 탈피와 다음 세대를 위한 기후 행동을 외치고 있는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와 함께 유력한 수상자로 거론되고 있었다.
그레타 툰베리의 UN기후행동정상회의 연설 영상: https://youtu.be/BvF8yG7G3mU
개인적으로는 툰베리가 수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비 아흐메드 총리가 에티오피아와 주변 지역에서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은 맞지만 겨우 작년 4월 취임한 총리의 공적을 평가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말고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CNN의 보도에 따르면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의 의장인 Berit Reiss-Andersen는 이런 지적에 대해 "총리로서 아비 아흐메드는 화해와 단결, 그리고 사회 정의를 일궈"왔지만, "민족 분쟁이 계속되고 있고, 우리도 최근 몇 가지 문제 되는 예시들을 보았다"며 "에티오피아가 민주주의로 나아가도록 하는 개혁에 대해선 확실히 많은 것들이 이뤄졌다. 물론 갈길이 멀지만, 로마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 민주적 발전도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한편 아비 아흐메드는 트위터를 통해 노벨 평화상은 에티오피아와 아프리카 대륙을 위한 것이며, 함께 평화롭게 번영하자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아비 아흐메드 총리의 평화상 수상에 대해 "평화와 국제협력을 위한 그의 노력, 특히 이웃나라 에리트레아와의 국경 분쟁 해결을 위한 결단력 있는 이니셔티브"를 수상 이유로 꼽으며, "에티오피아와 동부, 북부 아프리카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해 일하는 모든 이들의 공로를 인정"하는 의미도 있다고 밝혔다.
https://www.nobelpeaceprize.org/Announcements/The-Nobel-Peace-Prize-2019
에티오피아의 아비 아흐메드 총리와 에리트레아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대통령은 작년 9월, 양국의 국경 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하는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에리트레아는 1993년 에티오피아에서 독립한 국가로, 1998년 국경도시 바드메를 둘러싼 전쟁과 이후 계속된 국지전으로 에티오피아와 적대적인 관계를 이어왔다. 아흐메드 총리는 자국과 에리트레아 평화 협정뿐 아니라 케냐와 소말리아 국경 분쟁과 수단과 남수단의 분쟁을 끝내기 위한 평화 협상에도 개입하여 지역 내 평화 구축자로 활약하고 있다.
평화협정에 대한 노벨 평화상 수상은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으로 1978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Mohammad Anwar Al-Sadat 이집트 대통령과 Menachem Begin 이스라엘 총리처럼 공동 수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노벨 위원회가 "평화는 어느 한쪽의 행동으로만은 이뤄지지 않는다"며 아비 아흐메드 총리가 손을 내밀었을 때 그의 손을 잡은 아페웨르키 대통령의 공로 또한 언급했지만, 아무래도 에리트레아에서 민주주의를 탄압하며 장기 독재를 하는 아페웨르키 대통령에게는 차마 평화상을 수여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는 아비 아흐메드 총리의 노벨상 수상이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의 평화협정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노벨 평화상 홈페이지에 그의 수상과 관련되어 올라와 있는 글에는 에티오피아 국내의 개혁도 언급되어 있다.
아직 할 일이 산적해있지만, 에티오피아에서 아비 아흐메드 총리는 많은 시민에게 더 나은 삶과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중요한 개혁들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총리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국가 비상사태를 해제했고, 수천 명의 정치범을 사면했으며, 미디어 통제를 중단했고, 불법화된 야당의 지위를 다시 돌려놓기도 했습니다. 또한 부패한 군부와 민간 지도자들을 파면했고, 정치와 공동체에서 여성의 영향력을 상당히 증진했습니다. 나아가 가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1991년, 독재자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Mengistu Haile Mariam)을 축출한 이후 지금까지 '민족에 기반한 연방제'라는 특이한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대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국가주의 nationalism'을 앞세우고 민족(혹은 부족) 정체성을 지우려고 애쓴 것과는 반대의 행보이다. 1991년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이 반군들에 의해 축출될 당시 주요 세력은 티그레이에서 온 게릴라군이었고, 그때 에티오피아의 중앙 정치를 장악한 티그레이 민족은 지금까지도 그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티그레이 게릴라군의 지도자였던 멜레스 제나위(Meles Zenawi)는 1995년부터 2012년 사망할 때까지 국무총리를 맡아 에티오피아를 지배했고, 티그레이 인들의 정당인 Tigrayan People's Liberation Front(TPLF)는 지금의 집권 연정인 Ethiopian People's Revolutionary Democratic Front(EPRDF)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중앙 정치를 장악하고 있던 티그레이 민족은 에티오피아 전체로 봤을 때, 소수 민족이라는 점이다. 에티오피아 내 다른 민족에 비해 앞도적으로 숫자가 많은 오로모와 암하라 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에티오피아의 정치와 경제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2015년 중반부터 수도 아디스 아바바(Addis Ababa)의 눈부신 발전과 오로미아와 암하르의 만성적 저개발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터지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하일레마리암 데살렌(Hailemariam Desalegn) 총리는 인터넷 망을 끊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모든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고 군인을 투입하는 등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민중의 희생과 저항을 더 키웠다.
결국 작년 2월, 데살렌 총리는 총리와 집권 연정 EPRDF의 의장에서 사임했고, 뒤이은 EPRDF 의장 선거에서 다수 민족인 오로모의 대중의 지지를 업은 42세의 오로모 정치인 아비 아흐메드가 깜짝 선출되며, 4월엔 연방정부 총리에 취임한다. 아비 아흐메드는 앞서도 말했듯 취임하자마자 다양한 개혁과제를 수행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관련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9230700011&code=970209&utm_campaign=share_btn_click&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_share&utm_content=khan_view)
(여남 동수 내각에 대한 글: https://brunch.co.kr/@theafricanist/55)
아비 아흐메드의 개혁 행보가 이상적으로 끝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큰 세 민족국가인 오로미아와 암하라, 티그레이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고, 올해 6월엔 암하라에서 쿠데타 시도가 있었으며, 올해 말로 예정된 개헌을 통해 10번째 자치주로 인정될 시다마와 그를 뒤이을 다른 소수민족들의 독립 시도 문제가 에티오피아 연방을 흔들고 있다. 관건은 내년에 예정되어 있는 총선이다. 이 총선을 통해 아비 아흐메드 총리가 그리는 미래가 무엇인지, 그의 개혁이 성공할 수 있을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디 평화롭고 민주적인 선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노벨 위원회도 나처럼 그의 개혁이 바른 방향으로 이어지고,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을지도 모른다. 노벨 평화상 홈페이지에 있는 2019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설명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는 이 노벨 평화상이 아비 총리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중요한 일들에 힘을 실어주길 희망합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며,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입니다.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성공적인 에티오피아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것이고, 이 지역의 국가와 사람들 간의 우애를 강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