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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Oct 22. 2019

일상의 맛

그림과 사진, 영상으로 아프리카 각국의 일상을 담는 사람들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며, 「아메리카나」, 「숨통」,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등의 소설과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엄마는 페미니스트」와 같은 페미니즘 책도 쓴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Chimamanda Ngozi Adichie)는 2009년 TED 강연에서, "단편적인 이야기의 위험성"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약 18분의 짧은 강연에서 치마만다 아디치는 아프리카를 빈곤과 질병 같은 부정적인 것들에 연결 지어 단편적으로 묘사하는 이야기들이 가진 위험성을 자신의 경험에 연결 지어 아주 설득력 있게 전했다. 현재 이 영상의 조회수는 2천 만회를 넘었다.

https://www.ted.com/talks/chimamanda_adichie_the_danger_of_a_single_story?utm_campaign=tedspread&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


이 강연에서 치마만다는 자신도 단편적 이야기의 문제 앞에서 유죄였던 적이 있음을 고백하면서, 한때 멕시코인에 대해 밀입국자라던가 미국 건강보험 시스템을 악이용 하는 사람들이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래 이야기에 나오는 과달라하라는 멕시코의 도시이다.)


전 과달라하라에 도착한 그 날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시장에서 또르띠야를 말고 있는 사람들 담배를 피우거나 웃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요. 처음엔 약간 놀라운 기분이 들었지만 곧 부끄러움이 몰려왔습니다 전 멕시코에 관한 언론 보도에 철저하게 사로잡혀 멕시코 사람들을 한 가지 이미지로만 기억했던 것입니다. 비천한 이민자들로 말이죠. 멕시코인들에 대한 단편적 이야기를 믿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바로 이렇게 단편적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을 단 한 가지로만 반복해서 보여주면 그 사람들은 그 단편적 이야기 그 자체가 되어버립니다.


나도 올해 처음 멕시코에, 정확히 말하자면 멕시코 시티에 다녀왔는데, 좀 갑작스럽게 갔던 여행이라 멕시코에 대해 알아볼 시간도 없이 영화에 흔히 나오는 불법 이민자라던가 갱스터 같은 단편적인 이미지만 가지고 떠났다. 그래서 공항을 나설 때만 해도 좀 무서웠다. 하지만 이내 멕시코 시티를 걸어 다니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완전 유럽 같은데?'. 부끄럽지만 느낌 있는 건물과 널찍하고 여유 넘치는 공원 같은 좋은 것들은 유럽에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멕시코 시티에도 좋은 것들은 많았고, 갱스터가 아닌 그냥 사람들의 일상이 있었다. 이제 그 뒤로 미국 영화를 보다가 갱스터들이 멕시코 사람으로 묘사되면 좀 지루한 기분이 든다. 마치 우리나라 영화에서 예전엔 전라도 사람들이 조폭으로 묘사되고, 지금은 중국 동포들이 조폭으로 묘사되는 것을 보면서 해당 영화의 제작자가 너무 게으르고 유해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멕시코 시티 시내 2019년 1월. Photo: 우승훈
멕시코 시티 시내 2019년 1월. Photo: 우승훈
멕시코 시티 시내 2019년 1월. Photo: 우승훈


암튼, 단편적인 이야기는 위험하지만, 아프리카의 일상을 다루는 뉴스는 부러 파고들지 않으면 찾기가 어렵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에 특파원이 거의 없는 한국 언론에서는 특히 어렵고, 다른 북미나 유럽의 언론들도 특별히 사정이 나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가디언(Guardian)이나 BBC는 소위 '중요'하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소식들 외에 아프리카 각국 사람들의 일상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런 이야기를 다루기 위한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 언론사의 아프리카 뉴스는 더 흥미롭고 생생하다.


BBC What's New? : "중요한 뉴스는 물론 사람들 자신의 이야기, 인기 있는 유명인과의 인터뷰, 미술, 음악, 코미디 등 모든 것"을 다룬다는 BBC의 뉴스 프로그램으로,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Eo1gB9psJ-xMEuVVVBWiZw/featured

BBC What's New? 에서는 우간다 캄팔라, 나이지리아 라고스 등 대도시의 도시 풍경과 일상 모습, 세네갈의 코스플레이 팬, 아프리카와 채식주의 등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가디언도 "The Guardian Picture Essay"라는 기획 연재 시리즈에서 사진을 활용하여 아프리카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일상과 '중요한 뉴스'의 뒷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아프리카와 관련된 기사로는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의 옛 사진을 통해 과거의 일상을 보여준 기사와 짐바브웨의 통근열차 풍경을 다룬 기사 등이 있다.


https://www.theguardian.com/cities/2018/sep/19/everday-memories-of-addis-ababa-a-photo-essay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9/feb/15/zimbabwe-only-commuter-train-photo-essay


프랑스의 작가 알렝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 뉴스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2014)에서 '보통 뉴스'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누군가가 평범한 하루를 보낸 적이 있기나 한지 알지 못한다. 그런 것은 서구 언론이 취재한 바가 없기 대문이다. (중략) 우리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직장생활에 대해서나 알제리 사람들의 주말 일상에 대해 깜깜하긴 매한가지다. 뉴스는 소위 '중요한' 사건들 쪽으로만 우리를 낙하산에 태워 보내고는 우리가 그 사건들에 합당한 충격을 느끼고 몰입할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애초에 동일시할 수 있는 행위와 태도로 접하지 않는 이상, 다시 말해 끔찍한 사건 속에서 모든 인류의 일상적인 순간들과 구체적 삶들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 사건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기울일 수가 없다. 이러한 사항들에 초점을 맞춘다고 해서 '진지한' 뉴스에 대한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지는 못한다. 이는 오히려 오싹하면서도 파괴적인 모든 사건들에 진심 어린 관심을 갖도록 하는 기반을 제공한다. (중략) 미래의 이상적인 언론은, 이례적인 일들에 대한 관심이 보통의 삶에 대한 사전 지식에 좌우된다는 걸 인식하면서 특정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기사를 항상 주문하게 될 것이다. 지구촌에서 가장 외지고 황폐한 장소에서조차도 변함없이 존재하는 인간 본성의 양상을 포함하는 기사 말이다. 아디스아바바의 거리 파티, 페루에서의 사랑, 몽골에서의 인척관계에 대해 알게 된다면, 대중은 언젠가 있을지도 모를 파괴적인 태풍이나 폭력적인 쿠데타를 맞닥뜨렸을 때 그에 대해 좀 더 관심을 보일 준비를 갖출 것이다. (pp.99-100)


몇 해 전,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가 있었을 때, 세계 각국의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과 언론은 이 사건에 큰 충격을 받은 듯 너도나도 추모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그 테러와 같은 해에 있었던 케냐 가리사 대학교에서 있었던 알샤바브의 테러라던가, 심지어 파리 테러 하루 전에 있었던 레바논 베이루트의 연쇄 자살폭탄 테러는 파리에서 일어난 일 보다 세계의 관심과 애도를 훨씬 적게 받았다. 사람들은 프랑스 파리 사람들의 일상 풍경과 평화로운 모습을 각종 미디어를 통해 자주 접해왔기에 그런 삶이 있는 곳에서의 테러를 매우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일상과 더 가까운 세상이라고 느끼며 더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중동과 아프리카(심지어 나라 단위로도 가지 못한다)에 대해 미디어가 전달하는 것들은 내전과 테러, 빈곤과 질병 같은 이미지가 다수였을 테니, 그곳에서는 테러가 으레 있는 일인 것으로 느껴졌을 수 있다. 게다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사는 거의 전해지지 않으니 심리적으로도 나와는 거리가 먼, 아주 다른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세계인이 이곳에서 일어난 테러를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아프리카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삶이 있다며 공감했더라면, 소위 말하는 '국제사회'는 아프리카의 평화와 행복에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치마만다 아디치가 말했던 것처럼, 단편적인 이야기는 이렇듯 위험하고, 우리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울어진 이야기의 장에서 아프리카의 일상을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사실 일상의 이야기와 풍경은 사람들의 클릭과 관심을 받기에는 충분히 '섹시'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일의 중요성을 알고 계속하는 사람들이, 혹은 자신 주변의 일을 기록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이들을 아주 좋아한다.



Everyday Africa by The Everyday Projects


https://www.everydayprojects.org/


Everyday Africa는 미디어가 그리고 전파하는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편견에 맞서기 위해 2012년에 코트디부아르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장된 사진 프로젝트로,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에서 아프리카 각국의 일상 사진과 그 사진에 대한 설명을 소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아프리카 밖의 다양한 공동체에도 영감을 주어, 지금은 Everyday Project라는 이름 아래 아프가니스탄, 미국계 무슬림, 아시아, 바레인, 브라질, 기후변화, 북한, 아프리카의 뿔, 이탈리아, 미국의 농촌지역 등의 일상을 담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아래는 Everyday Africa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들이다.

DR콩고 동부 지역에서 작은 멸치 같은 생선인 "삼바자"를 사고파는 사람들의 모습. Photo: 인스타그램/@Everydayafrica

https://www.instagram.com/p/By-gC15g7VY/?utm_source=ig_web_copy_link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Megenagna역 풍경. Photo: 인스타그램/@everydayafrica

https://www.instagram.com/p/BysXA8boh1f/?utm_source=ig_web_copy_link


Everyday Africa에는 거의 매일 아프리카 각국 사람들의 일상, 거리 풍경, 자연경관 등이 업로드된다. 이곳의 사진들은 피사체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된 것들이 많다. 이곳에 작품을 공유하는 사진가 대부분이 그 지역의 사진작가들이라 자신이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찍은 사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사진은 하나하나 정말 재밌고, 소중하다.


Everyday Africa에서 출판한 Everday Africa: 30 Photograpers Re-Picturing a Continent


Street Level by Sarah Markes

2013년 탄자니아 다레살람에서 일할 때, 나는 엽서를 한창 모으고 있었고 가는 서점이나 기념품 가게마다 엽서를 사 모았다. 그때 샀던 다양한 엽서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Sarah Markes의 Street Level 시리즈였고, 당시에 그의 일러스트집도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탄자니아의 다양한 교통수단. 왼쪽부터 바자지(툭툭), 트럭, 달라달라(미니버스). Picture: Sarah Markes.
2013년 다레살람. 달라달라. Photo: 우승훈
탄자니아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의자와 아저씨들. Picture: Sarah Markes.
2013년 다레살람 외곽 지역의 한 식당. 위 일러스트에서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의자는 어딜 가든 흔히 볼 수 있다. Photo: 우승훈


영국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한 Sarah Markes는 탄자니아에 살며 탄자니아의 거리 풍경, 사람, 동물 그리고 자연경관을 일러스트로 그리고 있다. 이 글을 쓰며 생각나서 오랜만에 그의 홈페이지블로그에 들어가 봤는데, 요즘은 활동이 영 뜸한 것 같아 아쉽다.


Sarah Markes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탄자니아에 애정을 가지고 오랜 시간 사람과 사물, 풍경을 관찰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의 한 부분 한 부분이 다 생생하고 재밌다.


다레살람 India Street 주변의 풍경을 그린 작품. Picture: Sarah Markes
2012년 탄자니아 다레살람의 India Street의 한 건물. Photo: 우승훈


예전에 한국에서 필그래피(Feeelgraphy)라는 청년 그룹이 그림을 통해 아프리카의 인식을 개선하겠다고 했었는데, 2015년 시민청에서 전시를 한번 한 이후로 소식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쉽다.


2015년 시민청에서 열린 "내가 만난 아프리카 展"에 참여했던 필그래피. Photo: 우승훈



Zouzoukwa by O'Plérou Grebet

코트디부아르 출신으로 3D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21세 청년 O'Plérou Grebet는 아프리카 각국의 문화와 일상을 담은 이모지 350여 개를 제작했다. 그는 2018년을 시작하면서부터 하루에 하나의 아프리카 이모지, Zouzoukwa(O'Plérou의 모어인 Bété 민족어에서 Zouzoukwa는 그림을 뜻한다고 한다)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도전을 시작했고 이 도전이 큰 호응을 얻어 안드로이드와 iOS에 이모지 어플을 출시, 현재는 Whatsapp과 아이폰 아이메시지에서 그의 이모지를 사용할 수 있다.


Zouzoukwa의 시작. Picture: 인스타그램/@creativorian

O'Plérou는 코트디부아르 사람이지만, 그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문화와 일상을 이모지에 녹여내고 있다. 특히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기 쉬운 소품들의 특징도 잘 잡아냈다. 아래는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만드는 주전자인 제베나와 아프리카 각국에서 아주 많이 팔리는 네슬레의 분유, 니도(NIDO, 그림에서는 N자를 Z로 바꾸어 그렸다) 이모지이다.

에티오피아의 제베나. Picture: 인스타그램 / @creativorian
2019년 에티오피아 오로미아 어느 가정집의 커피 세레모니. 분나 마프라트. Photo: 우승훈
네슬레 니도 패러디. Picture: 인스타그램 / @creativorian

그는 여러 나라의 전통 의복도 열심히 소개하고 있는데, 아래 그림은 줄루족 여성들이 쓰는 짚과 구슬로 장식한 넓은 모자인 Isicholo 이모지이다. 영화 "블랙팬서"에서 블랙팬서(티찰라)의 어머니로 나오는 라몬다가 착용한 모자도 Isicholo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줄루족의 Isicholo. Picture: 인스타그램 / @creativorian
블랙팬서의 라몬다


그 외에도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이모지로 잘 옮겨놓았다.


Picture: 인스타그램 / @creativorian


Picture: 인스타그램 / @creativorian



아프리카 덕질을 근 8년 정도 해오다 보니, 가끔 이젠 좀 덜 재미있지 않느냐는 뉘앙스의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항상 새롭고 재밌다"라는 대답을 하는데, 처음 가는 나라든 1~2년씩 살았던 나라든 그냥 가서 사람과 가게 구경만 해도 재밌다. 일상은 항상 비슷하면서도 때때로 변하고 사람들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번 일상의 맛을 알게 되면 끝도 없이 재밌는 게 보인다. 게다가 사람들의 일상을 알면, 뉴스에 나오는 그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이야기도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표지 사진: Everday Africa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eb.facebook.com/everydayaf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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