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비하 유머를 맥주 패키지에 담았다가 사과한 르완다 스콜 라거
르완다에 2년여를 지내며 전반기는 스콜 몰트(Skol Malt)와, 후반기는 암스텔 몰트(Amstel Malt)와 함께했다. 정확한 통계는 찾을 수 없지만, 르완다 맥주 시장의 선두주자는 헤이네켄의 르완다 내 자회사인 브라리르과(Bralirwa)에서 만드는 무찌그(Mutzig)와 프리무스(Primus)였던 터라 내가 좋아하는 맥주는 항상 소수 취향이었고, 무찌그가 스콜 몰트(5.3%)나 라거(5%) 보다 더 높은 도수를 가지고 있어서(5.5%) "남자라면 무찌그를 마셔야지"같은 이야길 듣기도 했다.
르완다는 2018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에서 여성의 정치적 권한 강화(Political Empowerment)와 여아의 초중학교 등록률 등에서 높은 점수를 얻으며, 149개국 중 6위에 기록된 국가이다. 사람들은 이 결과를 종종 오해해서 르완다의 여성 인권이 세계에서 6번째로 높을 리가 없다며 이 보고서가 엉터리라고 하곤 하는데, 이 보고서는 해당 국가 안에서 여성과 남성의 격차를 평가할 뿐, 절대적인 인권 수준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 격차 지수 6위의 르완다가 의미하는 것은, 르완다 내에서 정치나 경제, 교육 참여에 있어 남성과 여성의 격차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내가 겪은 르완다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적으로 기계적 여남 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은 매우 잘 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국회엔 여성 의원이 더 많고, 장관도 거의 여남 동수에 가까우며,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여남 학생 비율도 거의 50대 50에 가깝다. 그리고 사회 전반에 성 평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제도는 사람들의 실제 행동과 인식, 그리고 사회 전반의 문화까지는 바꿔놓지는 못한 것 같았다. 설거지나 요리는 여성의 일, 오토바이 운전 등은 남자의 일이라는 고정된 성역할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고, 여성 비하적 농담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최근 르완다 내 맥주업계 2위인 SBL Rwanda의 대표 상품인 스콜 라거는 "사람들이 스콜 라거와 함께 휴식을 취할 때, 삶을 조금 더 편안하고 너무 심각하지 않을 것으로 받아들이고, 친구들과 함께 큰 웃음을 터뜨릴 수 있도록"하기 위한 캠페인으로, 대국민 농담 경연을 통해 선정된 농담을 스콜 라거의 패키지에 담는 "Live Laugh Lager"를 진행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르완다 사회에는, 특히 술집에서는 여성 비하적 언행이 만연해있었고, 그중 몇 개의 '농담'이 이 선정되어 스콜 라거 패키지에 여과 없이 담기는 일이 벌어져 사회적 논란이 되었다. 논란이 된 '농담'은 "여성이 당신을 백만장자로 만들 수 있을 때는? - 당신이 백만장자일 때"와 "미녀대회 우승자가 물고기를 죽이려고 할 때 하는 것은? - 물고기 머리를 물속에 넣는다"이다. 이 성차별적 '농담'은 각각 영어와 불어로 스콜 라거 패키지에 담겼고,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특히 르완다 여성가족부의 니라하비마나 솔린(Nyirahabimana Soline) 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여성을 비하하는 언어는 우리나라에서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는 세계 그 어디에서도 용납될 수 없고, 법에 의해 처벌받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강한 항의의 뜻을 표했다.
이에 SBL Rwanda는 성명을 발표해 몇몇 농담이 불쾌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이번 일로 불쾌했을 사람들에게 사과한다는 뜻을 밝혔다.
르완다에서 스콜 라거가 벌인 성차별 캠페인은 이렇게 일단락되었지만, 맥주와 성차별은 르완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지역마다 양조장이 있어 다양한 맥주(특히 에일) 문화가 형성된 영국에서도 맥주계의 성차별은 현재 진행형 이슈이다. 얼마 전 8월 6일부터 10일까지 런던에서 개최된 영국에서 가장 큰 맥주 축제 중 하나인 영국 맥주 축제(Great British Beer Festival)의 주최 단체인 Campaign for Real Ale(CAMRA)은 이번 축제에서 성차별적 이름이나 인상을 주는 맥주 브랜드의 참여를 금지했는데, 몇몇 이들은 'CAMRA는 유머를 모른다', 'PC(정치적 올바름)에 너무 빠졌다'라며 이 결정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 조치로 인해 성차별적 이름을 가진 Slack Alice와 성차별적 이미지를 담은 Dizzy Blone, Village Bike 등이 금지되었다. 이 외에도 금지된 맥주 브랜드들이 더 있는데, 정말 그 저급함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소비자단체이자 이번 축제를 주관한 CAMRA는 이번 조치에 대해 "몇몇 양조장들이 그들의 잠재적인 소비자 다수와 불화를 겪으면서까지 조그맣고 줄어드는 비율의 집단에만 먹히는 요소를 쓰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라며, "맥주는 남성의 음료도 여성의 음료도 아니고, 모두를 위한 음료입니다. 오래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맥주계의 성차별에 맞서려는 움직임은 세계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올해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에는 미국 맥주회사 버드와이저가 과거 만들었던 성 차별적 광고를 수정했고, 올해 5월, 벨기에 맥주 스텔라 아르투아는 한국에서 한국 여성들의 꿈을 응원하는 '비컴 언 아이콘(Become an Icon)' 캠페인을 시작했다.
버드와이저의 광고 수정 관련 기사: http://soda.donga.com/3/all/37/1663764/1
스텔라 아르투아는 기존 맥주 광고들이 여성의 외모, 특히 몸매를 부각했던 것을 깨고, 코미디언 송은이, 배우 김서형, 가수 김윤아를 내세워 그들의 당당함과 성공담을 부각했다. 스텔라 아르투아는 이 캠페인을 통해 "노력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여성들을 응원"한다고 밝혔다.
고된 하루 끝에 혹은 친구들과 즐거운 수다 중에 맥주를 마시는 기분은 삶의 큰 위안이 된다. 그리고 요즘은 한국에서도 다양한 풍미의 맥주를 쉽게 접할 수 있어 마시는 재미 그 자체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맥주 광고는 여성 모델의 '뒤태'를 강조하며 남성들에게만 어필하고, 맥주를 파는 술집의 분위기도 남자화장실에 야한 사진을 붙여놓는다거나 벽에 여성을 대상화하는 문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적어놓는 등 여성들에게 결코 안전하거나 편안한 느낌을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차별이 묻은 맥주는 맛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