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들의 배를 불리고 아프리카 시민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민간기업들
얼마 전 미국 CNN은 탐사보도를 통해 러시아의 푸틴 정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민간 군사기업들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포함한 몇몇 아프리카 국가의 군대를 훈련하고 있고, 이를 통해 내정에 간섭하고 자원 채굴권을 획득하며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민간 군사기업'들
CNN은 '푸틴의 셰프'라고 불릴 정도로 푸틴과 가까운 인물인 '신흥 재벌(올리가르히)' 예브게니 프리고진(Yevgeny Prigozhin)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중심에 두고 '푸틴의 사병'들이 그곳에서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몇 달 동안 파헤쳤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던 인터넷 조사 회사에 자금을 댄 혐의로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에 올라있기도 하고, 이미 용병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인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일부를 병합하고,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유사 군사조직 혹은 '민간 군사기업'인 바그네르 그룹(Wagner Group)의 실질적인 배후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바그네르 그룹의 행보를 보면, 이들을 단순히 돈에 의해 움직이는 용병단으로 보기보다는 사실상 푸틴 정권의 이익에 맞게 움직이며, 러시아 정부군이 관계되면 곤란한 분쟁지역 개입을 '외주'받아 수행하는 일을 하는 준 정부군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CNN과의 익명 인터뷰에서 자신을 전 바그네르 용병으로 체첸 분쟁과 시리아 분쟁에 참여했다고 밝힌 한 러시아인은 "바그네르는 푸틴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르는 전투조직이에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푸틴은 바그네르를 포함한 러시아의 민간 군사기업들은 러시아 정부와는 무관한 사기업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한편 러시아 정부는 공식적으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2013년부터 UN의 무기 통상 금지 국가로 지정되어 있던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2017년, 약탈자 군벌들과의 전투를 위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탄원했고,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러시아와 프랑스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으로 무기와 교관을 보내도록 허용했다. 그때부터 이후 러시아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AK47, 수류탄 발사기 등 다량의 무기를 보냈고, 정부군을 훈련하는 역할을 계속해오고 있다. 러시아에서 보낸 교관들은 대부분 얼굴을 가린 채 신분을 드러내지 않아, CNN은 이들이 프리고진과 관련된 용병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미국의 블룸버그는 2018년 11월 기사, "푸틴의 악명 높은 '셰프'가 아프리카에 간섭하고 있다"에서 푸틴 정부가 새로운 냉전 체제에서 미국이나 중국 등 경쟁자들에 비해 부족한 자본력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러시아제 무기들을 좋아할 저개발 자원 부국의 독재자들의 기반을 다져주는 틈새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푸틴의 '셰프' 예브게니 프리고진이며 그는 이미 그의 용병단과 정치전문가를 통해 안보, 군사 훈련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채굴권 등을 얻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프리고진는 이미 아프리카의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앙골라, 마다가스카르, 기니, 모잠비크, 콩고민주공화국 등과 군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작년 7월 말,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 바르네르 그룹의 활동을 취재하러 간 것으로 알려진 3명의 러시아 국적의 기자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방기(Bangui)에서 약 2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도시인 시붓(Sibut)에서 확인되지 않은 군인들에 의해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당국은 그 지역의 무장단체가 기자들의 차량을 훔치려다가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했지만, 기자들이 사망한 지역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 바그네르 그룹의 본부로 알려진 베렝고 지역(Berengo Estate) 근처이고, 사망한 기자들이 다루려고 했던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이들이 계획적으로 살해당했다는 의혹은 계속되고 있다.
'민간 군사기업'에 분쟁지역 개입을 '외주'하는 나라가 러시아뿐인 것은 아니다. 영국의 G4S Gurkha Services, 미국의 Academi(구 Blackwater) 등도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강대국의 군사작전을 대신해서 수행하고 있고, 그들의 정확한 운영 방식과 구조는 베일에 쌓여 있으며, 잊을만하면 한 번씩 민간인 살해 등 인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우간다에서 야당 인사들을 불법 감시하는데 협력한 민간 통신장비업체
얼마 전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우간다와 잠비아에서 중국의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의 기술자들이 우간다와 잠비아의 집권 세력을 도와 그들에 맞서는 정적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통신을 감청한 사례를 확인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우간다에서 화웨이는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강자의 위치를 차지할 뿐 아니라, 3G와 4G 망 설비 대부분을 설치했으며, 최근엔 우간다 경찰과의 계약을 통해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 안면인식 기능이 있는 CCTV 장비 5천여 대도 보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1년 대선까지는 2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지만, 이미 출마 의사를 밝힌 가수 출신의 국회의원 보비 와인(Bobi Wine)과 한때 무세베니의 주치의였으나 그에 맞서 세 번의 대선에 출마한 바 있는 오랜 숙적 와렌 키자 베시계(Warren Kizza Besigye)의 거센 저항에 위협을 느낀 무세베니 대통령이 벌써부터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이들을 견제하는 와중에, 화웨이가 무세베니 정권을 도와 야권 인사들을 감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일찍이 미국 정부는 화웨이가 자사의 통신망 설비를 활용하여 중국 정부를 위한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화웨이는 이를 부정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 회사가 통신장비를 활용한 스파이 논란에 휩싸인 것은 우간다나 미국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초, 프랑스의 르몽드 지는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중국이 건설한 아프리카연합 본부 건물의 IT 네트워크 상 기밀들이 매일 밤 중국 정부로 전송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중국과 아프리카연합이 모두 그 사실을 부정한 적이 있다.
화웨이나 중국 정부가 야권 인사를 불법으로 감시했는지 여부와 별개로, 화웨이가 아프리카 각국이 CCTV나 인터넷 모니터링 등을 활용한 국가보안체계를 구축하는데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개중에는 이집트나 우간다, 르완다 등 권위주의 정권이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국가들이 있어, 이 국가보안체계가 누구를 보호하는 체계로 작동하는지 우려되기도 한다. 이는 마치 중국의 대국민 감시/통제 체계가 화웨이를 통해 아프리카로 전파되는 것만 같다.
이번 화웨이 문제와 비슷한 사례로는 2018년엔 영국 Channel 4가 잠입취재를 통해 2016년 미 대선 당시 5천만여 명의 페이스북 개인정보를 무단 활용하여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는 영국의 데이터 분석&정치 컨설팅 회사 '캠브리지 아날리티카'가 2017년 케냐 대선에도 개입했다고 폭로한 일이 있다.
Channel 4의 잠입취재 영상에 나오는 '캠브리지 아날리티카' 직원은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과 함께 일했으며 "선거의 모든 요소"를 다뤘다고 말했다. 지난 케냐 선거는 수많은 가짜 뉴스로 얼룩져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었고, 이 과정에서 사상자도 나왔다.
기생충
아프리카 정치의 승자독식 문화와 다국적 기업의 윤리적인 고려 없는 이윤추구가 만나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다. 러시아의 민간 군사기업들이 훈련한 군대는 민중 탄압과 내전의 도구가 될 것이고, 화웨이 장비를 활용하여 불법으로 감시한 우간다와 잠비아의 야당 인사들은 부당하게 공격당하고 수감 혹은 살해될 것이다. 그리고 2017년 케냐 대선에서는 이미 가짜 뉴스가 판쳤고 약 100여 명이 선거와 관련하여 사망했다. 이 외에도 발전주의(Developmentalism)에 편승하여 아프리카를 포함한 남반구의 자연환경과 지역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개발을 서슴지 않는 '선진국'들의 금융지원 사례와 다국적 기업들의 이야기도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 올해 초 현대건설이 인도네시아의 한 해안도시인 찌레본에서 화력발전소 건설을 준비하며 환경파괴를 우려하는 지역 주민들의 시위를 무마하기 위해 지방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한 시민단체는 한국의 수출입은행이 금융지원을 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석탄 산업은 최고위급 정치인들이 엮인 부패의 무대이며, 기후변화에도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관련 경제 지원을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관련 기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4292038015)
메릴랜드 로욜라 대학교(Loyola University Maryland)의 역사학 교수이자 "Foreign Intervention in Africa after the Cold War: Sovereignty, Responsibility, and the War on Terror" (Athens, OH: Ohio University Press, 2018)의 저자이기도 한 엘리자베스 슈미트(Elizabeth Schmidt)는 올해 2월, Africa is a Country에 기고한 글 "우리는 아프리카의 정치적 위기를 통해 배운것: 외세의 개입은 나쁜 아이디어다"에서 강대국, 주로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각국에 개입한 사례를 들며 외부 개입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했다.
최근 아프리카에 대한 개입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유념해야 한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찾은 사례들은 공식적인 정당화가 어떻든 간에 외세는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전략적 이익이 있을 때만 개입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기보다 외국 군대의 개입은 대체로 권위주의적 정권의 외부 지지를 강화하고, 지역 분쟁을 심화하며, 지역 평화 전망을 어둡게 한다. (중략) 아프리카에서 특권을 쥔 엘리트와 그들의 외부 지원자들의 배를 불린, 정부를 위한 외세의 도움은 폭력과 불안정을 지속시켰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똑같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주화운동은 아프리카의 민주화 운동 세력처럼 교육 접근성과 일자리, 의료보험과 깨끗한 물, 위생, 전기와 사회기반시설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법의 지배를 존중하고 부패를 청산하며 자원을 더욱 공평하게 분배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민주 정부를 요구할 것이다. 만약 근본적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불만이 무시된다면 외부의 개입은 폭력과 불안정을 심화하고 지속적인 평화의 전망을 어둡게 할 것이다.
엘리자베스 교수는 외국 정부의 개입 사례를 주로 이야기했지만, 그의 주장에 외국 정부의 개입 대신 민간 기업들의 정치나 경제, 군사적 개입을 대입해도 어색함이 없을 것이다. 다국적 민간 기업들과 '강대국' 정권은 남반구 국가의 평화와 미래엔 그다지 관심이 없고, 남반구 국가 시민들의 고혈을 빨아 스스로와 권력자의 배를 불리는데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