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타라: 당첨된 번호입니다]와 나이지리아의 419 사기
주말이 막 시작할 때쯤 넷플릭스에서 "취향저격 추천 콘텐츠"라며 새로운 시리즈 하나를 추천해줬다. 추천받은 시리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인도에서 제작된 [잠타라: 당첨된 번호입니다] (Jamtara Sabka Number Ayega)였는데, 인도 드라마나 영화를 전혀 시청한 적이 없는 나에게 넷플릭스가 어떤 알고리즘으로 이 시리즈를 추천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떠오르는 것들이 있어서 시청해보았다.
이 시리즈는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이야기로, 실제 인도에서 피싱(Phishing-일종의 사이버 범죄로 어떤 회사나 사람을 사칭하여 상대방의 신용카드 번호, 암호 등의 민감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한때 악명을 높인 마을 잠타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총 10편으로 구성되어있고, 한편당 오프닝과 엔딩 크레디트를 제외하면 약 20분 정도의 시청시간을 가지고 있어 시리즈를 처음부터 끝가지 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약간 긴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면 앉은(혹은 누은?) 자리에서 다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인도의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피싱 이야기를 사기를 저지른 사람들 관점에서 풀어나간다는 큰 주제는 흥미롭지만, 아쉽게도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나 서사 자체의 매력은 크게 느껴지지 않아 중간중간 지루한 지점도 있고, 무엇보다도 피싱 자체가 시리즈의 중심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에 더 큰 비중을 든 드라마라는 점도 아쉬웠다. 이들이 어떻게 피싱을 시작하게 되고, 피싱의 잠재적 피해자들의 정보는 어떻게 수집하고, 어떤 레토릭으로 상대를 속이는지 등에 대해선 자세히 나오지 않아 극 전체의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
잠타라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잠타라는 인도의 북서부에 위치한 인구 9만여 명 정도의 지역으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인도의 사이버범죄 수도'로 악명을 떨치던 곳이다. 당시 인도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에만 잠타라에서 사이버 범죄로 체포된 사람은 100명이 넘으며, 잠타라 내에서도 잠타라 시내로부터 약 24km 떨어진 마을인 Jhiluwa에는 인구가 2천여 명이고 학교는 두 개뿐인데, 휴대전화 가게만 30개가 넘는, 추측하건대 이 마을의 주된 가업이 피싱일 가능성이 높은 정황도 있었다. 이 범죄로 체포된 사람들을 대부분 실직상태의 청년들이었지만, 이 중에는 30대의 마을 부촌장도 있어 이 범죄에 그 청년들의 가족과 공동체 사람들 상당수가 직접 개입하거나, 알면서도 방조했음을 알 수 있다. (관련기사)
[잠타라: 당첨된 번호입니다]와 잠타라 사건을 다루는 여러 기사를 통해 알려진 잠타라 피싱꾼들의 수법은 아래와 같다.
1단계) 가짜 신분증을 이용하여 만든 심카드를 전화기에 꽂고 무작위로 전화를 돌린다. 전화 연결이 되면 자신을 어떤 은행의 직원이라고 소개한 뒤, 당신의 카드가 곧 만료된다거나, 당신의 계좌가 행운권에 당첨되어 자동차를 받게 되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
2단계) 전화받은 사람이 그 말을 신뢰하는 듯 보이면 확인 절차라며 카드 번호와 CVC(카드 뒷면 서명란에 인쇄된 일련번호의 마지막 세 자리 번호로 보안 결제 등에 사용된다) 번호 등을 요구한다.
3단계) 피싱은 보통 2인조로 진행되는데, 전화를 건 사람이 신용정보를 받으며 파트너에게 불러주면 파트너는 그 정보를 입력하여 계좌이체를 위한 OTP 메시지를 생성하고, 다시 전화를 건 사람은 전화받는 사람에게 "확인을 위해 방금 받은 문자에 적힌 번호를 불러달라"라고 요구하여 OTP 번호까지 얻는다.
4단계) 피싱 피해자의 돈은 피싱 자금 세탁을 위해 포섭된 제삼자의 계좌나 휴대전화 번호로도 쉽게 개설할 수 있는 전자지갑 계좌로 송금된다.
잠타라 지역에서 왜 특별히 피싱이 유행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사건에 연루된 청년들은 한 목소리로 실업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많은 이들이 실업자의 자녀였고, 잠타라 지역엔 척박한 땅에서 농사짓는 것 외엔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더 잃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전국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전화 사기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을 것이다.
잠타라 이야기를 보고 읽으며 많이 떠올랐던 건 내가 2013년경 탄자니아에 1년간 지나며 만났던 수많은 젊은 사기꾼들이었다. 버스 티켓을 구입하거나, 여행지에서 투어를 예약하거나, 택시요금을 협상하거나 하는 일상 속에서 많은 청년들이 바가지를 씌우거나 사기를 치려했었다.
내가 탄자니아에서 겪은 사기가 모두 오프라인 사기라면, 아프리카에서 사이버 사기로 가장 악명 높은 나라는 나이지리아이다. 심지어 419 사기(419 Scams)라는 나이지리아의 이메일 사기를 부르는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다.
이와 관련해서 <A Culture of Corruption>이라는 책을 있다. 이 책의 저자 Daniel Jordan Smith는 인류학자인데, 나이지리아의 비정부기구에서 일하며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나이지리아 각지의 사이버 카페를 다니며 아주 흥미로운 연구를 했는데, 쉽게 말하면 사기 이메일과 관련된 연구였다.
나이지리아 사람들의 이메일 금융사기는 꽤나 유명한데, 그 역사는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석유로 호황을 누리던 나이지리아는 1980년 유가의 급락으로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쿠데타도 일어나 군사정권이 들어섰고, 경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1970년 석유 호황기에 교육받고 자라난 젊은 세대가 사회로 나갈 시기가 되었는데 불황이 심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자신들이 꿈꾸던 삶을 더 이상 이어나가지 못하게 되자 많은 청년들이 금융사기에 많이 뛰어들었다. 그때부터 나이지리아의 금융사기는 국제적 악명을 높이게 되었다.
이 사기는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출처: https://www.419eater.com/)
정부나 회사 대표, 혹은 망명한 왕족 등을 사칭하며 이메일이나 팩스를 보낸다.
받는 사람의 개인 계좌로 '과다 청구된 계약'의 수백 달러를 송금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송금 완료를 위해 해외여행을 할 것을 요구한다.
회사 기안 양식, 은행계좌 정보, 전화번호 등을 요구한다.
공식적인 것으로 보이는 도장과 봉인, 로고 등이 있는 여러 문서를 보내 해당 제안이 진짜임을 설명하고 증빙한다.
수백만 달러를 받기 위해선 선금이나 세금, 법률자문료, 이체료, 뇌물 비용 등이 필요하다며 청구한다.
다른 방식의 419 사기로는 부동산 투자, 저렴한 가격의 원유 구입, 유산 수혜, 수상 등의 주제가 있다.
나이지리아 형법 제 419조가 금융사기 관련 사기죄를 규정하고 있어 국제적으로는 419 사기라고 불린다. (419 Scams) 이런 거에 누가 낚이나 했는데, 미국 비밀경호국(Secret Service Agency) 추산에 따르면, 1990년대 419 사기로 인한 피해액은 50억 달러가량이 된다고 하니 장난 아니구나 싶다.
이 금융사기는 아주 느슨한 조직으로 운영된다. 주로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을 이 조직에서 가장 말단인 사람들, 혹은 프리랜서처럼 오가는 청년들이다. 이 책을 쓴 연구자는 이들 이상의 더 높은 사람들과는 접촉에 실패하여, 정확히 어떻게 운영되는 조직인지는 밝히지 못했지만, 사이버 카페(PC방)에 앉아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들인 정보들을 활용해 다른 나라로 사기메일을 보내는 청년들을 통해, 나이지리아의 부패문제가 어떻게 이 청년들의 일상에 침투했는지를 보여주었다.
한 청년의 인터뷰가 인상 깊고도 안타깝다.
저는 그저 발버둥 치고 있을 뿐이에요. 부모님이 돈이 없고, 정부가 사람들을 챙기지 않아서 저는 대학교를 마칠 수 없었어요. 오바산조(당시 대통령)와 그의 수하들이 엄청난 돈을 훔치는 동안, 나머지 사회는 무너져가고 있어요. 그게 진짜 419(사기)에요.
제가 하는 일은 생존을 위한 것이에요. 나이지리아에 기회가 있었다면 저는 여기 앉아서 부유하고 탐욕스러운 외국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있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어떻게 해야 정말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 일(419 사기)을 통해 부자가 된 사람들은 우리 돈을 훔치는 저 높은 분들하고 같은 사람이에요. 저는 그냥 발버둥 치는 사람일 뿐이에요.
For me, I am just struggling. I could not finish university because my parents did not have the money and our government does not care about the people. Obasanjo and his boys are stealing so much money while the rest of the society is falling apart. That's the real 419. What I am doing is just trying to survive. I would not be here sending these e-mails looking for rich, greedy foreigners if there were oppertunities in Nigeria. How much do I really get from this anyway? The people getting rich from this are the same people at the top who are stealing our money. I am just a struggle-man.
이 청년들은 나이지리아의 부패를 이용하고 있다. 부패한 나이지리아의 관료들이나 은행가, 기업가들을 사칭해 그들이 하는, 할만한 부정들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며 송금을 유도하고 있다. 때론 나이지리아를 넘어 이라크 재건 사업이나, 앙골라의 무기거래 등의 국제적인 이야기들로 사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들의 부패에 대한, 국제적 불평등에 대한 이해는 생각보다 높다.
아주 간헐적인, 혹은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대박'을 노리는 것 말곤 자신이 꿈꾸는 인생을 성취할 수 없다면, 게다가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 모두가 부패로 성공했다면, 누가 성실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하겠는가. 사람들은 복지서비스가 근로의욕을 떨어뜨린다고 하지만, 사실 한탕으로 돈 버는 사람들,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 돈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우리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린다.
대한민국도 정직과 성실이 대우받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모두가 건물주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임대료를 받으며 살아가는 꿈을 꾼다. 그리고 사회의 신뢰도 바닥을 쳐서,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심지어 원룸 월세 계약을 할 때도 '호구'가 되지 않으려면 이것저것 알아봐야 한다. 최근 여성들을 성 착취하는 N번방 사건을 여기에 대입해보니, 최소한 우리 사회의 젊은 남성들은 이미 무슨 짓이든 벌일 수 있는 기술과 비인간성을 갖추었다는 생각이 든다. 몇 해 전 광풍처럼 불었던 비트코인 열풍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비하면 별일 아닌 것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