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프리카 사막 메뚜기떼 창궐, 70년 만에 최대 규모
오늘 오후 발표된 질병관리본부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국내 발생현황에 따르면, 국내 확진자 숫자가 600명이 넘었다. 그리고 감염병 위기경보는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되었다. 코로나19가 한국에 상륙한 지 근 한 달, 벌써 우리 삶의 모습을 많이 바꾸어 놓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인 극단주의 종교단체와 코로나19의 '잘못된 만남'으로 지난주 중순부터 접어든 새로운 국면이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상상조차 잘 되지 않는다.
코로나19는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맹위를 떨치며 유럽과 북미 대륙으로까지 건너갔지만, 아직 아프리카 대륙에서 확인된 확진자는 지난주 발표된 이집트의 확진자 1명뿐이다. 하지만, 인도양 건너편 동아프리카 지역에선 아마 코로나19보다 메뚜기떼 창궐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에티오피아나 소말리아에선 지난 25년 동안 없었던, 케냐에서는 지난 70년 동안 없었던 최악의 메뚜기떼 창궐을 겪고 있다.
사막 메뚜기 (Desert Locust)
사막 메뚜기에 대해선 BBC의 "어떻게 한 마리 메뚜기가 역병이 되는가? (How a single locust becomes a plague)"에 시각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아주 잘 정리되어 있는데, 큰 메뚜기 사진과 수많은 점들이 나오는 기사니 혹시 이런 것들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주의가 필요하다.
사막 메뚜기는 원래 사막지역에 사는 메뚜기로, 알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는 단순히 뛰어다니는 메뚜기였다가 성장을 하면 날아다니는 메뚜기가 된다. 이때까지는 개별적 개체로 살아가기에 인간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는데, 어떤 식으로든 한번 모이게 되면 완전히 다른 특성을 가진다.
우선 갈색이었던 색깔이 붉게 변했다가 나중에는 노랗게 변하고, 무리를 형성하여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 하나의 메뚜기떼는 최대 100억 마리까지로 구성될 수 있고, 그 경우엔 하루에 200km까지 덮을 수 있다고 한다. 메뚜기떼는 이 엄청난 거리를 날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식물들을 먹어치우고, 계속해서 알을 낳아 가는 곳마다 재앙 그 자체가 된다.
식량농업기구(FAO)의 메뚜기 예측 담당관인 Keith Cressman이 2003-2005년의 사례연구를 발표한 자료 "Dessert Locust Economics: A Case Study 2003-2005"에 따르면 사막 메뚜기 1,100마리가 사람 1명분의 식량을 먹어치우고, 평방 1km 크기의 사막 메뚜기떼가 하루에 먹을 수 있는 식량의 양은 사람 35,000명, 혹은 코끼리 6마리가 하루에 먹는 양과 똑같다고 한다.
70년 만의 최악 메뚜기떼
요즘처럼 뉴스에 나오지 않을 때에도 모리타니와 인도 사이 사막지역엔 항상 사막 메뚜기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인간에게 무해한 곤충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조건들이 충족되면 이 메뚜기들은 날아다니는 재앙으로 변한다.
FAO의 2월 3일 소식지에 따르면 사막 메뚜기떼로 인한 피해는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가 있는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가장 심각하며, 케냐도 남부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사막 메뚜기떼의 공격을 받으며 이 지역 내 전례 없는 식량위기가 닥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공중과 육지에서 메뚜기떼 퇴치 활동이 이어지고 있으나, 충분하지 않은 상태이고 메뚜기떼는 이 지역을 넘어 남수단, 우간다, 에리트레아,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 심지어는 파키스탄에서까지 발견되고 있다.
늘 있어왔던 사막 메뚜기, 왜 이번엔 이렇게 많을까? 사막 메뚜기가 인간에게 얼마나 피해를 줄 것인가는 세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기온과, 강우, 그리고 바람. 이번 사태는 이 중 특히 강우와 관련이 큰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번 현상은 아주 아주 드문 현상이고, 이는 기후 때문에 생긴 일이며, 기후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간만 봐도 인도양의 사이클론 발생 횟수는 증가하였고,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엔, 작년에만 해도 인도양에서 8번의 사이클론이 관측되었습니다. 보통은 한번 정도 있는데 말이죠. 확실히 이러한 사이클론의 증가로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 메뚜기떼 창궐이 향후 더 증가할 것입니다. (Keith Cressman / FAO, 출처: FAO 팟캐스트)
내셔널 지오그래피의 관련 기사에서는 이번 상황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18개월 동안 동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 지역에 영향을 미친 드물게 잦은 사이클론을 포함한 이례적인 습한 기후가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최근의 폭풍우는 결국 인도양 쌍극자(Indian Ocean Dipole)와 관련되었는데, 호주의 심각한 산불을 일으켰던 것과 관련이 있는 극도로 확연한 바다의 기온 변화와도 연결되어 있다.
인도양 쌍극자 현상은 쉽게 이야기하자면 인도양의 양 끝인 동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해수온이 마치 시소처럼 서로 반대로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하는 현상을 말한다. 쌍극자 현상이 심화되면 인도양의 서부의 해수면 온도는 올라가고, 반대로 동부의 해수면 온도는 내려가 서부인 동아프리카 지역엔 강우량이 늘고, 서부인 호수 등지에는 가뭄과 폭염이 찾아온다.
많은 학자와 기후운동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인도양 쌍극자 현상이 계속 심해져 이러한 재난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마침 1870년 이후 가장 높은 인도양 쌍극자 지수를 기록한 지난해 말에 동아프리카엔 이례적 사이클론과 폭우가, 호주엔 가뭄과 대규모 산불이 발생해다는 점은 그들의 주장을 아주 강렬하게 뒷받침한다.
더 큰 문제는 국제사회가 기후 위기에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 못하는 동안 기후 변화는 계속되고 있고 따라서 인도양 쌍극자 지수는 계속 요동칠 것이란 점이다.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이번 동아프리카 메뚜기떼 창궐과 호주 대규모 산불은 기후 위기가 일으킬 재앙들의 서막에 불과했을 수 있다.
다시 지금 일어나는 일로 돌아와 이야기하자면, FAO는 이번 메뚜기떼 창궐을 끝내기 위해 7,600만 달러(한화 약 917억 원)가 필요하고 지금까지 1,540만 달러가 모였다며, 국제 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한편, UN 식량계획(UN WFP)의 사무총장 David Beasley도 이 메뚜기떼 창궐을 끝내기 위해 7,60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밝히며, 이 사태를 막지 못하면 WFP는 메뚜기떼로 인해 식량위기에 처할 1,300만 명에게 식량지원을 하기 위해 15배나 더 많은 11억 달러가 필요할 것이라며, 지원을 호소했다.
메뚜기떼를 직면한 농민들
메뚜기떼는 농토와 목초지를 황폐화하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식량을 먹어치운다. 이번 메뚜기떼 창궐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메뚜기떼가 모든 것을 파괴했다고 말하고 있다.
메뚜기가 보이자마자 우리는 바로 정부에 보고했어요. 그리고 이내 비행기들이 강변에서부터 살충제를 뿌렸어요. 몇몇은 죽었지만 나머지 메뚜기떼들은 우리 농장을 돌아다녔어요. 그들은 여기저기서 모든 것을 파괴했어요. 그들은 이제 우리 집으로 와서 알을 낳고 있어요. - Mwende Kimanzi, 케냐 키우티 카운티 농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보시다시피 메뚜기 떼는 모든 곳을 먹어치우고 우리 농장까지 와서 우리 농작물을 먹고 있어요. 이젠 끝이에요. 우리 아이들을 먹일 식량도 전혀 없고, 심지어 시장에서 살 수도 없어요. - Jirow Qorhere씨, 소말리아 두사마렙 지역 농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부인 Daisy에게 '곧 큰 호우가 올 것 같아!'라고 말했는데, 놀랍게도 몇 분 뒤, 비구름이 나무에 앉았어요. 분홍 내지 빨간 색깔의 그림자가 넓은 녹초지를 덮었습니다. 이때 우리는 이 무서운 메뚜기떼가 다음으로 앉을 곳은 우리 농장이란 것을 깨달았어요. 이번 농기는 지난 5년간 가장 좋은 농기였어요. 저는 메뚜기떼가 들이닥치기 전까진 최소한 280kg의 동부(cowpea)와 560kg의 녹두, 그리고 250kg의 옥수수를 수확할 것이라고 기대했었어요. - Lawrence Mwagire, 케냐 중부지역 농민, Climate Home News 인터뷰에서
마치 구름처럼 다가오는 거대한 메뚜기떼 앞이라면 그 누구라도 압도당할 것이다. 부족한 정부와 국제사회의 대응 속에 사람들은 자신의 농장을 지키기 위해서 농장을 뛰어다니고, 손뼉이나 페트병 혹은 북을 치고, 불을 피워 메뚜기를 쫓아내고 있다. 하지만, 비행기를 통한 살충제 살포로도 기세를 꺾기 어려운 메뚜기떼를 사람 힘으로 쫒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거대한 자연재해를 맨몸으로 손뼉을 치며 맞서야만 하는 사람들의 심경이 어떨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앞으로의 전망
농민들이 온몸으로 메뚜기떼와 맞서는 동안 정부와 관련 국제기구들은 하늘과 땅에서 살충제 살포를 하고 있고, 1월 한 달 동안에만 24만 헥타르에서 통제활동을 했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많은 수가 창궐한 메뚜기떼에 대응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FAO는 사막 메뚜기떼는 계속해서 증식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추가적인 지원과 조치를 취해야 함을 강조했다.
우리는 지금 당장 행동해야만 합니다. 메뚜기는 기다리지 않아요. 그들은 날아와서 파괴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응급한 상황을 처리해야 하기도 하지만, 생계와 장기적인 면도 생각해야 합니다. - Maria Helena Semedo, FAO 부사무총장
이번 메뚜기떼 창궐은 지난 농기 수확기 전후에 걸쳐있어서 몇몇 농가들은 운 좋게도 메뚜기떼가 오기 전에 수확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2월 중에 알을 깨고 4월쯤엔 새로운 무리를 형성하게 될 다음 세대의 메뚜기들을 막지 못한다면, 아주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케냐를 기준으로, 약 3월~4월쯤에는 대우기가 시작되는데, 농민들은 이 시기에 맞추어 파종을 한다. 만약 파종기에 메뚜기떼의 공격을 받는다면, 그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이미 식량안보에 취약한 이들 동아프리카 국가에서 이렇게 다음 농기까지 메뚜기떼가 악영향을 미친다면, 대규모 기근 및 난민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부끄럽지만, 처음 이 사태가 언론에 나오기 시작했을 땐 의례 있는 일이 또 일어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메뚜기떼뿐 아니라 동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의 병충해 피해나 폭우, 자연재해가 반복되고 있었고 그것들이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이례적인 것들이 동아프리카의 일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내 일상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겪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이례적인 것이 일상이 되는 건 비단 아프리카뿐만의 일이 아니다. 요즘 정말 이상한 일들이 많다. 불과 몇 주 전에서야 6개월 동안 맹렬하게 불타올랐던 호주의 산불이 진화되었고, 아마존도 지난해 근 10년 만의 최악이라고 불리는 화재를 경험했다. 그리고 같은 해 남부 아프리카엔 사이클론 이다이가 강타하여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전염병을 만나 전에 없던 일상의 변화를 겪고 있다.
우리는 이런 이례적 재난들을 정말 겨우겨우 넘기고 있다. 이 재난들이 우리의 일상을 끝끝내 무너뜨리지 못한 이유는 각 재난의 최전선에서 스스로와 결론적으로는 우리 모두를 지켜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동아프리카의 메뚜기떼에 어떻게든 맞서려고 애쓰는 농민들,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감염의 위험 속에서도 환자들을 만나는 의료진, 아마존과 호주에서 화마와 싸운 소방관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지탱해준 것은 그들의 가족, 공동체, 그리고 정부와 국제사회의 지지와 지원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연대가 전례 없는 재난들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도록 인류를 지탱해준 힘인 것이다.
동아프리카 메뚜기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당장 달려가서 함께 메뚜기를 쫓아볼 수도 있겠지만 비행기 탑승으로 인한 탄소배출 문제도 있고, 큰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높으니, 우리가 있는 이 자리를 지키되 피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내외 국제개발협력 NGO를 찾아 긴급 지원, 혹은 중장기적인 농가/공동체 지원을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