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바리 Mar 11. 2020

에티오피아항공 302편 추락 사고 1주년

보잉 737 MAX의 시스템 결함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한 중간조사보고서

에티오피아 항공 여객기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에티오피아 사업소 매니저님의 집에 초대받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나의 안전을 확인하는 코이카 사무소의 전화를 받고서 TV를 켜 뉴스를 봤다. 약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케냐로 향하던 에티오피아항공 여객기가 추락했다는 뉴스를 보며 매니저님도 나도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믿기지가 않는 사고였고, 에티오피아항공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사고였다. 1년 전 이날, 2019년 3월 10일 아침의 일이다.


사고 소식을 접하기 직전, 나는 제베나에 끓인 커피를 마시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Photo: 우승훈


당시 나의 출장은 에티오피아와 르완다, 케냐를 순서대로 방문하는 일정이었는데, 만약 방문 순서를 바꿨다면, 일정이 앞뒤로 하루 이틀만 바뀌었다면, 내가  비행기에 올랐을  있었다. 심지어  친구  한 명은 사고 하루 , 현지 조사를 마친  에티오피아항공 302편을 타고 케냐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사고에 관련된 소식을 들을 때면 내가, 나의 친구가 사고기에 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오늘이 사고 1주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내가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고,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이날 아디스아바바에서 출발하여 케냐 나이로비로 향할 계획이었던 에티오피아항공 302편 추락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은 총 157명으로, 1996년 125명의 생명을 앗아간 에티오피아항공 961편 납치 및 추락사고를 뛰어넘는 참사로 기록되었다.

https://brunch.co.kr/@theafricanist/88


사고 1주년을 하루 앞둔 어제, 에티오피아 교통부 (Ministry of Transport)는 중간조사보고서(Interim Investigation Report of Accident 737-8 MAX ET-AVJ, ET-302)를 발표하며,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보잉 737 MAX기의 시스템 결함을 지목했다. 아래 이어질 내용은 이 중간보고서 내용을 중심으로 사고 당시의 기록과 사고 원인에 대한 분석을 다룰 것이다. 한 가지 유념할 점은 보고서는 에티오피아 정부의 보고서이며, 보잉사는 보고서 내용에 대한 입장을 아직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6분간의 사투


2019년 3월 10일 오전 5시 38분, 에티오피아 302편 (보잉 737-8 MAX기)은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의 볼레 국제공항(Bole International Airport)에서 이륙하여 케냐 나이로비 조모 케냐타 공항(Jomo Kenyatta International Airport)으로 향했다. 이날 비행기에는 149명의 승객과 8명의 승무원이 탑승해있었다. 승객 중에는 케냐와 캐나다, 에티오피아 국적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았고, 나이로비에서 열리는 유엔 환경 총회(UN Environment Assembly)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탄 NGO 활동가, UN직원, 과학자 등도 20여 명 포함되어 있었다.


사고 직후 개최된 유엔 환경 총회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참가자들. Photo: UN Environment


ET302편은 이륙 직후 왼쪽 받음각 센서가 오류를 일으켜 운항 시스템이 비행기가 실속(비행기가 비행 중 양력을 잃는 것) 상태라고 인식하고 실속 방지장치의 한 부분인 스틱 셰이커를 작동시켰다. 게다가 기체 왼쪽과 오른쪽의 대기 속도, 고도 그리고 받음각의 값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고 이는 항공편의 기록이 끝나는 시점까지 큰 차이를 보였다.


이륙한 지 약 1분쯤 지났을 때, 관제사는 ET302를 발견했고, 고도를 높인 뒤 가능할 때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기체의 플랩이 접히자마자 보잉 737-8 MAX기에 탑재된 MCAS(Manoeuvring Characteristics Augmentation System, 자동 안전 시스템으로 기체의 앞부분이 너무 높아져 실속 상태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동으로 기체의 앞부분을 낮추는 기능을 함)이 작동하여 기체의 앞부분을 낮추기 시작했고, 기장은 다시 기수를 올리기 위해 애썼다.


MCAS의 원리와 센서 결함 시 문제에 대한 정리. Graphic: BBC



하지만 5시 40분 22초, MCAS가 두 번째로 작동하며 기수를 다시 낮추었고, 대지 접근 경보장치(GPWS)에서는 "추락 금지(Don't Sink)"라는 경보음이 3초간 울렸고, "기수 올려(Pull Up)"라는 경보 메시지도 계기판에 약 3초간 떴다. 이에 기장은 부기장과 함께 조종간을 잡고 기수를 올리기 위해 애썼지만, 5시 40분 43초, MCAS는 또다시 작동되어 기수를 낮추었다.


5시 40분 50초, 기장은 부기장에게 기체 통제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고, 부기장은 관제탑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5시 41분 30초, 기장은 부기장에게 함께 기체의 기울기를 올리자고(pitch up) 요청했고, 뒤이어 부기장에게 혹시 트림(항공기의 균형을 잡는 장치)이 작동되는지 물었지만 트림은 작동되지 않고 있었고, 부기장은 수동으로 작동을 시도해본 뒤, 트림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기장에게 보고했다.


5시 42분 10초, 기장은 항로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뒤 관제탑에 아디스아바바 공항으로 돌아가겠다고 알렸고, 관제탑은 우측으로 선회하여 돌아올 것을 요청했다.


5시 43분 21초, 기장이 부기장과 함께 마지막 수동 조작을 통해 기수를 올리기 위해 애썼지만, 기장은 기울기가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 직후, MCAS는 다시 작동하여 기수를 낮추었고, 비행기는 완전히 통제력을 잃은 채 추락을 시작했다.


비행기의 운항 기록은 5시 43분 44초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기록되지 않았고, 5시 44분, 에티오피아항공 302편은 아디스아바바에서 약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에제레(Ejere) 마을 인근 농장에 추락했다. 이륙한 지 약 6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구글 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고 현장. 사고 지점은 충격으로 10m 이상 파였다. Map: Google


이렇게 정상 비행 상태에서 센서 오류로 MCAS는 기수를 숙이려 하고, 조종사는 다시 기수를 들려는 사투를 벌이는 상황은 2018년 10월 29일 있었던 인도네시아의 라이온에어 601편 추락 사고와도 패턴이 비슷하여, ET302편 사고 직후에 보잉의 MCAS가 추락의 원인일 것이라는 추측은 많이 있었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에티오피아 정부의 중간조사보고서는 MCAS를 주 사고 원인이라고 지적한 반면, 인도네시아 교통안전위원회가 내놓은 최종 조사보고서는 MCAS의 문제뿐 아니라 라이온에어의 정비 담당자가 받음각 센터 설치 과정에서 테스트를 하지 않은 문제, 앞서 유사한 문제를 겪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등도 함께 언급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측 최종 조사보고서에도 에티오피아 항공의 관리 소홀 등의 문제가 포함될 가능성은 아직도 있다.



떠난 사람들


당시 항공기 기장이었던 Yared Getachew의 총 비행시간은 8,122시간이고 사고기와 동일한 보잉 737-8 MAX 기종 비행시간은 103시간이었다. Yared는 27세의 나이로 기장이 된 에티오피아 항공 최연소 기장으로, 사고 당시 그의 나이는 29세였다.

故 Yared Getachew 기장. Photo: et302.org


기장과 함께 기수를 올리기 위한 사투를 벌인 Ahmednur Mohammed 부기장은 사고 당시 25세로, 총 비행시간 361시간의 신참 조종사였다. Ahmednur는 원래 건축학도였지만,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대우가 더 좋은 조종사의 길을 택했고, 사고가 나기 불과 몇 개월 전 일을 시작했었다.


故 Ahmednur Mohammed 부기장. Photo: et302.org


유가족들이 만든 비영리단체 Flight ET302 Families Foundation의 웹사이트에는 사고 희생자들의 사진과 이야기가 담긴 추모공간이 있다. 60년 평생의 꿈이었던 사파리를 하러 가던 사람도 있고. 생일을 하루 앞두고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도 있으며, 나이로비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 총회에 초대에 초대받아 부푼 기대를 품고 비행기에 오른 사람, 10년 넘게 에티오피아항공 승무원으로 친절하고 성실하게 근무했던 사람, 고객을 만나러 몸바사에 가던 사람도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이 다 달랐고, 글에선 남겨진 사람들의 사랑과 그리움이 느껴졌다.


희생자들의 모습. Photo: et302.org


지난 8일엔 사고 현장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다. 유가족과 지역 주민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종교적 방법, 전통적 방법을 포함한 다양한 방법으로 각자 떠나간 사람들을 추모했다.


https://youtu.be/H-RsNI-xyeE


많은 유가족들은 보잉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중 한 사람인 케냐 출신의 Esther Wanyoike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소송을 진행 중인 유가족)는 이런 일이 다신 생기지 않길 원해요. 우리는 여기 에티오피아에서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보잉사를 압박해서 모두에게 안전한 비행기를 만들 수 있도록 한다면, 약간이나마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에티오피아의 일도 우리의 일처럼


나는 사고 다음날인지 그다음 날인지, 에티오피아의 어느 한국 사람에게서 "후진국에서 일하는 게 참 그렇죠?"라는 이야길 들었다. 그는 이 사고가 에티오피아가 "후진국"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때는 사고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벌써 에티오피아를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나는 이 사고가 보잉사의 탓인지, 에티오피아항공의 탓인지 따지고 싶지도, 따질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다. 하지만 적어도 에티오피아가 "후진국"이라는 점은 이번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정의를 실현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안다.


안타까운 사고들이 "후진국"에서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가볍게 다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사람들이 명보다 빨리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자주 일어나기에 덜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생명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똑같고, 생명의 상실 또한 똑같이 가슴 아파야 할 일이다. 에티오피아의 사건도, 아프리카 대륙의 사건도 우리의 일이나 소위 말하는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사건처럼 느끼는 세계 시민이 되길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까?



희생자들에겐 명복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에겐 진실과 정의, 그리고 위로가 있길 기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폭풍우 같은 재앙, 맨몸으로 맞서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