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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Nov 28. 2019

1996년 에티오피아항공 961편 납치&추락 사건

911 테러 이전 최악의 비행기 납치 사건

※ 본 이야기는 에티오피아 정부의 민간항공국(Civil Aviation Autority)이 1998년 5월 발간한 사고 최종 보고서(Final Report on Ethiopian Airlines B767-260ER Aircraft Accident in the Federal Islamic Republic of the Comoros in the Indian Ocean on November 23, 1996))를 참고하여 작성됨. 보고서는 다음 주소에서 볼 수 있음: https://www.fss.aero/accident-reports/dvdfiles/ET/1996-11-23-ET.pdf


1996년 11월 23일, 에티오피아 961편 (보잉 767-200ER기)은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의 볼레 국제공항(Bole International Airport)을 출발하여 케냐 나이로비와 콩고공화국 브라자빌, 나이지리아 라고스를 경유한 뒤 최종 목적지인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첫 번째 경유지인 아디스 아바바-나이로비 노선에는 163명의 승객과 12명의 승무원이 탑승해있었다. 승객 중에는 나이지리아와 인도, 에티오피아 국적의 승객이 가장 많았고, 한국인 승객도 1명 포함되어 있었다.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 수속 카운터에 있던 항공기 모형. Photo: 우승훈


UTC(협정 세계시) 8시 29분(에티오피아 시간으로는 오전 11시 29분) 에티오피아 961편은 아디스 아바바 공항에서 이륙했다. 그리고 이륙으로부터 약 20분쯤 지났을 때, 납치범 중 한 명이 일어나 조종실 방향으로 달려갔고, 나머지 두 명의 납치범도 그를 따르며 "모두 앉아있어! 폭발물을 가지고 있다!"라고 외치며 이 모든 일은 시작되었다.

 

조정실까지 달려간 세 납치범은 에티오피아 국적의 레을 아바테(Leul Abate) 기장에게 자신들이 11명이며 목적지를 바꾸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세 납치범은 역시 에티오피아 국적인 요나스 메쿠리아(Yonas Mekuria) 부기장을 폭행한 뒤 조종실 밖으로 내쫓았고, 기내의 소방 도끼와 소화기로 무장한 채 기장에게 목적지를 호주로 돌리라고 요구했다. 


이에 기장은 납치범들에게 호주로 갈 수 있는 연료가 충분하지 않으니, 케냐 몸바사에서 연료 공급을 우선 받자고 제안했으나 납치범들은 에티오피아 항공의 기내 잡지인 Selamta에 해당 항공편의 항공기 모델인 보잉 767기가 중간 급유 없이 11시간을 날 수 있다고 적혀있는 걸 봤다며 이를 거절했다.


에티오피아 항공 기내 잡지 Selamta. 출처: Selamta Magazine
Selamta에는 이렇듯 항공기 제원이 나와있다. 출처: Selmanta Magazine


아바테 기장은 현 상황과 잡지에 나온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며 지금 연료 상황에서 만약 케냐 나이로비 공항이나 몸바사 공항에 내리지 않는다면 비행기는 바다에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심지어는 계기판의 연료 현황판을 보여주며 지금 연료로는 호주까지 갈 수 없음을 설득하려 했지만, 납치범들은 기장의 말을 무시한 채 오히려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폭발물로 비행기를 폭파하겠다고 협박했다. 


기장이 묘사한 세 납치범의 소지품은 이랬다. 리더로 보이는 사람은 한 손에는 소방 도끼를, 다른 한 손에는 위스키 한 병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납치범은 소화기를, 그리고 또 다른 납치범은 한 손에는 위스키를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한 손에 폭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사고 비행기가 출발했던 날의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 볼레 국제공항의 보안검색은 적절하고 철저했으며, 납치범들은 폭탄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폭발물은 없었을지라도 그들은 기내에서 습득한 소방 도끼, 소화기 등을 이용하여 비행기를 점령할 수 있었다. 


리더로 보이는 납치범을 조종실에 남겨둔 채 다시 객실로 나간 두 납치범은 한 승무원에게 명령하여 기내 방송 시스템을 작동시켰고, 영어, 프랑스어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공용어인 암하릭으로 각각 그들이 비행기를 점령했고, 목적지가 바뀔 것이며, 폭탄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 필요하면 주저 없이 쓸 것이라고 방송했다. (아래는 생존자 Bisrat Alemu가 LA Times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납치범들의 기내 방송 내용)


우리는 탈옥수며, 정부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 비행기를 납치했다. 우리는 폭발물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라도 움직이면 폭파시킬 것이다.

납치범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기장은 이미 아디스 아바바 관제탑에 문제를 보고했고, 그들이 호주로 목적지를 바꾸길 요구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하지만 기장은 납치범들의 방해로 더 이상 아디스아바바 관제탑과는 교신할 수 없었다. 한편 해당 내용을 전해 들은 아디스 아바바 관제탑은 해당 내용을 케냐 나이로비 관제소에 연락하여 에티오피아 961편이 몸바사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해줄 것을 요청했다. 


에티오피아 항공의 기내 모습. Photo: 우승훈


한편 납치범들의 리더는 기장에게 호주에 전화하라고 명령했지만, 기장은 기내에 전화기가 없다고 답했고, 납치범은 화를 내며 그를 협박했다. 이에 기장은 그럼 전화할 번호를 달라고 했고, 납치범은 조종실에 있던 에티오피아항공 시간표에서 호주의 에티오피아 항공 영업소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이후 기장은 나이로비 관제탑과 교신하며 호주에 연락해 줄 것을 요청했고, 그 틈을 타서 고도와 위치, 남은 연료량 등을 공유했다. 


나이로비 관제탑은 해당 교신에서 에티오피아 961편이 몸바사 공항에 착륙할 예정인지를 물었으나 납치범들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이에 기장은 나이로비 관제탑에게 "나는 여기 납치범들이 당신의 교신 내용을 들었으면 한다. 혹시 할 이야기가 있으면 이야기해달라"라고 요청했고, 나이로비 관제탑은 납치범들에게 "여러분은 두 시간을 비행할 수 있는 연료밖에 없고, 당신들의 최종 목적지에는 도착할 수 없으며, 아마도 바다에 추락하게 될 것이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몸바사에 착륙한 뒤 연료를 더 채워서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납치범은 기장에게 자신들은 협상할 생각이 없다며 교신을 더 이상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납치범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아바테 기장은 계속해서 비상 착륙할 수 있는 공항들이 있는 해안을 따라 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행기는 결국 몸바사에 착륙할 수 없었고, 탄자니아의 잔지바 섬 방향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계속해서 연료 충전을 하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며 그들을 설득하려 애썼다. 에티오피아 961편이 탄자니아 다레살람 방향으로 비행하고 있을 때, 납치범은 한번 더 호주에 전화할 것을 요구했고, 기장은 이 기회를 이용 다레살람 관제소에 위치와 방향, 남은 연료 등을 공유했다. 이에 납치범은 기장의 헤드셋을 뺐었고, 해안에서 벗어나 호주 방향으로 가라고 요구했다.

 

결국 인도양으로 나가게 된 에티오피아 961편의 기장은, 마지막 대안이라고 볼 수 있는 인도양의 섬나라 코모로로 비행했다. 납치범 리더는 부기장석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며 조종석의 버튼들을 마음대로 눌렀다. 기장은 계속해서 납치범에게 연료가 얼마 없는 위험한 상황임을 알렸지만, 납치범은 그들이 처한 위험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고 한다. 


UTC 11시 10분, 코모로의 모로니 국제공항 관제탑은 구조 및 소방 부서에 테러리스트가 탑승한 에티오피아 항공 보잉 767기의 모든 교신이 끊겼고, 1시간 정도의 연료만을 가지고 있다고 알렸다. UTC 12시 30분경 구조 및 소방팀이 공항을 출발했다.  


코모로의 모로니 국제공항(Moroni International Airport) 활주로가 보이기 시작할 때쯤, 연료 부족 경보등에 불이 들어왔고, 기장은 마지막으로 납치범들에게 코모로 착륙을 제안했다. UTC 11시 41분, 계기판에 오른쪽 엔진이 꺼졌다는 경보 메시지가 떴고, 이에 납치범 리더는 객실에 있던 나머지 두 명의 납치범과 이야기하기 위해 조종실을 남시 떠났다. 


기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내 안내 방송을 실시했다.


숙녀 신사 여러분, 여러분의 기장이 안내방송드립니다. 우리는 연료가 부족한 상황이고, 현재 엔진 하나의 작동이 멈추었으며, 불시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상입니다. 엔진 하나의 작동이 멈추었고, 모든 승객 여러분들이 납치범들에게 대항해주시길 요청합니다.

레을 아바테. Photo: Alchetron

이 비행기의 레을 아바테 기장은 아주 특별한 이력을 가진 베테랑 파일럿이다. 사고 당시 그의 나이는 42세였고, 그의 총 비행시간은 1만 시간 이상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특별한 이력은 그가 이미 두 번의 비행기 납치를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1992년 4월, 105명의 탑승객과 함께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 공항에서 바하르 다르 공항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 에티오피아 574편을 조종하다가,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전 에티오피아 대통령의 경호원이었다가 수감된 후 탈옥한 두 남성에게 비행기 납치를 당해 원래 목적지가 아닌 케냐 나이로비에 착륙한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1995년 3월에 역시 아디스 아바바 공항에서 바하르 다르 공항으로 가는 국내선 항공편을 조종하다가 또 비행기 납치범들을 만나 그들의 요구에 따라 리비아로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이번 비행기에는 승객 85명과 승무원 7명이 있었다. 해당 비행기는 급유를 위해 수단의 엘 오베이드(El-Obeid)에 잠시 내려 급유를 시도했으나 수단 당국은 급유를 허가하지 않았고, 이 와중에 납치범들은 목적지를 리비아에서 스웨덴으로 바꾸었다. 비행기 급유를 두고 납치범들과 수단 당국이 협상하는 동안 기내 기온은 상승했고, 결국 납치범들은 평화롭게 항복했다. 아바테 기장은 두 번의 비행기 납치를 겪으면서도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디스 아바바 볼레 국제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는 에티오피아 항공기의 모습. Photo: 우승훈


기내 방송을 통해 납치범들에게 대항해 줄 것을 요청한 기장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은 납치범들에게 대항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별 제지 없이 조종실로 돌아온 납치범은 기장의 마이크를 빼았았고, 기장은 비행기 속도를 높이기 위해 하강을 시작했으나 납치범의 방해로 제대로 운항을 할 수 없었다. 


나머지 왼쪽 엔진마저 작동이 멈춘 뒤, 기장은 겨우 조종간을 잡고 하강을 계속했지만, 납치범은 급기야 기장에게 조종을 하지 말라고, 조정을 하려 든다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이에 기장은 "엔진 동력이 없는 비행기를 타고 있는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라 답했다. 일찍이 납치범들에게 폭행당해서 객실로 쫓겨났던 부기장은, 승객들이 벌써 구명조끼에 바람을 넣기 시작한 것을 발견하곤 다른 승무원들과 함께 승객들의 구명조끼 바람을 빼주며 승객들에게 추락 시 자세와 구명조끼 사용법을 안내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안내는 영어로만 이루어졌고, 몇몇 탑승객들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추락 2분여 전, 부기장은 "기장을 돕게 해 달라"며 소리치며 조종실로 겨우 돌아왔고, 부기장석에 앉아 기장을 도왔다. 코모로 앞바다에 추락하기 직전 기장과 부기장은 파도의 평행을 맞추기 위해 왼쪽으로 선회했으나, 왼쪽 날개를 먼저 수면이 낮은 바다에 긁으면서 그 충격으로 기체가 파손되었다. 아디스 아바바 공항에서 이륙한 지 약 4시간이 지난 UTC 12시 20분경이었다. 보고서에 나온 추락의 원인은 "연료 고갈로 인한 엔진 정지를 초래한 납치범의 불법적 방해", "unlawful interference by hijeckers which resulted in loss of enging power due to fuel exhaustion".


비행기가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추락했었기 때문에, 사고 직후, 인근에 있던 갈라웬 호텔(Galawen Hotel) 직원과 보트 대여점 직원들을 중심으로 구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UTC 13시경, 코모로 국립 라디오 방송국에 해당 사고소식이 방송되었고, 코모로 적십자와 헌병대, 군대와 인근 주민들이 사고지점으로 구조를 위해 달려갔다. 


이 사고로 총 175명의 승객과 승무원 중 119명의 승객과 6명의 승무원이 사망했고, 38명의 승객과 6명의 승무원은 중상을 입었으나 생존했으며, 2명은 경상, 4명은 부상을 입지 않았다. 항공기가 해안과 멀지 않은 바다에 추락했고, 추락 직후 인근의 보트와 잠수부 등이 구조작업을 시작했음에도 당시 기내의 많은 승객들이 구명조끼에 바람을 미리 넣어버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위급상황 시 절대로 기내에서 구명조끼에 바람을 미리 넣으면 안 된다. 비행기가 물 위에 추락할 때엔 기내로 물이 차올라 비상 탈출구도 물아래 잠기게 되는데, 이때 구명조끼에 바람이 들어가 있으면 잠수하여 비상 탈출구로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날의 사망자 중엔 케냐 출신의 사진가 모하메드 아민(Mohamed Amin)도 있었다. 그는 케냐 출신의 사진가로, 백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초래한 1984년 에티오피아 대기근을 촬영한 사진가로 알려졌다. 다음 링크에서 모하메드 아민이 촬영하고, BBC가 보도한 영상을 볼 수 있는데, 대기근의 처참한 상황이 그대로 담겨있으니 시청에 주의를 요한다 https://youtu.be/GkLPx8mQ-t0)


이 비행기에는 한국인 승객도 1명 있었다. 한국인 사망자는 당시 주 케냐 대한민국 대사관에 근무하던 고 이헌종 서기관이다. (관련 뉴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2519_19466.html)


이 사고는 올해 3월엔 아디스 아바에서 나이로비로 향하던 에티오피아 302편이 추락하기 전까지는 에티오피아 항공 최악의 항공 사고였다. 이미 다른 항공사에서도 비슷한 패턴의 추락 사고를 일으켰던 보잉 737 Max8 기종으로 운항되던 ET 302편은 3월 10일 오전 이륙한 직후 추락하여 탑승자 157명 전원이 사망했다. 


2019년 3월 ET302 추락 사고 당시, 아디스 아바바의 한 호텔에서 시청했던 추락 관련 뉴스. Photo: 우승훈


당시 나는 에티오피아 출장 중이었고, 추락으로부터 이틀 뒤 에티오피아 항공을 이용하여 르완다로 가는 일정이었다. 당시 출장은 에티오피아, 르완다, 케냐 3개국을 모두 방문하는 일정이었기에 일정이나 방문국의 순서가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내가 저 비행기에 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 항공 비행기의 기내 모습, 냄새, 분위기, 그리고 이륙 전 나오는 노랫소리 등등을 알기에 3월의 사고는 특히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프리카 방문 시 에티오피아 항공을 이용한다. 최근의 큰 사고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에티오피아 항공의 안전 운항 기록은 나쁘지 않으며, 인천에서 아디스 아바바 직항 노선이 있고, 무료 수화물 용량이 넉넉하고, 이미 기내에서부터 아프리카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큰 항공사라고 할만한 남아공 항공은 거의 파산 직전이고, 케냐 항공도 고전 중이지만 에티오피아 항공은 계속해서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The New Spirit of Africa"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아프리카 대표 항공사로 선도적이면서도 안전하게 성장을 이어나가 아프리카 각국을 연결하고, 아프리카와 타 대륙을 연결하는 일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표지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oeing_767-260-ER,_Ethiopian_Airlines_AN026891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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