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가도 갈 데가 없네(국제결혼 이야기1)
친정은 바다 건너 옆나라
해외 교포와 결혼해 해외에서 사는 한 연예인이, 부부싸움을 한 후 갈 데가 없어서 아파트 계단에 쭈그려 앉아있었던게 서러웠다는 이야기하는걸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내가 그와 비슷한 입장이 되니 그게 어떤 느낌이었는지 너무 잘 알게되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날 밤, 지금은 왜 싸웠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아주 심하게 싸운 적이 있다. 나는 내 화를 못 이겨 일단 집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럴 때 보통 짐 싸서 친정에 간다는데 친정은 바다 건너 옆 나라이고 나에게 갈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호텔에서 자기에는 돈이 아깝다는 현실적인 생각은 했던 것 같다.
이곳은 한국과 다르게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카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딱 한 군데였다.
24시간 영업하는 맥도날드.
그런데 동네 맥도날드에 있으면 혹시라도 남편이 찾으러 왔을 때 날 발견한 남편이 '그럼 그렇지, 네가 갈 데가 어디 있다고.'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그러면 ‘없어 보일 것’같아서 조금 더 먼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디를 갔냐면 바로 옆 동네의 맥도날드였다.
전철을 타고 한 정거장, 한 번도 내려온 적 없는 주택가 전철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어디에나 있는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언제 집에 들어갈지, 어떻게 하면 마음이 가라앉을지, 누가 잘못을 한 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뭐 하나 답이 안 나왔다. 나는 왜 갈 곳도 없어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하는지도 말이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생각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는데 점원이 뒤에서 말을 걸었다.
“열한 시를 넘으면 2층은 닫으니까 1층으로 가주세요.”
예상하지 못한 문제였다. 그렇게 쫓겨나듯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는 주문 카운터와 마주 보는 곳에 등받이 없는 의자가 몇 개 놓여있었다. 여기에서 밤을 새우지는 못할 것 같아서 나는 그냥 가게를 나섰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역으로 돌아와 개찰구 앞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한 시간정도가 지났다. 열두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나는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전철을 타고 다시 한 정거장, 우리 동네로 돌아갔다.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데 반쯤 왔을 때, 맞은편에 남편이 보였다.
서서 자전거 페달을 밟다가 나를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남편의 모습이.
‘안도의 한숨’이 어떤 것인지 나는 그때 알았다. 걱정과 불안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가 한숨으로 나온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아직 화가 나있는 상태였기에 남편을 보고 잠시 멈칫했지만 그대로 가던 길을 걸었다. 남편은 자전거에서 내려서 자전거를 끌면서 내 옆을 걸었다.
“어디있었어?”
남편이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앞을 보면서 걸었다. 나를 찾으러 왔네. 다른 길도 있었는데 엇갈리지 않고 만났네. 그런데 그럴거면 왜 화를 낸거지?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밤길을 걸을 뿐이었다.
우리가 화해를 한 것은 며칠이 더 지나서였다. 남편에게 굴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그런데 그날 나 찾으러 어디까지 가려고했어?”
“일단 (우리 동네)맥도날드.”
세상에. 옆동네까지 간 보람은 있었다.
우리는 그 후로도 몇 번 다른 부부들과 다를 바 없이 싸운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집 나가도 갈 데 없다. 어쨌든 둘이서 해결하자’고 나 자신에게 다짐하고는 했다. 처음에는 그게 다소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내가 둘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마다 짐을 싸서 나가거나 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겠지만 어떤 문제들은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식으로 문제를 피하는 방법만 선택하면 장기적으로 관계에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가끔 그날 나를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짓던 남편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 사람을 그렇게 걱정시키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편과 함께 지내는 우리 집이 내가 있을 곳이고 우리는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