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기준, 서울 김밥 한 줄의 평균 가격은 3,700원이라고 한다. 대학생 시절, 돈 없을 때 한 줄에 천 원씩 내고 사 먹던 김밥이었는데 어느새 가격이 네 배 가까이 치솟았다. 그럼에도 김밥의 가격을 알리는 기사의 댓글 중에는 '그래도 아직 김밥은 엄청 비싸진 않네'라는 반응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어지간한 식당에서 점심 한 끼 먹으려면 만 원 가까운 돈이 필요한 요즘이다. 외식비뿐만이 아니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영화 한 편을 보려고 해도,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에 어느 하나 선뜻 지갑을 열기가 무섭다. 집값은 오죽한가. 서울에서 아파트를 산다는 건 평범한 직장인에겐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지고, 돈이 무서워 아이를 갖는 것조차 포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출산율은 1.0을 밑돈 지 오래다.
그만큼 무서운 속도로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점점 더 가속이 붙는 듯한 화폐가치의 하락을 보고 있자면, 현금을 들고 있는 것이 불안해진다. 때론 멋모르고 열심히 돈을 모아 적금, 예금을 하는 사람이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현금을 자산으로 바꾸자니 그것도 쉽지가 않다. 보통의 직장인에게 부동산은 엄두도 내기 힘든 자산이고, 주식은 손대는 족족 손실이거나 그런 지인들 때문에 겁이 나 손이 가질 않는 사람들이 많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아예 마음을 내려놓고 소비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내 주변에만 해도 자산 형성은커녕 매달 카드값 내기에 급급해 만 원 한 장 저축하지 못하는 사람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거 한 번 참는다고 집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하며 갖고 싶은 물건을 손쉽게 사고 휴가철이면 어김없이 해외여행을 다닌다. 물론 그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애매한 위치에 있는 구축 아파트도 가격만큼은 애매하지가 않다.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으며 저축, 자산형성은 머릿속에서 지워진다.
그럼 평범한 직장인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렇게 소비만 하며 살아서는 안된다는 걸 마음 한 켠으론 깨닫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물가도 오르고 온갖 자산들도 다 오르지만 월급만큼은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이것저것 참아가며 돈을 모아봐야 집값은 모으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오르고, 모아놓은 돈은 화폐가치 하락을 피하지 못하고 휴지조각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을 떨치기가 힘들다.
그래도, 결국 결론은 하나다.
그럼에도, 저축이다.
일부 전문직계열을 제외하면 사회초년생들의 수입은 대부분 엇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차이가 없진 않겠으나, 대부분 사회초년생들의 수입이란 집값은 까마득하고 물가상승은 부담스러운 범주 안에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10년, 20년 후에 집을 사기도 하고 수억 원 대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기도 한다. 그에 비해 다른 누군가는 같은 시기에도 사회초년생 시절과 다를 것 없는 생활을 이어간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투자? 투자도 자본금이 있어야 대박이 날 수 있다. 부동산 투자를 하려면 목돈이 필요하고, 주식에서 수익률 100%, 200%를 달성해 봐야 투자금이 적으면 큰 의미가 없다. 결국 어떤 투자를 하든, 자본금이 필요하다. 바로 그 자본금을 만들어가는 과정, 저축에서 차이가 만들어진다.
아끼고 아껴 한 달에 몇십만 원 모아봐야 푼돈이다, 그렇게 집 사려면 수십 년을 모아야 한다며 코웃음 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대안이 있는가?
불평불만만 해봐야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대안이 없다면, 푼돈이라도 매달 모아가는 수밖에 없다.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갈 때 비로소 변화의 가능성이 생긴다.
열심히 모으고 모아도, 서울에 아파트 한 채 마련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파트를 사지 못한다고 해서 열심히 모은 돈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투자를 하고 성과를 낼 수 있을 만한 규모의 자본금을 마련했을 때 비로소 여러 가지 가능성이 열린다.
열심히 모은 돈을 예금, 적금으로 보유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화폐가치 하락이 아무리 빠르게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1, 2년 새에 수십 퍼센트씩 떨어지진 않는다. 화폐가치 하락으로 자산이 줄어들지언정, 그 자산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크고 작은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엄청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삶이 안정되게 느껴지고, 그래서 아끼고 모으는 행위가 덜 어렵게 느껴진다. 사실, 어느 정도 규모 있는 돈을 모은 사람이 그 돈을 현금으로 보유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돈이 모이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투자에 관심이 가기 마련이고, 어느 시점에서는 경제 공부를 시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모아놓은 돈을 어떻게 불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하는 경제 공부는 무척 즐겁다. 배우고 공부한 끝에 현금을 보유하기로 결정했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화폐가치 하락이 무서울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돈을 모아가는 과정에서 돈에 관심이 생겨 공부를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저축이 갖는 중요한 의미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적절한 소비 습관'이 몸에 밴다는 것이다.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우리의 주요한 투자 목적 중 하나다(사실 많든 적든 투자에는 돈이 들어가고, 그 돈을 현재 소비하는 대신 투자에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미래를 위한 대비이다). 평균 정년이 50세가 채 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80, 90세까지 윤택한 삶을 유지하려면 공적연금 외에 다른 현금흐름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현금흐름을 늘리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필요한 돈 자체를 줄이는 건 훨씬 쉽게 할 수 있다. 소비를 줄이면 된다. 필수적인 지출 외의 소비를 적절히 제한함으로써 적정 수준의 돈으로 균형 잡힌 삶을 사는 것이다. 단, 소비를 줄이는 것, 즉 지출 통제는 한순간에 해낼 수 없다. 퇴직 직전까지 높은 월급을 펑펑 쓰며 살다가 일순간에 필수적인 지출만 하며 사는 건 말은 쉬우나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한창 경제활동을 하는 시기부터 미리 지출 통제를 하며 적절한 소비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저축을 계획적으로 하다 보면 자연스레 적절한 소비 습관이 몸에 배게 된다. 수입에서 지출할 것 다 하고 남은 돈으로 저축을 하려고 하면, 대부분 저축에 실패한다.
수입에서 미리 계획한 만큼 저축을 하고 남은 돈으로 지출을 하며 생활해야 저축이 가능해진다.
미리 저축할 금액을 설정하려면 자신의 지출 규모를 파악해야 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소비를 점검하게 된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면 줄일수록 저축액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저축에 진심으로 임할수록 소비 습관은 더욱 건전해지게 된다. 이렇게 오랜 기간 저축하며 만든 소비 습관은 은퇴 이후에 균형 잡힌 삶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하다.
또, 자신을 절제하며 저축을 통해 만든 돈은 허투루 쓰지 않게 된다. 해외여행을 간다거나, 최신 스마트폰을 산다거나, 외제차를 산다거나 하는 등의 사치에 사용하기엔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참아온 과거의 시간들이 아까워 선뜻 쓰지 못한다. 작은 소비에서부터 큰 사치까지, 수많은 욕구를 참고 저축을 하다 보면 돈이 모이는 속도에 가속이 붙게 될 것이다.
올바른 소비 습관 형성과 저축을 위해,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가계부를 쓸 것.
지출의 용도와 규모를 파악하지 않고 지출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의 소비 습관을 파악, 점검하고 지출을 통제하는 데 기본 중의 기본은 가계부 쓰기라고 생각한다. 단, 문자나 알림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기록해 주는 가계부 앱은 추천하지 않는다. 직접 작성하지 않으면 내용을 확인하지 않게 된다. 조금 귀찮더라도 소비를 할 때마다 직접 작성하는 것을 권한다. 지출의 대략적인 분류와 금액만 적어도 좋다. 적다 보면 '내가 여기에 돈을 이렇게 많이 썼어?' 싶은 곳들이 있다. 그 지출을 줄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둘째, 체크카드를 사용할 것.
현재 갖고 있는 돈을 쓰는 것과 미래에 들어올 돈을 쓰는 것은 천지차이다. 신용카드를 씀으로써 지불을 미래로 미루고 아직 받지 못한 돈으로 대신하다 보면 지출에 무감각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신용카드는 결제일, 정산일이 따로 있어 이번 달의 지출 규모를 파악하기에 용이하지 않고, 심지어 월급날까지 엇갈리게 되면 계획적인 소비는 더욱 어려워진다. 1, 2개월 힘들더라도 마음을 굳게 먹고 신용카드를 잘라내길 권한다.
셋째, 할부를 하지 말 것.
두 번째와 유사한 이유이다. 당장 가진 돈보다 비싼 물건을 사기 위해 미래의 수입을 끌어 쓰는 것은 지출을 통제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수개월에 걸쳐 물건 값을 나눠 내다보면 물건의 가격이 싸 보이는 착시현상까지 일어나게 된다. 할부까지 해서 사야 할 만큼 필수적인 물건은 거의 없다. 가격대가 조금 있는 가전제품에서 자동차까지, 현재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만 사도록 하자. 돈이 부족하다면 더 모아서 사면 된다. 단, 미래를 위해 남겨둔 저축액과 별개로 따로 모으는 것이 좋다. 집을 제외한 모든 물건은 되도록 일시불로 사는 것이 현명하다.
2024년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미국의 백만장자들 중 88%가 저축을 가장 중요한 습관으로 뽑았다고 한다. 심지어 백만장자들 중 80%는 상속받은 재산 없이 자수성가를 통해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하니, 저축의 중요성이 더욱 실감된다. 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저축하지 않는다면 모두 사라진 돈이 되어 버린다. 소득이 많지 않더라도 지출을 통제하며 꾸준히 저축을 해나간다면 반드시 결실을 맺을 것이고, 투자의 길 또한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