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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조의 호소 Feb 03. 2016

어른아빠

너로 실감하는 단어

ㅋㅋㅋ

 채팅방 한 가운데 띄워진 사진 속에는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아기가 누워 있었다. 윙크하듯 구부러진 눈매나, 옅게 흩뿌려진 일자 눈썹이 딱 봐도 친구의 아이였다. 눈코입만 간신히 붙어 있는 작은 얼굴도 제 아빠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을 보니 부모의 유전자라는 게 새삼 경이로웠다. 세상에 나온 지 3일밖에 안 된 생명체가 아무런 설명 없이 이렇게 단번에 가족임을 증명할 수 있다니, 이게 바로 '유대'라는 건가 싶다. 멀리서 둘을 보는 나도 이토록 벅찬데, 서로를 바라보는 그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갑작스러운 득녀소식에 놀란 옛친구의 반응에 녀석은 멋쩍었는지 연신 키읔만 늘어놓았다. 스스로도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이 생소한 모양이었다.


 "얼마나 됐어?"

 "밖으로 나온지 3일."


 그야말로 갓난 아이였고 갓난 소식이었다. 문득 그가 야속해졌다. 자주 연락은 못해도 중요한 소식은 매번 업데이트 해 온 그였는데, 그간 아이에 대해 한마디도 없다가 오늘 대뜸 아이를 낳았다니! 근데 지난 번 아는 언니가 슬픈 일을 당했던 경우를 떠올려 보니 녀석의 사정도 이해는 갔다.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보니 주변에 말을 아끼기로 했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부모로 태어날 준비를 하느라 바빴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녀석은 얼마 전 내게 아무런 용건 없이 전화를 했었다. 내가 그에게 싱겁다고 말하는 동안, 그는 이 거대한 소식을 털어놓고 싶었는 지도 몰랐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깨방정만 떨 줄 알았던 녀석이 어느새 부모의 신중함을 배우고 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빠가 됐다니!


 "너가 청첩장에 써준 문구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고마워서. "


 그의 말에 잊고 있던 시절이 되살아났다. 2년 전이었나. 녀석이 한창 연애에 빠져 들떠서는 자기가 장가가게 되면 뭘 해주겠느냐고 묻자 나는 그의 청첩장에 들어갈 문구를 선물하겠노라고 농담처럼 다짐했었다. 그런데 진짜 그는 연상의 부인을 맞았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간질간질 오그라드는 문구를 고치고 또 고쳐 쓰던 그때를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났다. 사골 국물처럼 진한 카피를 써보겠다며 패기 넘치게 뛰어 다녔던 그때의 나에게서 풋풋한 냄새가 날아오는 것 같았다.


 "셋이서 야구장 가는 게 희망사항이야. 유니폼 제작도 하고. 근데 단점이 야구장은 너무 추워서."


 가족들과 이것저것 할 생각에 신나서 떠드는 놈이 귀여웠다. 아, 이젠 귀엽다고 하면 안 되겠지? 엄연히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으니. 그래도 아직은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가 않다. 녀석에게는 아직 '아빠'라는 단어가 잘 어울렸다. 풋풋하고 서툴지만 아이를 향해 쏟아지는 마음만은 비할 데가 없이 커다란 새내기 아빠. 이 어여쁜 가족이 진심으로 행복하길 빈다. 영원히 건강하기를 바란다. 온 마음을 다해 축복한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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