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감과 집순이 사이
사람들은 ‘무리 짓는 것’을 좋아한다. 회사든, 학교든, 동창회든, 커뮤니티든, 우리는 특정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에 떤다. 불완전한 개개인을 안전한 울타리로 묶어주는 ‘소속감’은 분명 달콤한 열매임에는 틀림없다.
나 역시 ‘소속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주 잘 안다. 20대 후반, 회사와 집을 떠나 백수생활을 하던 때가 있었다. 이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힘들었던 시기였다. 타지에서 이렇다 할 소속도 친구도 없었던 나는 꼭 유령이 된 것만 같았다. 당장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알아챌 사람 하나 없을 것 같은 공포감. 이 무시무시한 외로움은 3년 뒤 취직을 하고 내 이름과 회사 이름이 나란히 적힌 명함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잦아들었다. 소속감과 함께 안정감도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청개구리 기질이 있어서, 사회조직의 일원으로서 조금씩 끼워 맞춰져 갈수록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 사람들과 있으면, 그들이 내 등에 빨대라도 꽂은 것처럼 에너지가 쭉쭉 빨려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수록 나는 일분일초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침대 위에 드러눕고 싶어졌다. 또다시 혼자 있는 시간을 그리워하게 된 것이다.
나는 집순이다. 홀로 방 안에 딱 붙어서 하루든 일주일이든 있을 수 있는 사람. 오롯이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내향적’인 사람. 혼자 있으면 좋은 것들 중 단연 으뜸은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밖에 있으면 외부요인들을 의식하고 신경 쓰느라 정작 나에게는 소홀해지기 마련인데, 나만의 공간에서는 나를 충분히 들여다볼 수가 있다. 내가 지금 얼마나 지쳐있는지, 행복하긴 한지, 불행하다면 그 원인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내가 나를 깊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진정으로 나를 존중해 줄 수가 있다. 이밖에도 혼자 있으면 편한 차림으로 드러누워 책도 볼 수도 있고, 유치한 드라마를 보면서 펑펑 울 수도 있고, 우스꽝스러운 시를 써볼 수도 있고, 한밤중에 막춤을 출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혼자 있다고 해서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말에 약속 하나 없이 방안에 처박혀 있으면 멀쩡하던 기분이 착 가라앉기도 한다. 집에 있으면 긴장이 풀리는 만큼 생산적인 모드도 같이 느슨해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도 찾지 않는 나를 자각할 때면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 괴롭다. TV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패널들만 봐도 ‘무지개 회원’이라는 동료애로 연대하며 함께 추억을 쌓는데. 내가 온전한 ‘마이웨이(My Way)’라면 이런 내적 갈등을 겪을 필요도 없을 텐데, 딱히 그런 사람도 못 돼서 혼자 어정쩡하게 만족과 불만족 사이를 배회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답은 앞으로 살면서 찾아야겠지만,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나를 잃지 않는 자세’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소속감을 우선으로 하는 사람이면 그 안에서 나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오는 만족을 즐기면 되고,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중시 여긴다면 혼자 있는 동안 만큼은 잡생각을 버리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에 집중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살면 될 것이다. 물론 두 가지 모두를 잡을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인생이란 게 하나를 쥐면 다른 하나는 놓게 되어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