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두 달 살기, 벌써 19일째.
날씨는 매일 화창한데, 기분은 왜 이렇게 흐릴까.
어제는 분명 신나서 수영도 하고 의욕이 넘쳤는데.. 통제할 수 없는 건 날씨가 아니라 내 호르몬인 것 같다.
서울에 있을 때 버리지 못한 집순이 기질 탓일까, 타국에서 서툰 언어로 낯선 상황을 헤쳐나가기 두려운 탓일까. 요즘 난 집밖으로 나가질 않는다. 지독히도 아무것도 안 한다. 매일 늦잠 자고 일어나 간단히 배를 채우고 한국 과자를 먹으며 한국 예능이나 유튜브를 보다 지인 퇴근시간에 맞춰 밥상을 차린다. 그야말로 하우스키핑 또 키핑.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지금도 난 수영장 벽이 보이는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다. 내가 생산해 내는 거라고는 똥오줌과 이산화탄소밖에 없다. 아, 인스타는 꾸준히 올렸구나. 현실과는 정반대로, 그곳에는 멀쩡히 여유를 즐기는 내가 있다. 그거라도 있어야 내 미국행이 합리화될 것 같아서.
'이러려고 여기까지 왔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왜 이렇게 답답한지 모르겠다. 하루하루 시간은 흐르는데, 정말이지 한 게 없다. 주말 몇 번 외출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지인의 도움을 받으며 힘들게 버스와 트롤리를 타고 가서 문 닫은 관광지 주변만 어슬렁대다 돌아온 게 다다. 나 스스로 한 일은 뭐가 있을까. 스타벅스 한 시간 있다 온 거? 쓰레기 혼자 버린 거? 아침저녁밥 차린 거? 설거지한 거??
현지적응이 더 되어 있는 지인한테 자꾸 기대게 된다. 그래서 걔의 존재가 너무 중요해졌다. 그 사실이 너무 싫고 짜증 난다. 시시각각 걔 기분 살피는 것도 존심 상한다. 오매불망 걔를 기다리는 내가 너무 한심하고 무기력하다. 그러다 며칠 전엔 나도 참다 참다 짜증을 냈고, 우린 싸웠다. 담날 아침 바로 화해하긴 했지만,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뭐 대단한 결심으로 이곳에 온 건 아니었다. 모험심도, 호기도 아니었다. 일말의 호기심과 '미국 두 달 살기'라는 그럴싸해 보이는 명분, 취업을 그만큼이라도 더 미루고 싶었던 회피였을 뿐.
혼자 요가수업이라도 들으려고 챗지피티와 구글맵을 잠깐 뒤져본다. 무성의하게, 언제라도 창을 끌 마음가짐으로. 역시나 바로 포기했다. 멀쩡한 곳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차로 10여분 거리가 대중교통으로는 30분~한 시간 넘게 걸린다니까 의지가 팍 꺾이는 거다. 나는 이 넓은 땅에서 미아가 되고 싶지 않다. 비겁하게 차 없는 상황을 탓하며 모든 창을 끈다. 서울에서도 차는 없었는데.
담달 2주간 떠날 여행계획도 짜야하는데 이러고 있다. 비행기표와 숙소가 더 비싸지기 전에 하나라도 더 알아봐야 하는데.. 솔직히 지금 컨디션으로는 별로 가고 싶지도 않다. 가면 다 돈이고 에너지고 당황이고 불안일 텐데. 굳이 사서 고생하고 싶지가 않다. 여행은 본래 그런 건데... 담달 여행을 추진하게 된 것도 사실 지인의 룸메가 그때 돌아와서, 마주치기 싫어서였다.
난 더 이상 혼자서 모험할 줄 모르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 나이 40을 앞두고도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한심한 백수, 초라한 겁쟁이가 바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