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다
일요일 오전, 며칠 간 미뤄둔 샤워를 하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살짝 젖은 머리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하늘이 가득 보이는 창가. 이렇게 누워 있으면 하늘 바로 아래 있는 느낌이 든다. 몸을 반쯤 일으켜 앉으면 창 너머로 작은 바다가 보인다. 음질 좋은 스피커에서 내가 좋아하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OST가 흘러나온다. 새삼 지금 이 자리가 웬만한 카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 명당을 두고 굳이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휴직에 들어가기로 했을 때, 회사 동료들과 친구들은 집에만 있지 말고 숲 같은 데에 다니면서 피톤치드도 쐬고, 뷰 좋은 카페 가서 책도 읽고, 평소 쓰고 싶었던 글도 실컷 써 보라며 좋은 말을 많이 해 주었다. 사실 그때의 나는 심신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태라 그 어떤 조언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걱정 어린 그들의 눈빛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왜 이렇게 지치게 된 걸까. 경직된 상사와의 관계 때문이었을까, 내게 맞지 않는 일 때문이었을까, 몸에 든 병 때문일까, 그것을 치료하려 먹는 약의 부작용 때문인 걸까. 분명한 건 모든 게 버거웠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도 내겐 커다란 의무로 느껴졌다. 주로 이야기를 듣는 편인 내게 상대방은 무리한 반응을 요구하는 존재로 다가왔다. 어쩌다 내가 발언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몇 마디만에 얼굴부터 귀까지 빨개져서는 말끝을 맺지 못하기 일쑤였다.
아, 내가 고장이 났구나, 싶었다. 자연스레 출근하는 시간 빼고는 죽은 듯이 지냈다. 사람을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 어떤 것에서도 흥미나 재미나 의미를 찾지 못했다. 억눌린 본능은 욱하고 튀어나와 모르는 사람과 시비를 붙였고, 급기야 마지막을 위한 스위스 여행을 검색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진정 휴식이 필요한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계획을 세워야 한다.'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
'식단관리를 해야 한다.'
'이참에 자기 계발까지 하자.'
'어디든 나가야 한다.'
어째서 나는 어렵게 자유를 얻고도 다시 스스로를 가두려 하는가? 이번에는 절대로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자고 싶으면 드러누워 자고, 먹고 싶은 게 있음 실컷 먹고, 나가기 싫으면 몇 날 며칠 몇 주 몇 달이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것이다. 세상이 옳다는 게 나한테 반드시 맞는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