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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봉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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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한 Nov 28. 2019

봉사일기 - 고척동

다문화 가정 도배, 장판, 단열 및 전기공사

한겨울 영하의 날씨가 되면 집고치기가 어려워진다. 추운 건 따뜻하게 껴입고 일하다보면 괜찮아지지만, 결정적으로 풀도 벽도 얼어 도배가 잘 되지 않는다. 올해의 집고치기 봉사일정은 이게 마지막이다.


엄마와 어린 딸이 기다리고 있다. 딸은 처음 보는 아저씨들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탐색하다가도, 엄마가 조금만 눈에서 멀어지면 울음을 터뜨린다. 공사 중에는 다른 곳에 가 있는다고 하니 다행이다.


나를 비롯한 전문인력들 외에는 무작위로 봉사자를 모집한다. 그래서 매번 분위기가 다르지만, 올해 마지막 봉사란 것을 알고 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유난히 화기애애하다. 애써 말을 걸어주지 않아도 서로들 도란도란 이야기가 오고간다. 따로 신경써줄 필요가 없으니 나는 공사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예정보다 빠른 시간에 마무리가 된다.


몇몇은 못내 아쉬운듯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한다. 벌써 친해진 사람들은 내년 봉사를 기약하기도 한다. 옛날 같았으면 되는 사람들끼리 차라도 마시고 가자고 할텐데, 이젠 확연히 느껴지는 나이차에 쓴웃음만 짓는다. 기술자들만 따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


공사도 좋은 분위기에서 잘 끝났겠다, 송년회 같은 분위기에 고깃집에서 오랜만에 기분좋게 폭식을 한다. 취기도 평소보다 빨리 올라온다. 가장 어린 친구의 따끈한 연애 근황은 아저씨들의 좋은 안주거리다. 밖에는 쌀쌀한 바람이 부는데, 유난히 따뜻한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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