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도 삼각산에 오르면 정상 부근에 원나라 순제가 망명해 살았다는 설이 기록되어 있다.
‘삼각산’이란 명칭은 천자나 왕의 도읍지에서 사용하는 이름인데 원 순제가 대청도에 유배되어 궁궐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형태가 삼각형 또는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붙여진 이름‘이라 설이다.
당시 비가 내리는 삼각산(343m)을 오르며 전망대 포토존 안내판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도 한편으론 아니, 왜? 원 순제가 이곳 대청도까지 와서 망명 살이를 했을까? 아무리 원나라가 멸망을 했다 하더라도 이곳까지 와 살았을까? 이런 안내판을 왜 설치한 걸까? 그야말로 갸우뚱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산에 오르다 보면 이런 믿기지 않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종종 눈에 띄는데, 삼각산의 원 순제 유배설은 참으로 믿기지 않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대게 사실 근거가 없거나 있어도 상당히 미약한 근거에 바탕을 두기 십상이다.
『원사(元史)』와 『명사(明史)』 같은 중국의 정사(正史)에 따르면, 당시 왕조 교체기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실제로는 원나라 멸망 후 순제는 몽골 고향인 응창(응격) 지역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낸 것으로 확인된다. 순제가 대청도에 유배되었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삼각산 전망대의 안내판에 기재된 위 이야기는 어떻게 된 내용일까?
진위 여부를 떠나 이런 이야기가 대청도에 전해지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이래저래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한반도에서 역사적 또는 지리적으로 의미 있는 '삼각산'은 서울과 평안남도 두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대청도에 삼각산이 있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서울의 삼각산은 북한산의 옛 이름으로, 서울 북쪽에 위치한 이 산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를 포함해 세 개의 주요 봉우리가 있어 삼각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북한산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삼각산으로 표기된 산으로 과거 한양의 역사적인 중요성과 지리적 상징성이 있는 산이다.
삼각산이 언제부터 북한산으로 개칭되었는지는 정확한 근거가 없다. 다만,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 북한산성이 축조되면서 이 지역 산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북한산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북한산성은 수도 한양의 방어를 목적으로 축성된 중요한 군사 유적으로, 이로 인해 삼각산이라는 전통적인 이름이 점차 북한산으로 대체되기 시작했으며, 근.현대에 들어 공식적인 명칭으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여진다.
흔치 않지만 요즘도 산에 오르는 일부 어르신들은 관습적으로 여전히 삼각산이라 부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옛 노래지만 남수련의 ‘삼각산 손님’이란 노래에도 삼각산이란 명칭이 나온다. 원곡은 태성호에 의해 처음 발표되었는데, 삼각산을 배경으로 한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을 담아내는 가요다. 이 노래에서 삼각산은 다분히 상징적으로 사용되는데, 고향의 정서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평안남도 삼각산은 북한 평안남도 대동군과 강서군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역시 세 개의 봉우리가 삼각형을 이룬다고 하여 삼각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평안남도 삼각산은 한반도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지역에서 중요한 지리적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산은 지금도 삼각산이라 불린다.
아무튼 대청도의 삼각산, 원 순제 관련 이야기는 구전되는 전설 같은 것이란 전제하에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첫째, 순제가 대청도에 유배되었다는 전설은 원나라가 가진 권위와 멸망 이후의 상징성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원나라가 중국과 광대한 몽골 제국을 통치했던 막강한 제국이었던 만큼, 그 마지막 황제의 행적은 다양한 이야기와 전설로 남게 되었을 가능성을 얼마든지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원나라의 몰락 이후 중국인과 주변 국가 사람들은 원나라에 대한 다양한 감정, 특히 강력했던 제국의 몰락에 대한 연민, 두려움, 경외를 품고 있었기에 이런 류의 이야기가 만들어져 구전되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둘째, 대청도처럼 외딴섬이나 타국과의 국경에 인접한 장소는 전쟁, 유배, 망명 등과 자주 연결되었고, 이는 그 지역이 고립되거나 특수한 장소라는 상징성을 부여했다. 이러한 상징성은 대청도를 중국 본토에서 추방된 왕족이나 귀족이 머물렀을 것이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더욱이, 삼각산이라는 이름 자체가 천자나 왕과 연관되는 이름이라는 점에서, 그곳에 중국의 강력했던 원 왕조의 황제가 지내던 궁궐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삼각산을 더 신비롭고 중요한 장소로 여겨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전설은 민족적 기억과 지역의 역사적 자부심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은 이야기임을 부인할 수 없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원나라 천자인 순제가 이곳으로 망명하여 살았다는 설이 ‘지역의 역사적 자부심 때문에 생겨난 전설’이라 가정한다면, 중국 원나라의 황제와 대청도의 역사적 자부심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당연하게 생기기 때문이다.
원나라 순제가 대청도에 망명했다는 전설은 겉보기에는 이질적인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전설은 실제로 지역의 역사적 자부심을 강화하는 기능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전설이 대청도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이유는 과거 제국의 황제가 거주했을 수 있는 특별한 장소로 대청도를 부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지역은 단순한 섬을 넘어,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때 중요한 곳이었다는 상징성을 얻게 된다.
이 전설은 단지 원나라 황제와 관련된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몰락 이후에도 잔존하는 권위와 중요성을 대청도가 잠시나마 간직했다는 상징성도 부여하고 있다. 이는 대청도를 역사적으로 특별한 장소로 인식하게 만들어, 주민들이 고유의 정체성과 지역적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데 기여한다 할 수 있다.
또한, 원나라 황제의 망명지로서의 대청도라는 전설은 왕조의 몰락과 유배지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대청도라는 장소의 역사적 깊이와 신비로움을 더해 줄 수도 있지 싶다. 이는 지역민들에게 단순한 섬이라는 일반적인 이미지보다, 더 크고 의미 있는 역사를 품은 장소라는 문화적 자산으로 느껴지게 할 수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긴 하나, 이런 설명이 있다면 그나마 삼각산 전망대 안내판의 이야기가 조금은 이해가 될 수 있지 싶다.
https://blog.naver.com/j8401/222762280300
@Thebcstory
#삼각산 #대청도 #북한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