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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으로 채워지는 삶의 여백

by 조영환

이제 막 튀르키예 여행에서 돌아왔다. 짐을 정리하고, 빨래를 돌리고, 방 청소를 하며 여행의 여운을 조금씩 정리해본다. 여행은 끝났지만, 그곳에서 느꼈던 순간과 떠올랐던 생각들은 여전히 머물러 있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여행이 내 삶에 남긴 흔적들을 차분히 곱씹게 된다.


여행지에서 떠올랐던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해 보았다. 여행지에서의 순간들은 현실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게 했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경 속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마치 꽉 찬 삶의 공간에 작은 틈을 만들어 준 것 같았다. 그 틈은 새로운 여백을 허락했고, 그 여백은 나를 조금 더 가볍게, 자유롭게 만들어 주었다. 여행이란 결국, 나와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특별한 시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삶은 언제나 채움에 대한 요구로 가득하다. 해야 할 일, 책임, 목표, 그리고 축적해야 할 경험과 지식들. 이 채움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지만, 역설적으로 채움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비움 없이는 그 채움마저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비우지 못한 채움은 삶을 무겁게 만든다. 오래된 물건으로 가득 찬 방처럼, 우리의 마음도 낡고 쓸모없는 것들로 얽히게 된다. 불필요한 집착과 지나간 후회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스스로를 돌볼 여유를 앗아간다.


여행은 그런 비움의 연습을 가능하게 한다. 익숙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는 순간, 나를 얽매고 있던 많은 것들이 실은 없어도 괜찮다는 걸 느끼게 된다. 나는 여행 중 문득 묻곤 했다. "나는 무엇을 더 채워야 할까?" 그러나 진정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비워야 할까?"였다. 오래된 미련, 비교에서 비롯된 불필요한 욕망, 쓸데없는 걱정들이 한때는 필요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떠나보내야 할 짐이었다.


비움은 어렵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가벼움은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비운 자리에는 새로운 빛이 들어오고, 그 빛은 더 나은 채움을 위한 시작이 된다. 그렇게 나는 여행에서 다시 배운다. 비움과 채움이 조화를 이루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풍요롭고 단단해지는 길이라는 것을.


열흘간의 여행 속에서, 하루 이틀 단위로 마음을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여행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길임을 깨달았다. 그 선택은 작은 결론이자 큰 쉼표였다. 결국, 내가 원하는 여행이 곧 나를 지키는 길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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