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십인십색(十人十色)으로 무언가를 외치고 있다. 그 외침은 조화를 이룬 합창이라기보다는 제각각 다른, 조화롭지 못한 음조로 울려 퍼지는 불협화음이나 다름이 없다. 소셜 미디어는 비난과 정당성의 목소리가 부딪히는 장이 되고, 정치와 사회적 논의는 의견보다 진영 논리에 지배당한다. 그 결과, 남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오해와 분열이고, 대화는 설득이 아닌 논쟁으로 변질되어 화합이 아닌 대립만 남는 현실이다. 거기에 덤으로 서로를 향한 배척과 외면까지 얹어지는 모습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모두가 목소리를 높이는 와중에 나의 목소리를 얹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세상에 나의 목소리까지 보태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침묵은 더 큰 의미를 지닌 대화의 기술이 아닐까?
침묵은 그저 단순히 말을 멈추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귀 기울이는 태도이자 공감을 여는 첫걸음이다. 듣는 태도가 대화의 방향을 결정한다. 내 생각을 잘 전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상대방의 뜻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서로의 다름을 마주한 채로 이견을 좁혀가는 과정, 바로 그것이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대화다. 어쩌면 가장 큰 용기는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조용히 침묵을 선택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침묵은 회피가 아니다. 침묵은 듣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이면의 진짜 메시지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침묵의 진정한 모습이다.
침묵의 순간은 절대로 공허하지 않다. 침묵의 순간은 질문으로 시작해 성찰로 이어진다. 그것은 곰곰이 생각하고, 질문하며, 스스로에게 되묻는 시간이다. '내 말이 어떻게 들릴까?'라는 질문이 '내가 무엇을 바라는가?'라는 성찰로 확장된다. 내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닿을지 고민하며, 나와 다른 목소리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다.
대화는 나의 뜻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상호작용이다.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가 불씨가 될 수도 있는 세상에서, 한 번 더 성찰하는 침묵은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감정을 동시에 담아내야 하는 일이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우리는 더 깊이 듣고, 더 신중히 말해야 한다. 내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공통점을 찾는 노력이야말로 조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시작점이다. 침묵은 말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가능성을 찾는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나의 침묵은 울림이 될 수 있다. 이 침묵이 모두를 잠시 멈추게 하고, 깊은 생각과 성찰로 이어진다면 그 자체로 하나의 대답이 될 것이다.
침묵은 마치 캔버스 앞에 앉은 화가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백과 같은, 새로운 대화를 시작할 여지와 같은 것이다. 여백이 많으면 많을수록 화가는 자신의 그림을 더 잘 그려 나갈 수 있는 이치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음악은 소리를 내는 음표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쉼표가 있어 더 풍성하고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름다운 음악이다. 악보에 적힌 쉼표처럼 완급을 조절하는 호흡과도 같은 것이 바로 침묵이다. 음악의 쉼표가 소리를 풍성하게 하듯, 대화 속 침묵은 공감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침묵은 곧 여백이다. 그 여백이 클수록 그림은 깊어지고, 대화는 더 풍요로워진다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은 옳고 그름을 재단하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주장하기 전에 한 번 더 듣는 자세를 통해 비로소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침묵 속에서 당신은 무엇을 듣고 있는가? 그 안에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공감의 다리를 놓고 있는가? 대화는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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