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둘

by 조영환


나는 65세의 남자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간관계는 점차 축소되었고, 정확히 말하면, 많았던 모임과 관계를 의도적으로 청산했다. 사람들과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그 대신 나의 일상은 고요하고 차분해졌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인간관계에서도 때때로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무겁고 불편하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만을 우선시하며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모여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하거나 고매한 인품을 지닌 사람은 아니다. 스스로를 정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인생이 그렇듯 나도 적당히 통속적인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심정을 이야기하면, 그런 사람들은 “왜 인생을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라고 되묻는 경향이 있다. 그 대화는 말에 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결국 말장난이나 싸움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왜 그런 어색한 관계에 부역해야 하는지, 나는 그 질문을 수도 없이 내게 던지고 또 던진다.


대인관계에서 오는 또 다른 피로도는 말에서 비롯된다. 사소한 말일지라도 마치 타인을 가르치려는 듯 무심코 던지는 말,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말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원래의 의미가 왜곡되고 변질되고 와전되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일들이 내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아 무겁게 다가온다. 그 경험들은 내 생각을 복잡하게 만들고, 때로는 깊은 사유의 세계로 나를 이끈다. 나는 정치적인 성격이 아니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눈을 감고 대강 넘어가는 능숙함이 부족하다. 동석했던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는 말과 상황들이 목에 생선 가시 걸리듯, 여지없이 민감하게 스크린이 작동된다. 그래서 그들의 무심한 말이나 무례한 행동은 깊은 상처로 남아 차곡차곡 마음에 쌓이게 되고, 마음에 평화를 찾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고대 페르시아 격언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말인데, 좀처럼 시간이 지나도 잘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필자의 경우다.


조심스럽게 나를 들여다본다. 내가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이유는 단순히 감수성이 예민해서일까? 아니면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성향 때문일까? 물론 그 두 가지가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며 나를 들여다본 결과, 그 이유는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관계의 본질과 진정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줄이고 강제로 청산한 선택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의 내면을 보호하고 나에게 충실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의 일환이었고 방편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는 내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이유가 단순히 감수성이 예민해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쉽게 공감하고 영향을 받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감수성이 과연 나에게 해가 되는 것일까? 나는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수성은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제공하고, 진정성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기쁨에 공감할 때 그들이 나에게 마음을 열고, 더욱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나는 더 의미 있는 관계를 쌓아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무심한 말이나 행동이 내게 부담으로 다가올 때, 이를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정리한 몇 가지 방법들을 공유하고, 이러한 방법들이 적절한지를 검증하고, 이러한 연습 과정을 통해, 숲을 헤쳐 나가며 길을 찾는 기분으로 슬기롭게 인간관계를 이어 나가고자 한다.


첫째, 거리 두기와 명확한 경계 설정이다. 이미 인간관계를 축소한 만큼, 남아 있는 관계에서도 나에게 무리가 가지 않도록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 모든 만남에 응답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잠시 관계에서 물러나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특정 상황에서 내가 지치거나 불편함을 느낀다면, 간단히 대화의 시간을 줄이거나 잠시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둘째, 말의 무게 덜어내기다. 타인의 말과 행동이 반드시 나를 향한 의도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들의 무심한 말이 단순히 그들의 성향일 뿐, 나를 공격하거나 가르치려는 의도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특히 친구들이 나이가 들어가며 가끔 말 한마디도 그 전과 다르게 생각 없이 던지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말이 의도적인 공격이 아니라는 것을 더 잘 알고 있다. 어쩜 내가 그들과 달리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


셋째, 자신을 위한 시간 갖기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내 감정을 정리하고, 취미나 관심사를 통해 내면의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산책이나 명상, 글쓰기는 감정 정리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 특히 복잡했던 감정들을 글로 써 정리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생각이 논리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넷째, 진솔한 대화의 가능성 탐색이다. 마음의 부담을 준 상대와 진솔하게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방법이다. 오해를 풀거나 내 감정을 솔직히 전달함으로써 관계가 개선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 말들이 그만큼 중요한 무게를 두어야 할 것인지는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대화가 중요하다고 판단될 때에만 신중하게 진행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다. 때로는 불필요한 말들이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를 이해해 줄 소수의 사람 찾기다. 모든 관계가 깊고 의미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소수의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욱 깊게 유지할 수 있다. 이런 관계는 내가 나를 지키면서도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관계들이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나를 지키며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살아가면서 대인관계에서 수반되는 상처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처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할 수도 있다. "나이가 이미 60을 넘었는데 더 무슨 성장을 한다는 것일까?" 자문하며, 나는 내 진지함과 깊은 성찰을 소중한 자산으로 여긴다. 이 자산은 때때로 외로움이나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내 내면의 자아와 세계관을 지키며 나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관계를 추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이 과정이 우울하고 견디기 쉽지 않은 지루함이 느껴져 자신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은 순간도 있지만, 그런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더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이 글은 내가 인간관계에서 느낀 상실감과 피로감, 그리고 그 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은 단지 나의 개인적인 고백에 그치지 않는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누구에게나 공감될 수 있는 이야기라 믿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려는 여정을 걸어간다. 앞으로는 내 감정을 소중히 여기며, 나를 위한 평안한 관계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나의 내면을 지키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 바로 내게 가장 중요한 삶의 방향임을 확신한다. 또한, 우리가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평화와 만족을 찾을 수 있도록, 서로의 속도와 감정을 존중하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믿음을 나누고 싶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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