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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상 May 06. 2022

'닥터 스트레인지 2' 멀티버스가 주는 혼란함 이겨내기

영화를 보고 나서 괜스레 지적 혼란스러움을 겪은 사람들을 위해

Disclaimer: 이 글은 어느 정도 스포일러성 문장과 대단히 따분하고 지루하고 심지어 오류 많은 철학적 문장을 포함합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하며 전 세계 대중문화콘텐츠 세계에 다중우주(Multiverse)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인피니티 스톤을 두고 타노스와 어벤저스들이 갈등을 빚었던 페이즈 1이 끝나고, 마블 스튜디오의 다음 10년은 평행세계를 아우른 다중우주가 핵심 소재인 동시에 극의 무대가 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영화, 소설에서 다중우주가 다뤄졌지만, 친숙한 캐릭터와 배경을 활용해 시각적으로나 스토리텔링으로 핍진성을 갖추고 몰입감 있는 다중우주를 구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2'에 다중우주론의 대중화에 포문을 열었다는 상징성을 부여하고 싶다.


영화 한 편을 통해 손가락으로 장을 찍어 먹어 보듯 멀티버스를 맛만 봤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나름의 부작용이 있었다. 다중우주라는 개념을 간접 체험하는 과정에서 조금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서, 영화에서 멀티버스의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종교적 믿음이라든가, 정체성이라든가, 존재의 의미라든가, 운명이라든가 하는 것들에 대한 개념이 흔들린 경험을 뜻한다. 영화 보고 나오는 길에 멍 때리면서 '지금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고유하고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따위의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는 것.


그럼에도 여러 우주를 여러 인물들이 오가며 2시간 동안 온갖 사건 사고를 벌이는 꼴을 보자니 단일 우주가 주는 관성에 평생을 적응해 살아온 우리의 뇌로는 충분히 혼동이 일어나는 지점이 있다.


극 중 각 캐릭터는 본성이 있고, 고유의 삶과 경험이 있고, 영화라는 스토리에서 부여된 실존적 의미도 있다. 하나의 영화에서 그 맥락의 가짓수가 증식되고 심지어 그 우주와 존재들이 '인커전'되면서 맥락의 엔트로피를 무섭게 증가시킨다. 이 과정이 관객에게 주는 새로운 즐거움도 있지만, 직관적인 관점에서 인식의 한계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을 나는 혼란이란 단어로 과감히 퉁치겠다.



멀티버스에서 이런 혼란이 일어나는 원인은 아마 보편성의 부재 때문으로 보인다. 인간으로서 알고 있고 당연하다고 생각한 원칙이나 법칙들의 정의가 달라지거나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기대와 상식에 반하는 경험이 일어나고 여기서 나오는 일종의 불쾌감인 혼란이다. 닥터 스트레인지와 아메리카 차베즈가 스칼렛 위치를 피해 함께 도착한 지구 838에서는 관객의 보편성을 깨는 대표적인 사례가 등장한다. 바로 신호등이다. 그 어떤 나라에서도 빨강은 멈춤을 의미하고 초록은 횡단이나 통과가 괜찮다는 의미인데, 지구 838은 가장 친숙하고 평범한 보편성조차 거꾸로 뒤집으며 이런 게 멀티버스에서는 가능태라는 보여준다. 또 변형(?)된 피자를 돈 주고 사야 하는 우주가 오히려 더 보기 드문 사례라며 식품을 상거래하는 우리의 보편성을 뒤흔든다. 급기야 차베즈는 "멀티버스에서는 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지 말 것"이라고 대놓고 경고한다. 아니 그러면, 멀티버스에서 도덕과 윤리란 무엇이고~ 법은 무엇이고 어떻게 존재하는 거란 말이야!


혼란을 가장 크게 주는 건 단연 여러 멀티버스를 오가는 극 중 인물들이다. 스트레인지는 3명, 완다 막시모프 2명, 크리스틴 팔머 2명씩 직접 등장하고, 인물 간 대화에서 언급되는 또 다른 멀티버스 인물들까지 따지면 그 수는 다 꼽기 어려울 정도다. 극이 진행되고 각 멀티버스 인물들끼리 관계와 갈등이 형성되고, 카메오 인물들까지 뛰어들면서 관계와 갈등이 폭증하면서 혼동과 혼란도 함께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멀티버스가 주는 복잡함이 영화 밖으로 확장되면 더 골치 아파진다. "멀티버스가 정말이라면?"이라는 가정을 현실의 '나'와 내 일상이 있는 지금 이 지구에 적용하는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다른 우주의 죽은 스트레인지를 접하고, 타락한 스트레인지와 맞서는 모습처럼 '나'도 다른 우주의 '나'를 마주하면 어떻게 될까? 다른 우주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어떤 가치로 살아갈까, 만나면 어떤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멀티버스가 진짜라면, 내 정체성에 대한 내 이해, 인간으로서의 삶의 의미, 개성과 욕망이 있는 개인으로서 실존주의적 가치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혼란스러움에 있다고 걱정하지 마시라~ 혼란은 느낀 이는 당신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성공적인 메타버스 기반 대중문화콘텐츠도 등장하고 더 다양한 멀티버스 영화들이 나올수록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관객의 고민은 더 깊어질 것이다. 그래도 혼란을 벗겨낼 요령도 있다. 공상과학적 상상력이 주는 우리에게 주는 혼란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도구는 다름 아닌 철학이다. 동서고금 선조들이 쌓아오고 갈고닦은 철학적 고찰이 멀티버스와 메타버스가 주는 혼란을 줄여주리라.



샘 레이미 감독과 마블의 작가들은 관객들이 가질 이런 혼란까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일까. 영화 안에 혼란을 줄여줄 수 있는 처방약을 넣어놨다. 온 우주를 아우를 보편성에 가 닿을 수 있는 묘수를 영화에 넣어줬다. 바로 "행복하세요?(Are you happy?)"라는 질문이다.


극이 시작하는 결혼식부터 영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직전까지 이 질문이 몇 차례 반복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이고 그 이유가 어떠한 것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나'의 주체성과 주관성을 갖고 숙고하고 사색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우리가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떤 생각을 거치는지 곱씹어보자. 응당 내 정체성을 돌아보고, 내 삶에서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되짚는다. 또 내가 인식하는 행복이란 개념에 기반해서, 내 경험을 투영하고, 내 감정을 곱씹어본다. 그러면서 '내 정체성에 대한 내 이해, 삶의 의미, 인간으로서 실존주의적 가치'에 답을 줄 수 있는 힌트가 떠오를 수 있다. "행복합니다"가 될 수도, "행복하지 않습니다"가 될 수도 있고,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어떤 답인지는 덜 중요하다.


이 질문에 대한 고찰 과정부터 대답까지 그 어떤 멀티버스의 '나'와 지금 '나'는 명백히 같을 수 없다. 수억 수조 개 멀티버스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멀티버스의 '나'와 구별되는 '나'일 수 있도록 하는 귀한 질문이다. 특정 시점과 무한한 우주에서 한정된 공간만을 연장하는 존재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에 갇힌 '나'에 대해 묻는 말도 아니다. 이 질문은 '나'가 어디서부터 왔으며 어디로 향하는지를 포괄하는 질문이다.


고로 이 질문이 주는 효용은 시공간을 초월한다고 할 수 있다. 멀티버스로부터 위협받았던 보편성 일반을 회복하는 길은 멀티버스를 초월할 법칙이나 원칙을 새로이 발견하고 세우는 데 있다기보다 일상적인 질문에서 찾을 수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그러했듯 멀티버스에서 '나'의 인식과 존재에서 갈 길 잃고 방황하는 순간에 나침반 역할을 해주는 건 바로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이다. 


극 중 닥터 스트레인지는 행복하냐는 질문을 남에게 한 번 받았고, 남에게 한 번 했다. 크리스틴으로부터 받은 질문엔 미덥잖게 긍정(yes)으로 답했다. 웡에게 같은 질문을 했고, 우문현답을 받고 웡에게 예를 갖췄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다른 멀티버스의 스트레인지가 그러했듯 악덕하고, 흑화되지 않았던 이유도 이 질문에서 찾을 수 있다. 각기 다른 스트레인지의 능력이나 경험 우열도, 지능이나 지식의 차이가 아니었다. 바로 닥터 스트레인지가 다른 스트레인지와 달리 행복을 탐색할 줄 알고 행복에 도달하고 느끼기까지 적극성을 발휘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멀티버스의 복잡성을 빼놓고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은 멀티버스 세상이 아닌 단일 우주를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내일 만나는 친구에게도 물어보고, 눈을 감고 스스로도 물어봅시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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