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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상 Apr 12. 2022

'시선'을 고찰하다: 연애, 축구, 마지막 탕수육

시선은 방패고, 무기고, 거울이다

고등동물에게 공통으로 드러나는 여러 특징 중 하나가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자기의 시선을 제3자가 알아차리게 한다는 건, 거꾸로 내 약점을 노출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목표물에 몰두한 고양이를 떠올려보자. 누구나 딱 봐도 어디에 정신이 팔린지 알 수 있고 닝겐들은 그때마다 냥이를 놀라게 해서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즐긴다.

나의 시선을 읽힌다는 건 큰 단점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그런데도 포유류 같이 고등생물이 보편적으로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게 진화한 것을 보면 생존과 공존에 있어서 ‘그래도’ 얻는 게 더 많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고등생물 중 호모 사피엔스라는 놈들은 파놉티콘이나 선글라스를 만들어 이런 시선 노출의 단점을 없애려는 시도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우리는 시선을 적극 활용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잘 모르겠다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태어날 때부터 시선의 특징을 삶의 일거수일투족에서 우린 사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사례를 몇 개 들어보겠다.

시선은 방패다

시선은 나를 지키는 데 쉽게 사용된다. 골목길을 건너거나 지날 때 근처를 지나는 차량이 있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위험인자로써 차를 바라보거나 운전자를 쳐다본다. 운전자 역시 보행자의 시선을 확인한다. 두 사람의 시선이 교환되거나, 운전자가 보행자의 시선을 확인했다면, 사실 안전은 담보된 상태다. 둘 중 하나가 속도를 줄이거나, 상대방이 먼저 지나가도록 양보해준다.

축구할 때도 시선은 적극 활용하면 좋다. 팀 동료에게 패스를 받을 때 공을 상대에게 탈취당하기 가장 쉽다. 퍼스트 터치를 미숙하게 할 가능성도 있고, 공이 도달하기 전에 상대 선수가 먼저 공을 건드리기도 쉬운 편이고, 무엇보다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압박해 공을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시선을 써먹으면 된다. 패스를 받는 중, 그러니까 공이 나를 향해 날아오는 중, 혹은 주변에 있는 팀 동료가 나에게 패스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한 순간에, 내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는 것이다. 살펴보는 것 자체가 주는 효용은 명백하다. 내 주변에서 내 공을 호시탐탐 노리는 상대 선수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의외로 효용성 하나가 더 있는데, 그건 바로 주변에 있는 선수들로 하여금 내 공을 빼앗으려는 상대 선수들의 도전적인 행위를 비물리적으로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수비 중인 상대 선수는 ‘저 사람이 내가 어디 있는지 확인했는데, 내가 빠르게 달려들어도 공을 뺏진 못하겠네’라고 판단해 공을 탈취할 의욕을 잃고 압박 수준을 낮춘다.

축구할 때 공을 가장 뺏기기 쉬운 타이밍은 패스를 받을 때다. 이때 내 시선으로 상대 선수에게 ‘나는 네가 어디있는지 알아’라는 무언의 신호를 주기만 하면 내 플레이는 한결 수월해진다는 의미다. 공 다루기가 낯설어서 고래를 바닥에 처박고 축구하기 바빠도, 의도적으로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피라는 조언이 필요한 이유다. 축구 초보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는 내 풍부한 시선과 시야를 더 많이 상대방에게 노출하는 것이다.

메시가 공이 없을 때 얼마나 주변을 둘러보는지 알면 놀랄 걸?
시선은 무기다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할 때 적극 활용되는 수단이 바로 시선이다. 단체로 중국집에 가서 회식을 하는데, 맨 마지막 남은 탕수육 한 조각을 끔찍하게 먹고 싶다고 가정해보자. 그때부터 딱 10초 동안만 탕수육을 지긋이 바라보자. 단언컨대 그 누구도 당신 대신 탕수육을 먹겠다고 나서지 않을 것이다. 탕수육은 당신 것이다. 

ㄱㅇㄷ

강한 시선 혹은 강렬한 눈빛은 그 사람의 열정을 대변한다. 면점에서 면접관을 또렷하고 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좋은 인상만을 줄 것이다. 전쟁 포로가 고문 과정에서 발산하는 강한 눈빛은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고 저항을 뜻한다. 가장 취약한 순간에서까지도 유일하게 휘두를 강력한 무기가 된다.

시선이 무기가 되는 가장 익숙한 순간은 연애다. “저 사람이 나에게 관심 있다는 걸 어떻게 알까요?” 초기 연애 상담에서 가장 기초적이고 일반적 질문이다. 이 질문에 해줄 수 있는 답은 연애 고자부터 픽업 아티스트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 무수히도 많겠지만, 일반성과 단순성에 있어서 답은 딱 하나다. 시선이다.

연애라는 게임에서 재밌게도 시선은 게임 플레이어간 밸런스를 맞춰주는 공평한 룰로 작용한다. 쉽게 말하면, 내가 상대방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지를 살펴보고 싶으면 역설적으로 상대방을 빈번하게 쳐다보거나 반복해서 흘깃 쳐다봐야 한다. 이 자체가 거꾸로 상대방에겐 자기에 향하는 시선이 된다. 상대방이 좋아서 쳐다보는 행위와 상대방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하고 싶은 행위가 같다는 의미다. ‘내가 좋아서 쳐다봄’과 ‘저사람이 날 좋아하는지 확인하고 싶음’이 시선의 관점에선 동일하다. 무엇이 목적이든 시선을 매개로 두 사람 사이에 정분이 일어날 가능성은 급격히 상승한다.

의도가 무엇이든 시선은 연애에서 상대방을 쟁취할 여지를 확충해줄 강력한 무기다. 사귀고 싶을 때부터 사귀는 과정 그리고 헤어진 이후까지도 시선의 빈도와 강도는 그 연애의 방향과 상태를 규정해줄 것이다.

시선이 별것도 아닌 거 같은데, 너무 의미부여하는 게 아니냐고?

드라마 '파친코'에서 두 인물의 첫 만남은 대사 하나 없이 눈빛으로만 채워졌다
시선은 거울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I see you’라는 대사는 단순한 인사처럼 등장한다. 일상적인 인사로 소개되지만, 종국에는 인사 그 이상을 넘어 상대의 본질을 바라본다는 진지한 다짐이기도 하고, 나중에는 너와 나의 교감으로 나의 존재를 깨닫겠다는 고백과 다짐의 의미까지 확장된다. 당신을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 ‘나’의 본질적 자아에 가 닿는 과정까지 이어진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의 시선은 물리적으로 나를 향할 수 없다. 명상을 하고 ‘나’라는 존재에 고민할 때 우리는 거울을 보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지 않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도 나라기보다 거울에 비친 형상에 불과하다. 물리적 거울은 물리적인 내 몸뚱아리만 비출 뿐이다. 우리는 나를 직시할 때 멍을 때리거나 차라리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나를 직시하는 것만큼 나를 더 잘 직시할 방법은 차라리 이런 방법이겠다. 나의 본질에 열정적으로 와닿은 사람의 시선에서 나를 보는 것. 이 절차가 낭만적인 것은 보너스다. 결국 시선은 내 본질을 비출 본질적 거울로 기능한다. '아바타' OST 'I see you'에서도 "I see me through your eyes"라는 구절이 있듯 말이다.

시선은 분명 욕망이고 열망이고 집착의 증거일 수 있으며 그리하여 왜곡과 오해를 낳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러나 진실로 내가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과 상대가 나에게 보내는 시선으로 내 존재와 의미를 충분히 탐색할 수 있다. 시선은 결국 나의 존재론적 고찰에 힌트를 제공하는 철학적 무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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