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디스크 정보 글이면서 기후위기에 관심 있는 사람도 읽기 좋음
축구를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공이 머리 위로 지나가는 걸 따라가면서 급격히 방향을 전환하면서 무리가 갔다. 지난 수년 동안 자세 불량과 피로 누적이 겹치며 큼직한 부상으로 도진 것이었다. 퇴행성 아니냐고? 늙어서 다친 거 아니냐고? 어느 정도 맞다;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경기장을 나왔다. 아파 뒤질 거 같았고, 당분간 뛰지 못할 거라는 게 직감돼 매우 슬펐다.
밤새 통증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고 다음 날 바로 병원을 찾았다. 정형외과 의사 소견으로는 요추 추간판 탈출증(흔히 말하는 허리디스크)의 단계별 증상 중 초중기 단계라더라. 내 통증은 컸지만, “디스크 터졌다”라고 말하는 디스크 탈출과는 큰 갭차이가 있다고 하니 놀라웠다.
아프기 시작하니 누워서 요양을 하다 보니 아픈 와중에 하고 싶은 건 단 하나였다. 평생 잘 몰랐던 허리디스크라는 질환에 관한 공부였다. 원인이 무엇이며, 고치는 방법은 무엇이고, 다시는 이걸로 고통받지 않는 방법도 있을지 열심히 유튜브를 보고, 구글 검색도 하고, 책 3권이나 사서 읽었다. 척추와 그 이음새에 있는 추간판의 구조, 척추에서 신경이 어떻게 빠져나와 다리로 뻗어 나가는지, 추간판이 튀어나오는 걸로 어떻게 신경을 자극하고 염증을 일으키고 통증에 시달리게 하는지 싹 다 공부했다. 그 과정은 학구열이라기보다 생존 본능에 가까웠다.
추간판 탈출증은 척추뼈 사이에 있는 물렁뼈를 구성하는 수핵이 물렁뼈 바깥으로 튀어나오면서 근처에 있는 신경을 자극하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자상, 타박상, 찰과상처럼 물리적으로 아파서 아픈 게 아니라 단순히 신경을 눌러서 사람을 미치도록 아프게 하는 질환이다. 우리나라에서만 200만 명이 겪는데, 이 정도면 인간의 설계 미스 아니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좋을 거 하나 없는 비상식적인 통증 체계 아니냐!?
그러나 이 역시 진화의 긍정적인 산물이었다. 추간판이 조금이라도 이탈했을 때 인간이 이를 인지하고 예방과 치료에 나서지 않으면 다시 말해 척추에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문제가 되는 행동에 변화가 없으면 결국 척추를 못 써먹을 정도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척추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길 때 허리디스크로 조금이라도 통증을 느끼고 고생을 해본 조상들이 생존에 유리했고 그분들이 우리에게 귀한 유전자를 전달해서 200만 명이 고작 통증만 겪고 척추 문제로 치명적인 생사의 길까지 가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신경을 따라 작은 자극이 전기 신호를 보내 며칠 내내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했다. 아, 이 자그마한 전기 자극 하나에 밤새 잠을 설치다니,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외면할 수 없는 문제를 맞닥뜨리니 내가 본능적으로 하는 것은 해결책 찾기였다. 어떻게 하면 통증을 가시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빨리 나을 것인가.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이 개떡 같은 질환에 다시는 시달리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의사와 도수물리치료사의 말에 따르면 위 세 가지 질문을 해결해줄 왕도는 없다. 처방약은 한나절 통증을 낮춰줄 뿐, 신경 주사와 도수치료는 내 몸의 회복 속도에 촉진제가 되어 보조적인 도움을 줄 뿐이었다. 한 방에 상황을 호전하고 통증을 싹 가시게 하는 방법 따윈 없었다.
허리디스크에 빨리 낫고 시달리지 않는 방법은 그냥 평소에 잘하라는 것이다. 자세를 항상 올곧게 하고 요추전만 자세를 잘 유지해 척추위생을 시시각각 유지하는 것뿐이었다. 하루 대부분을 앉아서 생활하면서 일자목, 거북목이 될 환경을 의식적으로 탈피하고, 추간판이 쉽게 탈출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숙명을 최선을 다해 거부하라는 조언이었다. 슬프게도 간편하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치트키 같은 특단은 이 세상에 없었다. 새삼스럽지만 척추뿐 아니라 대부분의 건강 문제가 이렇다.
일련의 질환 발생, 시달림, 해결과 재발 방지를 알아보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된 지 금세 1주일이 지났다. 공부한 대로, 의사가 말한 대로 척추는 자기치유를 한다. 엔간한 허리 질환은 시간이 흐르면 낫는다. 통증이 가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허리에 무리가 오는 자세와 활동을 일삼기에 십상이라고 하더라. 그러니 조금 나으면 방심하지 말라는 물리치료사님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방심 대신 나는 열심히 재발 방지를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자세 교정과 함께 코어 운동, 유연성 강화가 중요하다고 한다. 내가 향후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같은 고통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해야 할 것은 간단하고 자명하다. 평소 좋은 자세를 유지하고 허리 유연성 강화와 코어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다. 두고 보자!
여기까지가 지난 추간판 탈출증을 짧고 굵게 경험한 뒤 정리한 기록이다.
인류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것을 내가 허리 질환과 치열하게 함께한 경험에 비춰보자.
인류는 1980년대 이산화탄소가 온실효과를 내 지구 기온을 올린다는 과학적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린다. 국제사회가 대부분 기후변화라는 '질환'을 깨닫고 뭔가를 하기 시작한 건 1992년이다. 그해 처음으로 전 세계 국가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를 예방하기 위해 처음으로 협약을 맺는데, 그게 리우선언이다. 1994년에는 처음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이 발효된다. 이거라도 만들어냈다면 인류는 그래도 성과를 낸 건가? 글쎄.
그 당시 대부분 나라가 모두가 문제와 원인을 인식했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가끔 얘기만 하면서 방관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까진 누구나 그렇듯 그럴 수 있다 치자. 나도 격한 운동을 하거나 불편한 자세로 잠자고 나면 이따금 허리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기다 사달이 난 거니까. 인류도 방관한 편이지만 걱정을 아예 안 한 건 아니니깐.
조금 더 시간을 흘려보자.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담은 1997년 교토의정서가 채택됐다. 자율적으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또 온실가스가 무엇인지 6가지(이산화탄소, 메탄, 이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를 정의했다. 질환이 원인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고 그 병이 악화되지 않도록 예방책도 합의한 셈이다. 이것도 성과일까? 문제 해결에 나아간 것일까? 여전히 아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더 흘러 국제 리더들은 2015년 파리에 다시 모여 조금 더 진지하게 논의한다. 왜냐고? 이전에 논의하고 합의한 것들이 거의 유명무실했으니까. 여기서 195개 국가는 "야, 우리 이대로면 진짜 개망하니까 모든 구성원이 문제 원인(온실가스 배출)을 0으로 만들자"라고 약속한다. 그게 파리협약이다. 그래, 전 세계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질환(기후변화)는 더 깊어지지 않았고 벼랑 끝 추간판이 완전 이탈하는 것 같은 위급한 순간이 오는 건 막을 수 있겠지? 드디어 기후변화, 해치웠나?
그렇지 않았다. 인류는 질환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난 이후에 그 원인이 되는 행위를 더 많이 했다. 즉, 1990년 이전에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 양보다 1990년 이후 배출한 이산화탄소 양이 훨씬 많았다. 2015년 샹송을 들으며 다 함께 준엄한 결의를 하고 나서도 뒤돌아서서는 특단의 행동은 없었다. 2015년 이후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은 매년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경제, 산업활동이 동결되기 전까지. 그러나 팬데믹이 끝나자마자 귀신같이 그 기록은 다시 깨진다.
의사가 허리디스크 초기에 병원을 찾았을 땐 간단한 약 처방과 물리치료와 조언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그 조언을 명심하지 않고 더 질환이 심해졌을 땐 질환이 깊어지지 않게 억누르고 치료에 집중할 수 있게 입원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입원하고 나서도 의료 행위에 순응하지 않고 제멋대로 지낸다면? 그때는 파국이다.
인류가 질환의 원인을 깨닫고 질환이 깊어지는 걸 막기까지 그 기간에 이미 평균 기온은 1.2도 상승했다. 2015년 샹송 협약에서 정한 한도까지 불과 0.3도 남았다. 과학이 권고한 기준을 지키지 못한 대가는 더 강력하고 더 빈번해진 자연재해였다. 지구촌 곳곳의 광활한 숲과 산림은 매년 비슷한 시기에 타오르고 매년 피해 면적은 경신된다. 강수가 잦은 곳은 물폭탄을 맞고 수해가 나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남긴다.
이렇듯 기후변화가 촉발한 이상현상은 '평년'이란 수십 년, 수백 년 통계를 전복시킨다. 평년이란 자연스러움에 맞춰 억겁의 세월 동안 조성된 생태계는 회복 탄력성을 넘긴 자연재해에 갈기갈기 찢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평년을 웃도는 자연재해를 대비해 수십 년 간 자본으로 갖춰진 사회 인프라와 안전망 역시 인장강도를 한참 뛰어넘는 자연재난을 만나 박살 난다. 최근 몇 년 사이 잇단 늦겨울-초봄의 강원도 일대의 대형 산불, 올해와 작년을 비롯해 여름철 강해지고 더 오래 지속되는 장마철 폭우가 기후변화의 증거다. 대나무는 휘어지지 않지만 한 번 부러지면 그 어떤 것보다 요란하고 흉측하게 바스러진다. 기후위기로 초래된 이상현상 앞에서 우리가 알고 있거나 만들었던 모든 시스템은 그렇게 위기를 맞고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겪고 있다.
이것이 추간판 탈출증과 기후변화의 유일한 차이다. 내 허리는 자연 치유되지만, 기후변화가 할퀸 자연과 생태계는 그렇지 못하다.
내가 허리 통증을 당분간 방치하다가 특정 사건을 통해 통증을 느끼고 그 뒤로 원인을 공부하고 해결책과 예방책을 학습했듯 인류도 마찬가지였다. 산업혁명 이후 신나게 온실가스를 배출해내면서 무한히 경제가 성장할 것처럼 지내다 뭔가 이상한 걸 깨달았다. 그 뒤로 그 문제에 대해 공부도 했다. 그렇게 원인을 알았고, 어떻게 해야 그 병이 깊어지지 않을지도 깨달았다. 그러나 아직 달라진 건 없다. 추간판이 돌출되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인류는 그 자세를 고쳐먹을 생각도, 의사의 조언과 진단을 따르지도 않고 하루하루 통증을 참으면서 정해진 미래를 향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류가 노력은 한다. 재생에너지를 늘리곤 있으며, 각 부문에서 탈탄소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이어간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량이라는 본질적 원인은 여전히 달라지는 게 없다. 매일 구부정한 자세로 다리도 꼬고 한껏 불량한 자세로 책상에서 8시간 앉아서 지내다가, 일주일에 한 번 1시간짜리 필라테스 수업을 들으며 자세 교정을 하면서 허리 질환을 아예 겪지 않으리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인류의 미래는 둘 중 하나다. 모두가 지속가능한 세상을 살거나 모두가 지속가능하지 못한 세상을 사는 것 중 한 시나리오에서 살아야 한다. 전자가 되려면 특정한 집단의 노력으론 달성할 수 없다. 거꾸로 말해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함께해야 한다. 국가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기 위해선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
허리만 국소적으로 다쳤을 뿐이었다. 그러나 자리에 앉는 것도 누웠다 일어서는 것도 행동 하나하나가 고통스러웠고 그래서 번거롭고 불편했다. 평소같은 일상은 일시 중단됐다. 기후위기도 마찬가지다. 변하는 건 대기 중 온실가스 분자 수가 늘어나는 것이고 그로 인해 기온이 조금 오를 뿐이다. 그러나 미약한 변화 하나는 우리가 누리는 자연과 문명에 균열을 낸다. 이대로라면 해류에 변화가 오고 해수면이 오르고 산불이 커지고 홍수가 잦아지고 폭염이 반복될 뿐이다. 생물들의 서식지는 달라지고 인간들은 이주한다. 자원의 희소함은 전쟁을 야기하고 차별과 폭력은 자연스레 정당화된다. 보험회사는 파산하고 채권시장은 흔들리고 기업은 파산할 것이다. 그러나 작은 균열은 큰 균열이 된다. 시나브로 모두의 일상에 침투하고 행복추구권을 앗아갈 것이다.
이것을 막을 방법은 평소 허리를 꼿꼿하게 유지해 바른 자세를 지켜 우리 신체의 자연 치유 능력에 기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기온 상승을 억지해 지구의 순환을 유지케하는 항상성을 되찾게 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