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반전 두 개로 심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운데 편견에 빠지다
디즈니플러스 '무빙'에서 나를 포함해 시청자를 시험에 들게 한 씬이 하나 있다. 에피소드 2에서 미현(한효주)이 아들 봉석을 업고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다가 가게 주인(황정민)과 나눈 대화 씬이다. 단언컨대 이 장면에서 대다수 사람들이라면 두 번은 동요했을 것이다.
https://youtube.com/shorts/a9gbjNdjtXY?si=WFqAzkIqvrtDEpeZ
첫 놀람 포인트는 정육점 주인은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아들을 포대기에 업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가 어데 장애가 있나"라며 읊조리는 장면이다. 아무 상황도 모르면서 막말하는 정육점 주인에 불쾌감이 들기 마련이다. 시청자의 마음처럼 미현은 주인에게 "애가 모를 것 같아요? ... 그런 말하시는 거요"라며 톡 쏘아붙인다. 주인은 황당해하며 무슨 말 때문에 그러냐고 되묻는다. 미현은 "우리 애 장애 없어요.", "그리고 애가 정말 장애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그러세요?"라고 화를 낸다.
바로 이어서 두 번째 포인트가 나온다. 바로 심부름 다녀온 듯한 정육점 주인의 아들이 돼지고기를 들고 가게로 돌아온다. 언뜻 봐도 발달장애가 있는 모습이다. 정육점 주인이 악의가 아니어서 한 말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게 돼 안도감이 드는 대목이다. 정육점 주인 아들은 아무 상황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봉석에게 사탕을 권한다. 미현은 이때서야 본인이 했던 말에 어쩔 줄 모르고 아무 말을 잇지 못하고 값을 치르고 유유히 가게를 떠난다.
짧은 씬 하나지만 시청자들에게 작은 반전 두 개를 선사한다. 장애와 장애를 바라보는 편견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고스란히 함의한 장면이라 매우 인상적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 정육점 주인이 말을 함부로 했다. 장애가 있건 없던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혹은 "각자의 자식들이 장애가 있는지 여부를 떠나 미현을 걱정하는 선의에서라도 굳이 장애를 입에 올리는 것도 적절치 않다"처럼 말이다.
정육점 주인의 발화는 시청자에게 장애인과 장애에 관한 편견을 자극했고 위와 같은 비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적어도 나는 직관적으로 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시 가만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미현이 적절하지 못했다.
잘 생각해 보자, 정육점 주인이 "아가 어디 장애가 있나"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왜 불편함을 느꼈을까. 우리의 불편함 센서가 작동하게 된 흐름은 이렇다. 직관적으로 장애가 열등하거나 좋지 않은 것이라는 전제를 자연스레 가졌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를 두고 장애가 있는지 아닌지 불확실한 미현의 아들에게 장애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을 한 정육점 주인은 당연히 예의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정육점 주인에게 장애인 아들이 있음이 드러나면서 시청자는 자연스레 정육점 주인에게 다른 지위를 부여한다. 장애에 대해서 솔직하고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다. "아들이 장애인인데 장애에 차별적이겠어?"라는 간단한 이유에서 "아가 어데 장애가 있나?"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끝내 이런 판단도 건전치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다소간 그럴 만한 맥락이 있기 때문에 그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발화자가 장애와 연관성이 있어야만 장애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여전히 장애인이 열등하거나 보호해야 할 대상이거나 평범하지 못하다는 것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선의는 있지만 결국 차별적인 면이 있다.
장애에 대한 편견만 없다면 장애를 논해도 되지 않을까? 비유컨대, 발목을 다친 지인을 생각해 보라. 내가 발목을 다친 경험이 있거나 지금 다친 상태거나 하다 못해 가족 중에 다리를 다친 사람이 있어야만 그 사람에게 "어디 다치셨나 봐요?"라고 물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장애를 마치 고귀한 성역에 넣은 것처럼 치부하고 "장애가 있나요?"라고 묻는 걸 예의가 없다거나 차별적이라고 비판할 순 없다. 장애인은 열등하지도 않고 항상 특수성을 부여해야 할 대상도 아니라 그냥 조금은 다른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무빙'서 초능력자 등장인물들처럼 괴물이 아니라 사람일 뿐이다.
이 씬을 통해 편견에 갇힌 건 정육점 사장이 아니라 시청자와 미현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육점 씬에서 심정이 요동친 시청자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남한테 장애가 있냐고 함부로 물어?", "조금 이상하다고 장애를 저렇게 일상적으로 입밖에 꺼내?", "아, 장애 아들이 있어서 저렇게 말한 거였구나" 등등. 시청자는 미현이 사과하는 장면까지 보고 난 뒤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 장면을 연출하면서 장애와 차별에 관해서 더 큰 통찰을 하지 못한 이들에게 부끄러움도 느낄 수 있게 의도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부끄러워야 한다고 해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장애를 비롯한 온갖 다양한 편견 가득한 사회에 살고 있으며 그러기 때문에 차별적인 발화와 행동을 하는 사람을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조금 튀는 발언이나 행동을 보면 예민하고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편견 가득한 세상일지언정 편견 없이 말한 사람에게 "그렇게 말을 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라고 함부로 힐난할 순 없다. 그 또한 편견에 대한 편견이니까.
'무빙'은 선한 사람들, 평범한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공감이 묻어있다. 미현과 정육점 주인도 결국 오해와 편견을 벗어내고 오래 협력하는 좋은 이웃이 되었다. 편견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보다 더 앞서 나와야 할 것은 강풀이 그리는 것처럼 서로 따뜻하고 이해하는 온기 가득한 사회다. 이웃에 대한 진심 어린 이해가 어디에나 있다면 편견이 있을 곳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정육점 주인처럼 이웃을 격의 없이 보는 주변의 편견 없는 캐릭터들은 소중한 존재다. 때론 우리에게 웃음도 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