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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상 May 27. 2024

민희진에 반대하지만 침착맨에겐 수긍하는 사람은 없을까?

사회문제를 자를 대고 나누고 칼로 자른 듯한 양상을 지켜보며

아침에 일어나 잠에 들기까지 항상 연결된 현대인의 삶에 무수히 다양한 종류와 무한에 가까운 콘텐츠가 쏟아져 들어온다. 개중엔 대다수의 사람들 이목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것이 있으니, 민희진 기자회견과 하이브와의 일련의 갈등 소식이라든지, 이 시리즈가 끝나기도 터진 강형욱 훈련사와 본인이 운영하는 회사 직원과의 갈등 논쟁 같은 경우다.


연예계나 유명인 세계에서 스캔들이나 사건사고는 숱하다. 그러나 최근 두 사건 들어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사건을 두고 선을 그어 양극단에서 싸우는 일이다. 인터넷 세상에서 이런 논쟁이 정신력과 체력을 소모시키고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두 사건은 공통점이 있는데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서로의 일방적인 주장만 드러나며, 사건의 사실 관계가 일부만 공개되거나 조금씩 드러나고 있음.

2. 아직 모든 사안의 전말이 드러난 바 없고 객관적인 확증도 없음.

3. 어떤 소셜미디어인지, 어느 커뮤니티인지 등 어떤 집단이냐에 따라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극과 극으로 나뉨.

4. 사안을 입체적으로 보는 의견은 거의 없거나 있어도 각광받지 않음. 이는 3번인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큼.

5. 열심히 의견을 내는 사람들과 큰 호응을 받는 기사나 게시물은 이미 결론을 상정해 놓음.

6. 5번에서의 결론은 대개 한쪽에 모든 잘못이 있으며, 다른 한쪽은 100% 정당하다는 논리임.


위의 도식화를 사례로 들자면, 오랜 사회생활을 경험한 남성들이 대다수인 커뮤니티에서는 민희진은 경영의 원칙을 위배해 회사의 주인을 기만하고 편법으로 경영권을 찬탈하려는 용서하지 못할 짓을 ‘확실히’ 저지른 범죄자고, 방시혁은 원칙에 따라 회사의 안정적인 경영과 운영을 도모하는 ‘죄 없는’ 대표이사다. 그러나 GenZ가 즐기는 릴스와 숏폼이 대세인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서는 철저히 반대다. 민희진은 부당한 모회사의 압력과 괴롭힘에 참다 참다 파격적인 기자회견으로 울분을 터뜨려 속 시원하게 억눌린 직장인의 애환과 사회적 주니어들을 대변한 인물이고, 방시혁은 일 잘하고 능력 입증한 유능한 직원을 언론플레이와 법적인 압력과 경영적 권력으로 내치려는 악덕한 인물이다.


강형욱 훈련사 사건은 어떤가. 개를 키우는지, 기르는 개가 대형견인지 아닌지 여부가 극과 극 전쟁에 피아를 결정한다. 해명 과정에서 특정 커뮤니티에서 쓰는 혐오적인 표현이 언급되자, 이 논쟁은 젠더 이슈로 확대됐다. 평소 어떤 성별 내러티브에 얼마나 호응해왔는지에 따라 진영이 강화하는 식으로 재편됐다. 추가적인 뉴스, 해명이나 반박이 나오더라도 중요하지 않다. 기존에 취한 스탠스에 일치하면 “거봐. 이럴 줄 알았어”가 되고, 거기에 반하는 소식이라면 “들을 가치도 없지”라며 깎아내리거나 아예 무시한다.


주변인들이 쓰는 탄원서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진영에 따라 탄원서 쓴 사람을 거를 판단 근거로 삼거나 탄원서 쓴 사람을 내 의견과 일치하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삼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가치관과 인식론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멸종한 것일까. 가령 민희진의 기자회견을 속 시원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유명인이라면 그렇게 기자회견에서 욕설을 하는 게 바람직하진 않다고 생각하는 것. 동시에 경영권 분쟁은 인터넷 뉴스나 게시물로는 모든 팩트를 알 순 없으니 재판의 양상이나 재판부의 판단을 기다려보겠다는 의견은 넓디넓은 인터넷 세상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강형욱이 해명하는 모습을 보고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혹시나 직원들의 주장처럼 회사 대표로서 잘못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의견은 어디 갔을까.


우리 각자 모든 걸 다 아는 신이 아니다. 불완전하고 제한적인 정보가 주어졌고, 이해당사자들이 자기들에 유리한 목소리만 낸 상황인데도 우리는 과감하게 모든 걸 확증 판단해도 괜찮은 걸까.


이와 같이 사회적인 논쟁은 누가 맞고 틀리냐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어쩌면 먼 미래에도) 그 누가 맞고 틀렸는지 모른다. 법원 분쟁으로 옮겨갔으니, 법원의 판결이 최종 승부를 가를까? 아니다. 사회적인 문제는 법적인 잘못이 도의적인 잘못까지 포괄하지 못한다. 법적으로는 A가 이겨도 도의적으로는 B가 이길 수도 있다. 이러면 1:1이니까 무승부라고? 무승부도 없다. 사회문제는 스포츠가 아니다. 승부 문제로 치환할 수 없다.


이렇듯 문제는 극과 극으로, 자로 댄 듯이 모든 생각과 입장을 나누는 것에 있다. 본인이 속한 집단이나 커뮤니티에 따라 본인의 스탠스를 결정한다. 사안을 바라보며 나만의 고유한 입장과 의견을 고민하지 않는다. 내가 속한 집단 여론에 간편하게 답을 위탁하고, 내가 속한 집단의 지배적인 의견에 내 기분과 자존감을 의탁한다. 항상 참인 해답이고 이와 반대되는 의견을 보이는 다른 커뮤니티는 뭘 모르는 꼴통들이 모인 한심한 집단으로 치부한다. 민희진이 옳다는 사람들은 회사 소유구조를 존중하며 두 구성원의 갈등을 바라보는 이들을 갑질과 ‘개저씨’의 논리라며 이해하려들지 않고, 방시혁이 옳다는 사람들은 민희진이 직접 키운 뉴진스 그리고 민희진과 멤버들과 부모들과의 유대감을 ‘가스라이팅’당했다고 보고 조금도 이해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유권자는 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찍고, 총선에서 여당 후보를 찍을 수도 있다. 회사 동료가 민희진-하이브 사건에서 나와 다른 의견을 낸다고 해서 동료가 나와 달리 세상의 종말을 원하는 사람은 아니다. 반려견이 있고 ‘개는 훌륭하다’ 애청자가 이번 사건에서 강형욱 훈련사를 다시 보게 된다고 해서 이상할 일 없다. 열심히 챙겨보던 침착맨이 본인 생각과 달리 민희진을 위해 탄원서를 쓴다고 해서 다음 주 침착맨 방송이 몸 쓸 콘텐츠가 되는 게 아니다. 민희진에 동의하고 공감하진 않지만, 침착맨이 탄원서를 쓴 이야기를 보며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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