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과 시대는 상호호혜적인가, 상호착취적인가
* 영화를 보던 중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알리는 외신 알림을 받았다. 영어로 적힌 한강 작가 이름이 보였고, 어쩌고 저쩌고 하니 짐짓 어떤 좋은 소식이 있겠거니 했다. 그러나 거기서 보이는 노벨상이라는 영어 단어, 그리고 올해 노벨상 수여자들이 결정되는 시기였다는 생각이 번쩍 들고 나니 헤드라인이 오롯이 들어왔다. 세상에! 한글로 된 문학에 노벨상이라니...
* 나라는 난리가 났고, 사람들은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를 온갖 언어를 동원해 표현했고, 예상할 수 있듯 여러 다양한 맥락에서 폄하하거나 삼척동자도 아는 노벨상의 권위와 상징성을 어설프게 낯설게 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그러나 "역사적 상처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력한 시적 산문”이라는 한림원의 짧고 단단한 심사평은 한국사람들이 원어로 된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읽게 됐다는 확증을 주기에 충분했다.
* 대학 3학년 때 다중전공을 선택해야 했다. 인문대 졸업 요건은 융합 부전공을 고르거나, 다중전공으로 제2전공을 필수로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대개 취업을 고려해 경영, 경제 같은 상경계 다중전공을 선택하거나 보다 학업 부담이 적은 부전공을 고르곤 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다중전공은 국문학과였다. 그런 선택의 동인이 되었던 8할은 나중에 언론준비시험을 준비할 때 신문방송학과보다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변 조언이었다. 몇 학년인지 기억도 안 나는 풋풋하던 어린 초딩 시절, 장래희망란에 소설가라고 한두 번 적어낸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으니 1할은 그거라고 치자. 나머지 1할은 단순히 소설 읽기 좋아했고 강의실 이동이 같은 건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하자. 그렇게 철학과 국문학, 21세기 먹고사니즘에 철저히 정반대에 있는 두 학문을 학사 학위로서 끌어안기로 했다. 그리곤 두 학문을 선택해 모든 수업이 썩 만족스러웠지만, 내 삶에 어떤 경제금융 혹은 사회생활에서 득이 되거나, (예상했지만) 두드러지게 실재적인 효용성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도 대학시절 철학 수업을 들으며 지성인의 마음가짐을 갖추면서 시나브로 피폐해진 심성을 국문과 수업에서 치료하곤 했다. 치료제가 됐던 것은 현대문학, 문학과 역사, 시, 비평 등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한 학기 동안 단편소설을 써내야 했던 창작 수업이다.
* 한참 졸업 시즌과 함께 사회인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열심히 언론고시(aka 언론사 입사 시험), 즉 시사와 논술/작문 같은 글쓰기 기술에 매진했다. 2016년 그 무렵, 한강 작가가 부커상을 받으며 화제가 됐다. 부커상이 무엇인지, 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라는 장편소설은 어떤 내용과 메시지를 담았는지 공부했다. 그로테스크하고 괴기한 분위기라는 주변 평가에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취업준비 그 자체가 괴기하기 때문에 애써 그 소설을 읽지 않았다. 그러나 관록 있는 작가는 한 번의 인연으로 그치지 않고 내게 강제적인 필연성을 휘둘렀다. 살다 보니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한강 작가를 만나게 된 것. 작년 동네 사람들끼리 모이는 독서모임에서 모임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제안하고 추천하는 과정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이 선정됐다. 몇 달 후엔 또다시 한강 작가의 책을 읽었다. 두 책 각각 4월과 5월에 있었던 비극을 담았다.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였다. 환상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타자를 목격하는 방식으로 4.3 사건과 5.18 민주화운동의 아픔과 그 아픔에 담긴 감정을 전사해 냈고, 독자로 하여금 그것을 오롯이 체험케 했다. 참으로 읽는 게 고통인 책이었다. 책 읽고 나서 마음을 올려쳐진 고통 덕분일까, 노벨문학상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구보다 더 기쁘게 마음이 내려앉았다.
* 한국 사람들은 광주와 제주에 빚졌다. 두 지역에 씻을 수 없는 피의 비극, 그리고 그 아픔에 영감을 받은 소설은 거꾸로 우리 문학을 영광스럽게 했다. 참 아이러니하다. 참상의 피가 서린 두 곳 위로 위대한 업적이 완성된 것이니. 민주주의, 시민의식, 국가의 기능과 역할이 갖춰지기까지 한국 사람들은 광주와 제주에 빚진 것처럼, 이제는 문화에서도 우리 모두 광주와 제주를 빚졌다. 외면하지 말고, 뚜렷하고 올곧게 1948년 4월과 1980년 5월을 직시하고,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 한강 작가의 2012년 연세대 석사 논문은 소설가 이상에 관한 내용이다. 이상이 그렸다가 여전히 보존된 회화를 근거로 문학 작품과 연계해 이상이 어떻게 창작 모티브를 품었는지 접근해 보는 연구다. 한강 작가는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가난’과 ‘측은’이란 이미지를 발견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시절 조선을 구성하는 복합적 감정이 이상의 창작 세계에 오롯이 묻어난 것. 이상이 그랬듯 한강 작가는 본인의 작품에 현대 대한민국의 상처와 연약함이란 이미지를 중첩시켰다. 일제강점기를 문학으로 옮긴 이상, 현대사의 비극을 소설에 담은 한강. 그 창작의 과정은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차있었을 테다. 어두운 시대는 위대한 문인의 정신을 갉아먹으며 문학을 탄생케했고, 문인은 문학의 방식으로 초라하고 암울한 시대를 공감과 극복으로 승화시켰다. 문학과 시대는 서로 호혜성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서로 착취하는 관계라고 해야 할까.
* 졸업하고 나면 학교 소식을 드문드문 듣는데, 가끔 들리는 소리 중 하나는 교육부 지침으로 인해 대학마다 인원 감축이 필요하고, 그렇게 학과 구조조정이 요구되면서 가장 비인기학과들이 우선 감축 대상으로 떠올랐다는 소식이었다. 국문과 교수님과 회포를 나눌 때마다 장기적으론 폐과가 될 수 있다는 암담한 소식이 들리곤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기 없던 인문대에서도 유독 국문학과와 철학이 인기가 박한 모양이다. 마치 최인훈 작가의 ‘광장’에서 부채의 끄트머리, 즉 사북자리에 선 주인공 명준처럼 위기에 처한 국문학과인 걸까. 그나마 올해 초엔 어쩌다 인기과 정원을 줄이겠다는 발표가 나면서 시름을 덜었다. 공학, 기술, 과학, 수학이 돈이 되는 시대, 국문학에서 착취할 것조차 없는 2024년, 10년 뒤엔 국문과는 대학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국문학은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시절보다 물질의 시대에 더 암울한 것일까. 물질의 시대, 정확히는 물질 불황의 시대, 척박한 것처럼 보였던 국문학에서 모처럼 전 국민을 들뜨게 만들 소식이 나왔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혹시 국문학과 지원률이 올라갈까. 마치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던 해 피겨를 배우려던 유소년들이 많아졌던 것처럼, 이세돌이 알파고와 바둑을 둘 때, 바둑을 배우려는 꼬마들이 많아졌던 것처럼.
* 창작 수업에 어딘가 써놓고 10년 넘게 보관 중인 내 처음이자 마지막 단편소설이 생각났다. 소설의 모티브는 이렇다. 창작 수업을 들었던 2015년 무렵, 한국에선 청년실업이 사회 주요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열심히 해도, 불굴의 의지를 보여도 성공하기 어려운 청년층을 중심으로 ‘노오력’에 회의감과 비꼼이 시작된 해였다. 그럴수록 물질주의는 더욱 극심해졌다. 그렇게 구상한 스토리라인의 주인공은 방구석에 숙식하는 20대 ‘루저’였다. 그는 하릴없이 지내다가 우연히 로또에 당첨된다. 그러나 루저는 큰돈은커녕 적은 돈조차 계획적으로 써본 적 없고, 돈을 굴리는 방법도 전연 몰랐다. 당첨 소식을 듣고 찾아온 주변인들의 구걸, 들뜬 마음에 이어진 흥청망청 소비와 낭비로 루저는 당첨금 20억을 탕진하는 데 고작 일주일이 걸리지 않는다. 패배의식과 보상심리에 젖은 루저가 향한 곳은 강원랜드다. '광장'에서 이데올로기의 극단적 대립의 시대에 주인공 명준은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으로 망명하는 배에 오른다. 사북 자리라는 모티브는 이렇게 차용된다. 명준은 좁아지는 부채살을 따라 사북 자리에 선 푸른 광장, 바다로 몸을 던진다. 그 마지막처럼 루저 역시 강원랜드에 온다. 강원랜드는 평창군 사북읍에 있다. 명준과 사북은 비유였다면, 루저는가 사북에 온 건 명시적이었다. 복권 당첨으로 부채의 가장 넓은 지역에도 올라갔던 루저는 결국 줄곧 사북자리까지 내달려 비극을 맞이한다. 비루한 내 단편소설에도 시대정신을 묻혔는데, 바로 물질주의 세태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간의 탐욕, 절제의 부재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벌어진 글로벌 금융위기의 급한 불을 끄고 2010년을 넘기면서 한국사회도 물질을 기준으로 높낮이가 정해지는 풍토 형성에 가속이 붙었다. 돈 없는 사람들은 쉽게 폄훼되고 돈과 연관성이 부족한 가치들은 어디서나 멸시됐다. 그러나 슬픈 것은 그 언어와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 한강 작가의 수상은 처음으로 국문학을 공부했고, 현대소설로 고민해 보고, 독서모임으로 즐거이 감상을 이어나가는 소시민인 나로써 인생에 몇 안 되는 짜릿한 순간을 선사했다. 국문학과 학위를 가지고 있음이 처음으로 자랑스러웠다. 비로소 원서이자 모국어로 쓰인 노벨문학상 작품을 100% 몰입해 읽을 수 있게 된 것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