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원상 Jan 20. 2022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잊히는 것에 대한 슬픔

영화 OST 'Forget me knots'를 중심으로 본 노 웨이 홈

공식 OST 앨범 21번 트랙 'Forget Me Knots'


피터 파커가 모든 유니버스로부터 악당이 몰려들어오는 사태를 막기 위해 닥터 스트레인지로부터 온 우주가 자기를 잊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나오는 가장 극적인 순간을 장식하는 곡이다. 마이클 지아키노 작곡가는 피터 파커에게 닥친 영웅으로서 타인의 구원과 개인으로서의 극한의 고립이란 양자택일 비극을 바이올린 선율로 극대화했다. '노 웨이 홈'의 결말을 역대 스파이더맨 영화와 MCU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순간으로 장식했다.


곡 제목 'Forget me knots'는 'Forget me not' 동음이의어를 이용해 언어유희로 지은 제목으로 보인다. 세 단어로 구성된 'Forget me not'은 물망초를 뜻하는 영단어고, 이는 독일어 단어 Vergissmeinnicht에서 따왔다. 물망초라는 한자어 역시 어원을 그대로 따랐다. 꽃말 역시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다.


스파이더맨은 슬픈 구석이 있다


'노 웨이 홈'의 결말도 잊음과 잊힘을 관통하는 이야기다. 모두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막으려고 피터 파커는 온 우주로부터 자기가 잊히는 대안을 선택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감정을 억누르며 작별인사("So long, Kid")를 건네고 피터는 그가 사랑하는 모두로부터 잊힌다. 온갖 상상력으로 점철된 멀티버스가 나오고 우주를 뒤흔드는 마법이 등장하는 SF적 요소가 강하고, 누가 죽거나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도 아닌데, 관객들은 피터와 MJ 사이의 잊힘과 잊힘을 목격하며 슬픔에 사로 잡힌다. 누구나 사노라면 잊고 잊히는 것에 얽힌 슬퍼하고 안타까워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겠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을 보면 잊고 잊히는 것은 우리 삶 그 자체다.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기억하겠다고 다짐해도 우리가 사는 우주는 이런 발거둥을 외면하곤 한다. 잊어달라 해도 잊히지 않는 사람도 있고, 뼛속까지 기억하려 해도 쉽게 잊히는 역설이 우리 인생 중 많은 인연과 사건에 녹아있다. 잊음이든 잊힘이든 거의 모든 경우 그것은 누군가의 슬픔과 눈물을 담보한다.


멀티버스와 마법이 마냥 가상의 개념인 것도 아니다. 가령 밤마다 꾸는 꿈도 멀티버스와 같다. 꿈에선 본 인물이 현실에선 사뭇 의미 있게 느껴지는 것은 다른 평행세계에서 온 피터2와 피터3이 피터1에게 교훈과 조언을 해준 것과 마찬가지다. 꿈이라는 우주에서의 기억과 경험은 우리 삶에 명징하게 영향을 끼친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부린 마법도 우리 세계에선 낯설지 않다. 에로스의 황금화살을 맞은 것처럼 우린 누군가에 급격히 빠져버리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언제는 납 화살을 맞은 것처럼 싸늘한 마음으로 변모하는 것처럼 말이다. 


모조리 잊힌다. 기억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잊힌 피터는 다시 찾아내겠다는 약속을 지키러 MJ를 찾아간다. 열심히 대사까지 준비해 두 번째 고백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MJ 앞에서 피터는 결국 새로운 노력 대신 그냥 뒤돌아 선다. 그 어떤 미래도 기억이 있었던 순간을 대신할 수 없다. 모든 걸 망각한 채 평온하게 자기 삶을 사는 MJ를 다시 까마득하고 혼란스러운 앞날로 이끌지 않는 게 피터에겐 최선의 선택이고, 망각의 마법이 발휘되기 전의 두 사람의 관계와 같아질 수 없다는 우주적 한계를 피터는 깨달았던 것이다. 피터 파커는 MJ를 음울함, 우울함 그리고 위기와 고난에서 구했지만, 앞으로의 위기와 고난에 빠지게 하는 것도 본인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러나 잊고 잊히는 것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다. 피터 파커와 MJ의 인연이 있었다 없어진 것이라고 해서 무위에 그친 게 아니다. 잊지 말라던 그러나 잊힐 수밖에 없었던 물망초의 또 다른 꽃말이 '진실한 사랑'인 것처럼. 잊거나 잊힌 일도 분명 우주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피터 파커는 잊음과 잊힘이라는 슬픔에 침전되지 않았다. 투명하고 맑은 눈빛, 사랑스러운 말투, 따듯한 마음을 지니고 신중함, 총명함, 의로움 그리고 용맹함을 발휘하러 친절한 이웃이 되어 다시 세계로 나아간다.

작가의 이전글 대중 미디어의 '웹 3.0'화와 탈중앙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