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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상 Jan 30. 2022

zunhozoon, 그는 누구일까?

준호준? 전호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큰 사랑받는 주인공

유감스럽게 정식 음원 등록이 되지 않아 동영상 조회 수익은 창작자가 아닌 채널관리자에게 간다



아무 생각 없이 특정 분위기나 장르로 무작위 음악을 듣고 싶을 땐 유튜브를 찾곤 한다. 많은 채널이 삼라만상 다양한 취향 중에서 특정 취향을 저격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런 채널에서 제작한 플레이리스트를 중심으로 그 감성에 잘 호소되는 사람들이 모여 작은 커뮤니티가 이뤄진다. 구성원들의 피드백을 거쳐 플레이리스트는 나날이 취향의 접점들이 잘 형성되어 가고, 그렇게 구독자들이 사랑하는 아티스트나 곡이 선정돼 새로운 플레이리스트가 업로드되는 등 선순환이 이뤄진다. 


나는 한동안 조용한 밤에 듣기 편하고 다분히 감성적인 국내 인디 밴드들의 플레이리스트를 찾았다. 대부분 모던 록 풍에 발라드가 곁들여진 음악이었다. 검정치마, 잔나비, 카더가든, 델리스파이스, 혁오, 설이 내 잔잔한 밤을 달랬다. 그런데 수많은 플레이리스트에서 유독 낯선 아티스트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낯선 이름이지만 음악은 강렬하고 감정을 요동치게 했다. 그 이름은 zunhozoon이었다.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대부분 준호준이라고 부르는데, 앞뒤 철자가 다르니, 전호준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름을 어떻게 읽는지에 대한 얘기가 의아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의 정체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그는 정식으로 음원을 발매한 적도 없어서 그 어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노래를 찾아들을 수 없다. 공식적으로는 오직 한 군데서만 들을 수 있는데, 사운드클라우드에서다. 팔로워 3만 7000여 명에, 4~5년 전 올라온 '사람이 사랑하면 안돼요'가 가장 많은 약 300만 회 청취됐고, 그다음으로는 'Message In A Bottle'이 약 100만 회 청취됐다. zunhozoon의 사운드클라우드 음원에는 수년 동안 지난 사랑을 추억하며 그리운 감성에 젖은 사람들이 적고 간 한 줄 댓글로 빼곡하다. 마지막 음악 업로드는 3년 전이며 그 이후로 새로운 음악은 게재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음악 활동을 잠정적으로 접은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댓글을 남긴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zunhozoon 음악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곡이 지시하는 분위기와 심정에 금세 빠져들고, 가사 한 줄 한 줄에 천천히 녹아들었다. 'Message In A Bottle'은 셀 수 없이 들었다.


감성에 젖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zunhozoon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그의 음악은 오직 사운드클라우드 한 군데서만 접근 가능한 음악인데도, 그를 이렇게나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무척 드물고 생경한 일이니까. 정식 앨범 하나 없는 아티스트가 검정치마, 잔나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 숱하게 올라가는 게 어디 간단히 넘길 일인가. zunhozoon의 노래를 커버하거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등 2차 창작물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당사자는 대관절 어디로 갔는가? (인기와 조회수를 대부분 수익화했으면 당신 꽤 큰돈을 벌었을 텐데 말이야)


그의 정체가 너무 궁금해서, 가지고 있는 정보를 기반해 셜록 홈즈로 빙의해보기로 했다.

사운드클라우드에 있는 15개 음원과 정보를 기반으로 과감히 몇 가지 추측을 해보자면 이렇다. 



- 1인 밴드로 음악 활동을 하지 않았을까? 대부분의 음원에서 프로듀싱 혹은 믹싱에 전문성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고, 기타 이외의 연주 파트에서 해당 악기를 전문으로 전공한 음악가들이 참여했다기엔 무리가 있어 보임. 다만 거의 모든 기타 연주는 모두 본인이 소화한 것으로 추정. 작사/작곡은 본인일 가능성이 큼.
- 2018년에 업로드된 'Why Doesn't She Call?'이라는 곡에 키보드에 서동환, 백그라운드 보컬에 이예진(Lydia Lee)으로 크레디트 표기가 되어있다. 서동환은 안테나 뮤직에 최초로 프로듀서로 영입된 뮤지션으로 유명하다. 이예진은 현재 Lydia Lee라는 활동명으로, 음악 활동을 하는 뮤지션이다. 고등학교 재학 때 아델의 'Hello'를 엄청난 가창력으로 커버한 영상이 바이럴이 되었고 미국 엘렌쇼에서까지 초청돼 유명해진 주인공이다. 미술을 공부하러 프랑스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다시 음악 활동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정체가 밝혀진 두 뮤지션은 각각 1996, 1997년생이고, 공통점으론 서울실용음악고등학교 출신이다. 두 사람이 고등학교 시절 친해진 인맥이라면, zunhozoon도 같은 고등학교 출신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래라면, 1995~1998년생일 가능성이 크다.
- 모든 노래 제목에 영어 이름을 자연스럽게 붙이고 영어 가사에 굉장히 유창한 점, 유학 경험이 있거나 유학 중이 아닐까 추정됨. 특히 'Afternoon In Great Britain'이라는 곡과, Colour라고 적고, T 발음을 들어보면 성장 배경에 영국에서의 시간이 있었을 가능성이 큼.
- 이센스를 비롯해 일부 힙합 아티스트를 팔로우하는 것으로 보면 힙합에도 관심이 큰 것으로 추정.
- 음악적 기교나 작곡의 독창성을 펼치는 것보다 감성과 분위기에 집중하는 음악 스타일, 가사의 행간과 메시지를 보면 MBTI는 INFP가 아닐까 추정됨.


사운드클라우드 바깥 인터넷 세상에서는 zunhozoon에 대한 정보는 전무하다. 이 단어로 검색을 하면 네이버든 구글이든 어떤 정보도 나오지 않는다. 그 흔한 위키백과 하나 없고, 인스타그램도 없다. 주변 지인이나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의 전언으로라도 간단한 신상정보나 근황에 대해서도 알려질 법 한데, 나름 열심히 구글링을 해봤지만 무위에 그쳤다.


이 글을 쓰게 된 목적은 단 하나고, 분명하다. 그가 인터넷 공간에 올린 개인 작품을 감상하며 마음속에 큰 울림을 받았던 것 그리고 음악을 매개로 건네받은 그의 슬픔과 우울을 경험하고 이를 승화하는 과정에서 공감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에게 헌사를 보내고자 한다. 마치 2022년 '서칭 포 슈가맨'이랄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썩 잘 지내고 있죠? 좋은 곡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는 동안 어렵지 않게 많이 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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