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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상 Feb 18. 2022

강변북로에서 유재하 음악을 들으며

https://youtu.be/VlY18JiWbyo

유재하 본인의 곡으로 오른 유일한 방송 무대

유명인의 탄생지는 그 자체로 유명하다. 그러나 사망한 곳에 대한 정보는 많이 알려지지 않는다. 단, 사망한 곳이 알려진 이유가 종종 있는데 대개 사고, 피살, 의거 등의 이유다. 서울 여기저기에서도 지나갈 때마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공간이 있다. 예컨대 혜화동 로터리에 동양서림이 있는 길가에 가면 여운형 선생이, 연세대 정문을 지나면서는 이한열 열사가, 청계천과 동대문 평화시장 입구에서는 전태일 열사가 떠오른 식이다. 그리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한남대교 북단 쪽에 있는 강변북로다. 1987월 11월 1일 새벽 함께 술에 취한 친구가 모는 포니2에 동승한 유재하는 반대편 차선에서 온 택시와 정면충돌하는 사고로 도로 위에서 사망했다. 나는 강변북로를 따라 달리면서, 단 하나의 정규 앨범으로 한국 발라드계를 다시 썼다고 평가받기도 전, 고작 26살에 요절한 가수를 떠올린다.


유재하는 한양대 작곡과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고전음악과 대중음악 모두 관심이 많았지만, 진로는 고전음악이었다. 장르와 형식 간 구애받지 않고 본인의 음악 세계를 펼치기엔 음악 세계가 현실적은 어려움도 있었다. 순수음악과 대중음악 사이 간극과 장벽이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클래식의 방법론을 대중음악에 적극 적용하고자 여러 행보를 보였지만, 당시 음대 학풍은 대중음악에 발을 담그는 게 금기였고 클래식 전공 학생으로서 대중음악 경험과 기량을 쌓는 덴 큰 어려움이 있었다. 


모르게 모르게 알음알음 대중음악계로의 꿈을 키우면서 유재하는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 '봄여름가을겨울'를 거쳤다. 어디에 소속돼 본인의 음악 세계 일부를 드러내는 것 대신 그는 자기의 음악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앨범을 내고 싶었다. 유재하는 800만원을 들여 작곡, 작사, 편곡까지 스스로 해내며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인 '사랑하기 때문에'를 발매한다. 발라드에 클래식을 바탕으로 한 유재하의 음악관을 더한 이 앨범은 한국 발라드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깊이 있는 가사, 촌스러움을 극복한 선율, 담백한 감성. 그러나 꽃을 피우기도 전에 유재하의 거대한 포부는 절멸한다.


유재하라니 생각나는 대학교 동기가 하나 있다. 나처럼 재수를 했고, 부산 출신이다. 입학 초 동기 모임이나 과 행사에 자주 나와 즐겁게 지냈다. 둥글둥글하고 웃음이 많았고, 섬세하고 싹싹해서 동기들 대부분도 호의적이었으리라. 동기들 대부분 대학 생활에 익숙해지고 병아리 티를 벗어내기 시작하면서, 입학 초처럼 똘똘 뭉쳐 다니는 대신 각자의 여력대로, 대인관계 성향대로, 스타일대로 대학 문화에 적당히 알아서 녹아들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이 친구는 수업 시간 강의실에서 볼 수 있었고, 노는 자리에는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카카오톡도 없던 시절, 이 동기와 문자로 종종 연락을 나눴다. 고민이 많고, 생각이 깊은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언제 기회가 되어 물었다. "왜 예전처럼 동기들이랑 잘 안 놀아?" 그러자 그 친구는 조심스럽게 자기 얘기를 해줬다. 집 상황이 어렵고, 엄마가 고향 집에 혼자 계셔서, 학비를 대는 것에도 가족들의 부담이 컸다고 한다. 멀리 있는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즐거움을 쫒아다니는 게 불편했다고 했다. 속에 있는 얘기를 듣고나니 솔직히 맘에 있는 얘기를 해준 고마움과 동시에 그 친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미안함, 두 감정이 동시에 솟아났다.


그 친구도 음악을 썩 좋아했다. 그래서 유재하가 졸업한 작곡과 수업을 듣고 다중전공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11월이 되면 캠퍼스 이곳저곳에 유재하음악경연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린다. 한 해엔 그 친구가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떤 음악으로 도전하는지 내심 궁금증을 내비쳤지만, 음악을 들려주진 않았다. 물론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출처: https://blog.daum.net/snipe5853/1226


그 친구가 유독 머릿속에 짙게 남은 건 마지막 작별 인사 때문이다. 내가 군 휴학을 끝내고 노느라 정신 없이 학교에 다닐 때 우연히 인문대 앞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그때는 이미 카톡의 시대였지만, 문자의 시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연락을 많이 주고받지 못했고, 그러던 차에 오랜만에 만났던 기회였다. 마침 다음 목적지도 같은 방향이라 함께 걸어가며 반갑게 근황을 나눴다. 오랜만에 만나니 할 얘기가 한가득이더라. 


근데 얘기 도중 친구가 희한한 얘기를 꺼내더라. 오늘이 아마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날일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어디 하나 진지하지 않았던 나는 황당무계한 소리에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먼 해외로 대학원 진학을 가는 걸까, 아니면 고시를 준비하러 가는 걸까. 여러 가지 예측을 던져봤지만 절대로 말해주지 않겠다는 단호함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쯤 되니 나도 직감적으로 더 물어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만 남더라. 궁금증은 사라졌고, 어떤 작별을 해야할지 떠올리고 있었다. 그 친구는 나중에 우연히 다시 만나는 날이 오면, 그때 다 말해주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사회대 건물을 지나면서 정문에 나오니 서로 가는 길이 나뉘었다. 거대한 작별을 전제로 몇 분 동안 길게 얘기했으니 진짜 마지막 인사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동기는 마지막으로 포옹을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사회대 정문은 항상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이다. 여기서 연인도 아니고 한쌍의 이성이 포옹을 한다는 것이 적잖이 낯설었다. 그렇지만 정말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드니 고민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따뜻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곤 동기는 며칠 후 다시 볼 것처럼 밝게 손을 흔들고 멀어져 갔다.


그게 정말 마지막이었다. 이제 10년이 지났을까. 일부러 그 동기의 소식을 건너 건너 들어보겠다고 여기저기 수소문하지도 않았다. 작별하면서 나눈 대화 속에서 옅은 약속 같은 게 형성됐고, 이를 내가 깨뜨리기 싫었던 것이었을까. 나중에 우연히 만났을 때 동기에게 직접 듣고 싶은 마음일까.


아무튼, 나는 강변북로를 달리면서 유재하를 생각하고, 이 음악을 들으면서 유재하의 후배가 되려 했던 동기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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