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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상 Feb 20. 2022

테슬라 모델3, 2년의 경험: 왜 샀냐? 어땠나?

테슬라의 지향점, 일론 머스크의 야망, 전기차 보조금, 빨간 차에 대해서


2020년 2월, 테슬라 모델3 롱레인지를 인수하고 2년이 지났다. 그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전기차에 대해 많이 떠들었고, 테슬라를 두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비슷한 얘기를 셀 수 없이 반복해서 매크로처럼 얘기할 지경이다..!


자동차 산업에 보통 정도의 관심이 있고, 차를 소유하고 운용하는 데 그리 큰 관심이 없었던 관점에서 어떤 이유로 모델3를 구매했고, 그 경험이 어땠는지 정리한다. 기존 자동차 리뷰나 자동차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관점과는 대단히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인지할 필요가 있다.


왜 테슬라?

위에 적었듯 차에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4 행정 기관에 네 바퀴 달고 달리는 21세기 인류를 대표하는 공산품이며 한국에서는 운송수단이라는 본래 가치보다 유독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고부가가치적 소비의 정점이 되었다는 점(이 점은 유감) 정도로 자동차 산업과 일반을 바라보고 있다. 


차 없는 뚜벅이도 큰 아쉬움 없이 살 수 있는 수도권에서 나고 자라서 더욱이 차를 갖고 싶은 이유가 없었다. 물론 자가용을 갖게 되면 얻는 장점들, 가령 뚜벅이로는 갈 수 없는 근교의 여러 명소들을 가볼 수 있다는 것, 대중교통의 운행 시간이나 정류 지점을 찾기까지의 사소한 불편함 없이 어딘가를 이동할 수 있는 점도 많다. 그러나 이것들이 차값, 취등록세, 자동차세, 보험료 전체를 퉁칠 수 있느냐고 묻자면, 갸우뚱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수도권엔 차가 너무나도 많아 자가용을 끌고 다니면 새로이 괴로워질 구석이 많다. 러시아워가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시간대에 신호 대기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량행렬을 마주해야 하고, 어딜 가더라도 주차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 한다. 주차비로 내는 돈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깝다 ㅠ_ㅠ


이렇게 차 소유에 부정적인 입장인 사람이 덜컥 무모하게 차 구매를 결정한 계기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테슬라에서 만드는 차량의 사용자 경험과 테슬라가 그리는 미래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국내외 유튜브 영상을 본 테슬라 시승기, 사용기는 달랐다. 브랜드, 고급스러움, 인테리어, 하차감, 배기음-엔진음, 승차감 등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 오토파일럿, 소프트웨어, OTA,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MCU(통합제어유닛), 커넥티드 카와 같은 것을 다루고, 이에 대한 실제 경험과 만족감을 이야기하는데 꽤 새롭게 들렸다. 과장 조금 보태면, 미래에 있는 물건을 써보고 하는 경험담인 것처럼 들렸다. 다른 자동차들이 대개 가진 것에 대한 만족 중심의 사용자 경험이었다면, 전기차로서의 테슬라는 사용하는 것에 대한 만족이 주안점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이런 궁금증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모델3가 국내 예약 판매를 시작한 2019년 8월 말에 바로 예약금 300만원과 함께 주문을 넣어놨다. 예약해도 길게는 반년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 하니 무작정 넣어본 것이었다. 그렇게 2020년 1월 무렵 차 인도 일정이 잡히고, 고심을 거듭하고 최종 구매를 결정하고, 2020년 2월에 차량을 인도받았다.


세부적인 특이사항을 열거할 거 없이 명료하게 말하자면, 일반적인 자동차로 인식되는 소비재 혹은 공산품이라기보다, 굴러가는 스마트폰 혹은 자동차 행세를 하는 IT기기로 보였다. 매년 새로운 스마트폰을 구매하고, IT와 연관된 새로운 서비스나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면 누구보다 빨리 써보는 나에겐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요소다.



이뿐만이 아니다. 테슬라가 지향하는 관점의 차이, 질서의 해체, 패러다임 변화도 주목했다.


기존 자동차는 구매한 시점부터 구식화가 시작된다. 사는 순간부터 기계적으로나 전자적으로나 구식이 되고 구려진다는 말이다. 이를 '계획적 구식화(planned obsolescence)'라고 한다. 계획적 구식화가 업계 표준이 된 자동차 시장의 틀을 테슬라가 깨버린 것이다. 테슬라는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전 차량에 제공하는데 시간이 흘러도 구매 시점보다 여러 면에서 더 나은 차가 된다. 


모든 차량에 제공하며 소프트웨어로 추가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고, UI/UX가 새롭게 개편되고, 심지어 하드웨어적인 면에서도 개선이 이뤄지기도 한다. 가령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차량의 출력이 증가했던 경우도 있었다.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 소위 자율주행 기능으로 알려진 오토파일럿도 잇단 업데이트를 거치며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 느끼는 소비자 경험은 썩 재밌다. 누군가는 애초에 미완성된 차를 파는 거 아니냐고 따질 수 있지만, 이는 여전히 '계획적 구식화'라는 프레임에서 갇혀 새로운 형태의 자동차 사업을 바라보는 것에 불과하다. 스마트폰도 메이저 업데이트를 거치면서 더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데, 여기에는 "왜 미완성된 폰을 파느냐"라고 하지 않듯.


차량 운행, 위치, 배터리 충전-소비 등 기본적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API도 제공돼 서버를 운용해 원격으로 정보를 조회하고 관리할 수 있기도 했다. 차 안에서 유튜브, 넷플릭스를 보거나 패드를 붙여 게임을 즐길 수 있기도 하다. 이렇듯 기존 패러다임에 침전된 자동차 회사들이 덜 지향했던 지점을 파고드는 신생 도전자에겐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테슬라가 새롭게 열리는 전기차 시장에서 뉴비였던 테슬라는 다른 유력 경쟁 완성차업체보다 유리한 입지를 가져갈 수 있었던 것들이 위에 상술한 특징 때문이었다. 물론 테슬라가 지니는 특장점을 기존 자동차 회사들도 성취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론이 있고, 나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기존 자동차 회사들이 그런 전처를 밟지 못한 이유는 포기해야 할 레거시가 많았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에 더 힘을 주고 전기차 기술개발에 더 집중하기엔 수십년 동안 꾸려오고 갖춰온 내연기관 관련 부서에 대한 투자와 집중을 한 순간에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신규 신입 진입자로서 깨끗한 도화지에서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시도들을 할 수 있었다. 예컨대 대시보드를 없애고 15인치 모니터에 올인원 하는 시도, 소프트웨어 OTA로 간편한 업그레이드, 딜러 체계나 전통적인 마케팅 업무를 제외한 재무적 효율성 극대화 등. 기후위기 문제가 대두되고 운송 부문에서의 에너지 전환도 급격해지는 만큼 테슬라는 본인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더 많은 기회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왜 일론 머스크?

테슬라의 우여곡절과 CEO 일론 머스크라는 인물에 대한 얘기도 빠질 수 없다. 2019년 8월, 내가 차 계약할 무렵만 해도, 테슬라의 기업 이미지는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고, 성과 지표는 마이너스면서 CEO의 무모한 공언과 발언만 돋보이는 곳 정도였다. 뉴스에 달리는 댓글은 항상 조롱과 힐난뿐이었다. (지금도 다른 의미의 조롱이 달리곤 하지만..) 최고 1200달러까지 육박했다가 지금은 856달러 수준인 테슬라 주가가 당시엔 불과 43달러였다. 그 당시 그런 분위기에서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 회사의 차를 덜컥 계약하는 것은 생각보다 꽤 도전적이었다.

여담이지만, 그 당시 차 대신 테슬라 주식을 샀으면 서울에서 갖고 싶은 집을 아무 거나 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결코 계약을 취소하지 않고 차를 인도받기까지 기다린 이유에는 머스크가 지향하는 바를 공감했다는 점도 큰 역할을 했다. 에너지 전환에 앞장서 대표적인 회사의 역할을 하고, 더 나아가 화성 이주를 성취해 다행성종족이 되겠다는 진취성 등 머스크의 과학기술자로서의 야심 찬 꿈에 대한 수동적 지지와 응원의 마음이랄까. 화성 이주에 대한 청사진이 인류 문명의 존속에 유일한 답이냐에는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한다. 그러나 소비자로서 테슬라를 선택했다는 점은 자율주행 기술로 인한 운송 부문의 혁신, 에너지 전환을 위한 도전, 기후 문제에 대한 관심과 대응 의지 등에서 그의 도전과 행보에 간접적으로 함께한다는 생각이 한다.


물론 트위터를 비롯해 공개 석상에서의 그의 무모하고 자극적인 언행에 대해서는 할말하않 ;D



왜 전기차?

전기차 구매에 가장 큰 장점이 하나 있다. 정부와 지자체 단체에서 각각 제공하는 전기차 보조금이었다. 2019년만 해도 전기차 구매는 심리적으로나 인식적으로 구매에 큰 장벽이 있었다. 충전 문제에 대한 어려움과 낯선 자동차 운용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내연기관보다 비싼 차량 가격대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비싼 가격에 대한 문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부담이 크게 상쇄된다. 초기 비용이 큰 것과 달리 세제 혜택과 차량 유지에 필요한 부대비용, 기름값 대비 (아직은) 저렴한 충전 요금 등 전체 유지비가 내연기관보다 적어 5년 이상 탄다면 디메리트는 아니다. 구체적으로 적자면, 자동차세는 10만원이 조금 넘고, 공영주차장과 고속도로 통행료는 50% 할인되고, 400~500km 주행할 수 있는 충전비용이 1만원이 조금 넘는다. 차량 소모품, 수리 및 관리비에서도 돈이 나갈 일이 없다. 신경 써야 할 게 타이어 마모, 워셔액, 브레이크 패드 정도다.


구매 결정에 중요한 계기가 됐던 건 전기차 보조금 혜택이 상당히 컸다는 점이다. 국비와 지방비(서울) 합해서 135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나라에서 이렇게 큰돈을 지원받는 일이 내 인생에 또 있을까?' 이렇게 생각했다.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전기차 보조금 혜택은 매년 조금씩 줄어든다는 것도 중요 포인트였다. 모델3를 그 당시가 아니라 1~2년 뒤에 산다면 분명 수백만원을 더 비싸게 사는 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구매를 결정했다. 그리고 이 판단은 정확했다.


2020년 이후로 보조금 혜택과 적용 범위가 대폭 변경됐다. 전기차와 관련 인프라에 제공하는 전체 국가 예산은 늘었지만, 개인당 전기차 구매에 돌아가는 보조금 액수는 줄고, 차량 가격에 대한 조건도 새롭게 추가됐다. 무엇보다 반도체 공급망 문제을 비롯해 여러 이슈 때문에 차값이 크게 인상됐다. 똑같은 옵션과 트림으로 지금 구매하려면, 차량 가액은 800만원 정도 더 올랐고, 실질적으로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혜택은 내가 받은 것의 1/4 정도로 줄었다. 요컨대, 2년 만에 같은 차를 2000만원가량 더 비싸게 구매해야 한다는 것. 가격을 감당할 수 있다고 쳐도 더 큰 문제는 공급망 문제로 인한 생산량 저하 때문에 차를 계약하고도 최소 1년 뒤에나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밖에 전기차를 타면서 가장 큰 문제이자, 많은 사람들이 구매를 망설이는 충전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됐다. 아파트 단지에 완속충전기가 다수 들어와 아무 스트레스 없이 차를 타고 있다. 전기차를 구매하려면, 동선에서 큰 어려움 없이 충전할 수 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이 문제에 답을 할 수 없다면, 나는 과감히 전기차 구매를 재고하라고 조언한다.


왜 빨간색

차량 색상은 빨간색이다. 정확한 명칭은 레드 멀티코트. 테슬라는 기본은 흰색이고, 색깔 넣는 건 옵션이다. 추가로 돈을 받는 주제에 저렴하지도 않다. 120만원짜리 혹은 250만원짜리 색깔이 있다. 빨간색은 가장 비싼 250만원짜리 옵션이다. 아무리 빨간색을 좋아한다고 해도 색깔에 250만원을 태워? 제정신?


빨간 차를 사고 탈 생각을 하면서 재밌는 스테레오 타입이 있다든 걸 깨달았다. 빨간 차를 타는 사람은 양아치일 가능성이 크고, 운전 매너가 형편없을 것이고, 남자보다 여자일 가능성이 클 것 등등이 있다. 누군가는 중고차로 처분할 때 무채색보다 가격이 덜 나가서, 너무 튀고 돋보인다는 점에서 비선호한다.


내가 빨간색으로 결정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테슬라의 시그니처 컬러가 레드인 점, 모델3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흰색이 그렇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길거리에 가득한 무채색 자동차들을 보며 느껴진 권태로움 등이 있다. 자동차 종류도 다양하고, 사람들도 다양하고, 옷들도 다양한데 색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이해가 안 됐으니까. 세상을 보다 더 다양하게 하기 위한 포부를 드러낼 의도가 적당히 있었다.


사소한 장점과 단점들이 있겠지만, 빨간 차를 타는 경험은 썩 나쁘지 않았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그린란드 간 주인공이 빨간 차를 렌트해 돌아다니고,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도 빨간 차는 좋은 소재이자 배경으로 기능한다. 애니메이션 '카'에서도 주인공 라이트닝 맥퀸은 빨간색이다! '랑종'에서도 "이 차는 빨간 차"라고 적은 차가 나오며 이는 빨간 차가 길운 할 것이라는 태국 신앙이 있다는 걸 의미하는데, 아무튼 빨간 차는 좋습니다 여러분!


모든 차들의 주인공인 빨간 차를 보십쇼!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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