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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상 Jan 17. 2022

대중 미디어의 '웹 3.0'화와 탈중앙화

자이언티X한문철 그리고 대선주자X삼프로

인터넷 세계에서 '웹 3.0'이 뜨거운 감자다. '웹 3.0'이 뭐냐고? 초기 인터넷 시대에 이용자들이 각자 필요한 정보를 찾아 정처 없이 표류했던 대항해시대 '웹 1.0'를 지나, 표류하는 이들을 한 곳에 불러모아 마을과 도시를 만들어 종속하게 해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제공하는 대신 큰돈을 벌고 있는 작금의 구글이나 네이버 등 거대 IT 플랫폼 기업으로 대표되는 '웹 2.0'. 지금은 '웹 2.0'의 시대다. 암호화폐, NFT, 메타버스의 부흥으로 대두한 거버넌스 측면에서의 퀀텀 점프라고 할 수 있는 탈중앙화를 내세워 이용자 각자에게 모든 소유권과 권한을 갖게 하겠다는 '웹 3.0'이 태동 단계에 있다. 네이버, 카카오, 구글 같은 거대 인터넷 IT 기업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틀어 새로운 질서와 형태를 갖춘 인터넷 세상이 열린다는 것이 '웹 3.0'의 핵심 아이디어다. 주류 인플루언서들 중 일론 머스크처럼 여전히 '웹 3.0'에 회의적인 인사들도 많지만, '웹 3.0'을 표방한 것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패러다임 경쟁은 이미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의 대중문화와 정치에서도 '웹 3.0'의 준거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이벤트가 등장했다. 하나는 힙합 아티스트 자이언티의 컴백 무대다. '선물을 고르며'로 컴백한 자이언티가 선택한 무대 중 하나는 블랙박스 영상 제보를 기반으로 도로 위 사고와 분쟁에 관한 법률 토크를 하는 '한문철 TV'였다. 힙합과 블랙박스가 대관절 무슨 연관성이 있어서 '인기가요'같은 공중파 음악 방송이나 '멜론' 같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을 대신한 것일까. (사실 첫 번째 컴백 무대는 아니었고, 첫 무대는 KBS '아침마당'에서 펭수와의 합동 공연으로 이것 역시 기존 상식과는 달랐다)  

한문철 변호사는 12월 28일 라이브 방송에서 본인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소개하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수룩하게 랩을 하는 와중에 자이언티가 화면 안으로 들어와 함께 듀엣 공연을 가졌다. 자이언티는 “보통 가수들이 컴백할 때 음악방송에 나가는데, 새로운 플랫폼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한문철TV는 음악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데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채널이다. 이곳에 나갈 수 있다면 엉뚱하기도 하고 재밌겠다 싶어서 나왔다"라고 말했고, 한 변호사는 "나보다 100배 유명한 사람이 나온다고 해서 농담하는 줄 알았다”며 “나는 구독자 131만 명밖에 되지 않지만 자이언티의 뮤직비디오는 몇천만 명이 봤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이언티가 한문철 TV에 행보를 벌인 것은 단순히 그의 엉뚱함 때문만은 아니다. 자이언티가 변화해가는 콘텐츠 시장 속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이로써 충분히 합리적이고 경쟁력 있는 시도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방송 출연 자체는 하나의 화제가 돼 바이럴로 여러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로 퍼졌고, 많은 언론사도 이를 조명해 보도에 나섰다. 홍보 효과를 따져본다면, 자이언티의 신곡 발표 소식은 자이언티 팬들, 음악 마니아들을 넘어 '한문철 TV'를 구독하는 30~40대 이상의 차량을 소유한 사람들, 주요 언론 기사들을 보는 독자들에게까지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자이언티는 탈중앙화된 미디어 시장에도 잘나가는 힙합 아티스트가 될 떡잎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경제 전문 유튜브 채널 '삼프로TV'가 대선 시즌을 맞아 대선 후보들을 섭외해 부동산, 주식 등 금융과 경제에 관해서 여야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과 윤석열 후보에게 의견을 면밀하게 물었다. 두 영상은 4일 만에 합계 500만 뷰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여기서 나온 발언을 기반으로 인용 보도를 했고, 여기서 나온 발언을 논평하는 2차 콘텐츠를 생산했다. 사실 이런 프로그램 기획은 기존 방송사나 언론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인 동시에 해야 했어야 하는 기획이었다. 그럼에도 자원과 인력이 상대적으로 열등할 수밖에 없는 일개(여기서는 대단히 극찬하는 표현임) 유튜브 채널이 선수를 쳤다. 이는 언론사에 "물을 먹인" 격이었고, 동시에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 콘텐츠를 제작하는 채널은 '삼프로TV'라는 지위를 공고히 하는 일이 됐다. 


실익이 '삼프로 TV'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두 후보 중 한 후보는 1시간 30분 정도 인터뷰 안에서 경제 식견이 있음을 증명받아 유권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정 후보가 기존 매스 미디어가 제공하는 콘텐츠에 출연해서 어떠한 분야에 통찰력과 지식을 증명받기는 사실상 어려웠다. 신문사 전면 인터뷰? 대선후보 TV 토론회? 그 어떤 콘텐츠에서도 대선후보가 특정 분야에 대한 식견을 이렇게 크게 전달했던 경우가 있었을까? 그러나 유튜브 세계에서는 이게 가능했고, 이 기회를 잘 포착한 한 대선 후보는 많은 중도층의 표를 가져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소화했다. 

방송국, 주요 언론사, 콘텐츠 플랫폼 기업 등 기존 대중문화 유통을 중앙집권화할 수 있었던 곳은 본질적으로 폐쇄형 커뮤니티다. 피디, 작가, 소속사, 기자, 정치인, 가수 등 정말 그 일에 직접 관련된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만 소통이 발생했다. 아이디어 기획과 구상에서 필연적으로 '그 나물에 그 밥'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기존 매스 미디어의 탄생부터 이어진 고착화된 패턴 속에서 유명 가수가 신곡 발표로 준비할 수 있는 컴백 무대도 주조된 것마냥 서로 다를 수 없었다. 기존 중앙집권적적 형태의 콘텐츠 생산에서는 생산 과정에 참여한 일정 주체가 대부분의 이익을 독점하기도 한다. 


가령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화제의 일반인 출연자가 출연하거나 '환승연애'에 일반인 출연자가 참여했을 때 그 공과 이익은 프로그램과 제작사나 유통사에 대부분 돌아간다. 일반인 출연자는 방송 출연이라는 새로운 경험과 소정의 출연료에 그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이라는 콘텐츠 시장의 탈중앙화 대안이 나온 후엔 일반인 출연자는 브이로그를 시작해 인기를 누적하고 그 기회의 연장 속에서 돈까지 벌 수 있게 됐다.  


점점 기존 시장 지배자들(방송사, 기업)에게 권력(인기)이 이탈되고, 새로운 신흥 경쟁자들(유튜브, 넷플릭스)의 부흥 속에서 대중문화 콘텐츠 시장도 탈중앙화되고 있다. 탈중앙화의 커뮤니티는 투명하고, 공평하고, 창발적이다. 창발적 커뮤니티에서는 전혀 다른 두 가지가 만나기도 하고, 기존의 교과서에선 실패와 위험으로 규정한 것들이 기회인 동시에 흥미로운 도전이 된다. 기존 질서와 가치를 해체하는 성격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더 잘 해체하는 것이 더 큰 경쟁력을 의미할 가능성도 크다. 


대중문화 콘텐츠 시장에서의 이런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다. 신곡 컴백 무대, TV 토론회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 레거시 미디어에서의 큼직한 이벤트들은 상징성만 남고, 앞으로는 실제 효과와 파급력 있는 이벤트는 많은 사람들이 낯선 공간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다다음 대선에서 토론회나 선거 운동이 메타버스에서 주요하게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자이언티의 다다음 앨범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은 유튜브도, 멜론도 아닌 지금은 없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웹 3.0'은 콘텐츠로 발생한 이득을 좀 더 투명하고 공평하게 분배하자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대중문화 콘텐츠츠에서 더 진보한 '웹 3.0' 솔루션이 나온다면, 지금의 콘텐츠 생산과 수익구조는 완전히 해체될 것으로 보인다.  


(두 이벤트 역시 유튜브라는 거대 플랫폼에서 발생한 일이어서 탈중앙화와 웹 3.0과의 연관성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부흥이 콘텐츠 인기로 발생한 수익을 플랫폼이 독점하지 않고, 제작자에게 상식적인 선으로 분배한다는 점을 보면 '웹 2.5'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완전한 탈중앙화를 달성한 '웹 3.0'이 도래한다면, 유튜브는 충분히 과도기적 플랫폼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게시물은 2021년 12월 29일 작성됐습니다.
https://mrbrightside.tistory.com/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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