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왜 보냐, 역사는 이미 해석되고 있는데"

E.H. 카, 오대영 앵커, 박정민 배우, 성해나 작가 레츠고

by 김원상

“작가는 시대의 몸살을 함께 앓는 사람이다.” (2015년 12월, 그해 손바닥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은 성해나 작가의 수상소감 중 일부)


JTBC가 2025년을 마무리하며 성해나 작가를 조명할 때 이 문장을 꺼냈을 때, 내 독서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북바 서가에 꽂혀 있던 '역사란 무엇인가'를 꺼내 위스키 샘플러를 곁들여 읽던 밤, 그리고 지난해 북클럽에서 함께 읽었던 성해나의 '혼모노'. 서로 다른 시공간의 기억이었지만, 결국 같은 질문으로 수렴했다. 역사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쓰는가라는 질문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하듯’ 읽지는 않았다. 북바에 앉아 피트 위스키들을 천천히 비우며, 문장과 문장 사이에 짧게 머무는 방식에 가까웠다. 이 책은 읽을수록 구조가 또렷해진다. E. H. 카는 세계 곳곳의 무수한 역사적 사례를 끌어와 기존의 통념을 반박하고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놀랄 만큼 단순하다.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카는 이 한 문장을 증명하기 위해 방대한 예시를 쌓아 올린다. 역사는 이미 벌어진 사건들의 저장고가 아니라, 언제나 지금의 시선으로 다시 불러내고 재구성되는 행위라는 점. 역사의 역할과 보편적 정의 내리고자 했던 카의 도전은 차분했고, 단단했다.


이 대목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카가 동원한 ‘무수한 사례’ 속에는, 만약 그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았다면 성해나의 소설도, 역사성을 갖거나 역사적 팩트에 기반해 만들어진 수많은 넷플릭스 콘텐츠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카에게 중요한 것은 매체의 형식이 아니라, 사실이 선택되고 배열되며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거나 영감을 받아 세상에 나온 소설과 시리즈, 다큐드라마 역시 현재의 문제의식으로 과거와 대화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방법은 다르지만, 같은 질문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반면 성해나의 소설을 읽던 자리는 훨씬 소란스러웠다. 각 단편에 따라 다른 속도로 책장을 넘기며, 어떤 장면에서는 웃고, 어떤 대목에서는 잠시 말을 멈췄다. '혼모노'에 담긴 이야기는 설명보다는 밀착에 가깝다. 우리 사회에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과 집단, 사건들의 파편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포착해, 그것을 시대정신 속에 담갔다가 천천히 우려낸다. 난민, 집회, 노년, 무속, 노동 같은 주제들은 추상화되지 않고 늘 구체적인 얼굴과 목소리를 얻는다. 그 위에 묻어나는 톡톡 튀는 문체의 개성과 재치는, 소설을 무겁기만 한 사회 고발문으로 두지 않는다. 사회를 반영하되, 읽히는 이야기로 만드는 힘이 분명했다.


그래서 JTBC가 성해나를 단순히 ‘트렌디한 소설가’가 아니라 “시대의 몸살을 함께 앓는 사람”으로 호명한 것이 인상 깊었다. 이 표현은 소설을 취향이나 오락의 영역에서 끌어내, 기록과 기억의 영역으로 밀어 넣는다. 소설은 사실을 검증하거나 정리하지는 않지만, 그 시대를 통과한 감각과 정서를 체온째로 고정한다. 사람들은 종종 통계보다 이야기로 시대를 기억하고, 보고서보다 인물로 사회를 이해한다.


넷플릭스 콘텐츠를 떠올리면 이 감각은 더 분명해진다. 다큐멘터리든 극화된 시리즈든, 많은 작품들이 실제 사건과 기록을 토대로 만들어지며 “그때는 어땠는가”라는 질문을 현재형으로 되돌린다. 연표보다 캐릭터가 먼저 떠오르고, 수치보다 장면이 오래 남는다.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는 박정민 배우의 추천사는 농담처럼 들리지만, 지금의 스토리텔링 환경을 정확히 짚는다. 역사 인식의 중요한 통로가 이미 이야기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61년에서 2026년까지 65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책바에서 역사책을 읽고, 북클럽에서 소설을 읽고, 이렇게 개인적인 글을 쓴다. 역사는 더 이상 역사가만의 작업이 아니다. 소설가, 플랫폼, 그리고 개인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현재를 기록하고 과거와 대화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든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역사를 구성하는 사례와 목소리가 크게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성해나 작가는 또 다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마음은 녹슬지 않았다.” 시대의 통증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태도, 몸살을 함께 앓겠다는 결심. 그것이 학술서든 소설이든, 혹은 이런 블로그 글이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역사의 가장자리에 손을 얹고 있는지도 모른다. 형식은 달라졌지만,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는 계속된다. 역사는 지금도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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