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선입견에는 선입견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혼혈인인 내가 살아남은 전략

by 파드샤

내가 직접 혼혈인으로 30여 년간 한국사회를 살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이 인종주의적 편견이 조용하지만 깊숙이 파고든 사회라는 사실이다. 여타 국가라고 더 나을 것이 있겠냐만은, 한국의 인종주의는 그 존재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은연중에 혐오를 가르친다.

"짱깨 새끼들은 인구가 많아서 좀 죽어도 괜찮아."

"중국인들은 냄새나고 미개하지."

위는 모두 내가 다닌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과 대학교 교수가 수업시간에 했던 말이다. 교탁 위에서만 해도 저 정도니 그 외 공간에서 들었던 더 심한 말은 별로 글 위로 옮기고 싶지 않을 정도다. 한 번은 대학교 1학년 때 독서 학회에서 한 선배가 "짱깨"라는 단어를 사용하길래 참을 수가 없어서 쏘아붙였던 적이 있다.

"그럼 저도 짱깨겠네요? 저희 엄마도 대만 사람인데 같은 중화권 사람이니까 짱깨죠?"

(대부분의 한국인처럼) 설마 혼혈인이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한 선배는 몹시 당황하여 얼굴을 붉히고 조용해졌다. 당시 성격 하나는 정말 예민하고 날카로웠던 나는 무자비하게 비아냥거리며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제가 혼혈이라고 하면 흔히들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가지는 편견이 있어요. 왠지 교육도 못 받았을 것 같고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지저분한 나라의 여성이 저희 어머니일 것이라고 짐작하죠.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한국의 정부초청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한국의 가장 좋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계십니다. 어머니가 결혼했을 당시에는 대만이 한국보다 생활수준이 높았어요. 그래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서울의 신혼집을 보러 오시고는 동부이촌동의 아파트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딸 고생한다고 슬퍼하셨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단순한 무지함 때문에 그 자리에서 그토록 무안을 겪어야 했던 고작 20대 초반 학생이었던 선배에게 매우 미안하다. 그리고 내가 했던 말속에도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계층적 편견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스스로가 자랑스럽지 않다. 혹시 이 글을 보고 불편한 분이 있다면 정중히 사과드리고 싶다. 그리고 왜 나 역시 사회적 편견의 대상인 동시에 스스로가 편견에 사로잡혔는지에 대해 조금은 변명이 하고 싶다.

대학교 다니면서 종종 학우들로부터 "넌 너무 엘리주의적이야."라는 지적을 받았고, 나 역시 이를 인정한다. 나는 학벌주의의 철저한 숭배자이었으며(지금도 아니라고는 양심상 말 못 하겠다), 중산층 계층의 혜택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랐다. 혼혈이라는 특수성을 제외한다면, 우리 가족은 전형적인 서울 수도권에 거주하는 고학력 중산층 가정이다. 특히 어머니 나이대의 여성 중에는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람이 드물뿐더러, 심지어 한국에서 가장 알아준다는 모대학의 학위이니, 학벌주의의 혜택을 정확히 인지하면서 누릴 수가 있었다.

요즘 같은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학위가 이제 뭐냐 중요하냐, 대학 잘 나와봤자 돈 못 번다, 등의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나 자신이 학벌주의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로써 학벌이 주는 힘이 얼마나 큰 지 증언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학벌의 힘은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효과적인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학 이름을 듣는 순간 나를 어린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무시하던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던 때, 외모에만 관심 있는 멍청한 여학생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었을 때, 그리고 직장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여직원에서 경청할만한 팀원으로 탈바꿈했을 때.

계산 빠른 나는 학벌이 주는 힘을 일찍이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것이 혼혈인 나와 외국인 이주여성인 엄마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좀 크자, 나는 더 이상 내가 혼혈이라고 간단하게 말하는 대신, "엄마가 박사 유학으로 한국 와서 아빠를 만났어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간단한 설명에 내포되어 있는 배경상황을 통해 함부로 나의 가족에 대해서 속단하지 못할 것을 기대하면서. 그러니 학창 시절 이를 악 물고 "좋은 대학"에 가려고 내가 얼마나 기를 썼는지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편견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편견을 소환시키다니, 치졸하다면 치졸하다고 할 수 있겠다. 끊임없이 자신을 방어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강박 때문에 난 굉장히 피곤하게 살았다. 이 글쓰기가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피곤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발걸음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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