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심마니가 되리라>
자신을 돌보는 방식을 착각했었던 적이 있다.
그저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기만을 바랄 뿐, 무엇이 나를 위한 최고의 선택인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지친 자신을 충전시켜야 한다는 명분만 앞세운 채 몸이 힘들어지는 걸 기피하고, 깊이 있는 생각은 회피했다.
눈앞에 작은 혜택만을 추구했었다.
당장 안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서슴없이 선택했다.
지친 몸을 위로해야 한다는 핑계는 좋은 방패막이되어 주었다. 모든 걸 미루고 바닥과 하나 되어 움직임을 최소화했고, TV는 그런 나를 쉽게 꾀어내어 세상의 즐거움을 앗아가 작은 상자 안에 가두었다. 힘들다는 핑계는 가족이 무조건 나를 이해해 주길 원했고,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을 소홀히 하고, 나에 대한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몸뿐만이 아니었다. 응어리진 가슴은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바라보지 않는 편이, 견뎌내는 편이, 멀리 도망가는 편이 오히려 편하고 쉬웠다. 이런 내가 싫었다.
그럼에도 휴식이라는 거창한 가면을 어제와 다름없이 또 찾아 쓴 자신이 후회스럽고 미웠다.
내가 머물렀던 곳은 안식처가 아닌 도피처였다.
삶에 당당하지 못했다.
달콤함을 위해 취하는 행동은 몸을 쉽게 지치게 하고, 마음에는 쓸쓸하고 허전함으로 각인시킨다는 걸 느낀다. 미루는 삶 또한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게를 가중시킬 뿐 덜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안다. 은신처로 숨는 회피가 인생의 길이 될 수 없고,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든다는 진실도 경험한다.
허무함이 나를 잠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는 행동과 선택이 스스로에게 기쁨이 되고, 마음이 벅차오르는 뿌듯함이길 희망하고, 떳떳함으로 부끄러움이 없길 원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찾아 헤매었다.
먼저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 내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걸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늘도 그런 나를 기특하다고 여기신 걸까? 한참을 먼 길을 돌던 언제부터인가 보물들이 하나둘씩 내 품 안에 들어와 쌓여 갔고, 귀중한 보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도 내 안에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멈추길 원하지 않는다. 안주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기꺼이 심마니가 되어 이 여정을 계속해 나가리라.
다음 온전히 자유가 주어지는 휴일과 주말이면, 잠시라고 자신을 위한 투자 시간을 갖는다.
집안일부터 약속, 가족, 사사로운 일까지 한가로울 시간이 없지만, 시간을 정하지 않고 허락하는 시간만큼만이라도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걸 하는 시간을 내게 투자한다. 나를 위해 투자한 단 30분, 그저 1시간일지라도 이 소소한 시간은 그날의 가치를 무한 상승시키고,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을 느끼는 요소가 되어준다.
마음의 응어리는 아직 답을 모르겠다.
세월의 나이만큼 마음도 나이가 들어줬으면 하지만, 어쩌면 세월과 반대로 나이 드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다. 견뎌냄이 항상 정답이 아니라는 걸. 멀리하기 위한 도망이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정면으로 응어리를 바라보려 한다. 따뜻한 보살핌으로 잘 어루만져 주고, 포용하겠다. 모든 응어리가 녹아 강물이 되고, 바다와 만나 하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나를 아끼지 않으면 그 누가 아껴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더라도 대신해 줄 수 없고, 반대로 나도 대신해 줄 수 없지 않은가.
내가 안락함을 추구하지 않고, 매일 값진 나날을 위해 불편함을 선택하는 나이길.
그저 정성과 마음을 다해 자신을 가꾸고 싶은 심정이다.
세월이 곱게 나를 물들여 주길 바란다.
"즐거움을 느낄 때마다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거기에 휩쓸리지 말고 잠깐 멈추어라. 그럼 다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라. 처음엔 즐거웠지만 훗날 후회하게 되거나 자신을 증오하게 된 경우가 없었는지 돌이켜보라. 즐거움과 만족을 비교해 절제할 수 있는 것인지 살펴라. 안락함과 즐거움 그리고 그것의 매력적인 이끌림에 굴복하지 말라. 이 모든 것에 저항한 후에야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를 알 수 있으니. "
-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