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결국 내 마음에 꽃이 피어난다

<나만의 처방전>

by 찬빛별

어느 날 누군가가 번아웃이 오면 어떻냐고 묻는다.

한 문장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대답했다.

"일상에서 내가 사라져요"


나는 그랬다.

삶이 무채색으로 변했다.



<몸살을 앓다>

공허함과 허무함만이 존재하는 나날이었다.


반짝이던 불빛은 점점 희미해지더니 사라져 버렸고,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삶은 자욱한 안개만 있을 뿐이었다. 나무와 꽃, 푸른 하늘 그 흔한 아름다움 조차 안갯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생기를 느끼던 감각은 둔감해져만 갔고, 행복한 날이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일상의 기쁨이 사라지자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갈라진 틈새로 걱정과 두려움의 그림자가 몰려 들어오더니,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불안으로 몸살을 앓게 했다.


사는 이유가 뭘까?

나는 답할 수 없었다.



<나만의 처방전>

아무도 앗아간 적 없는 행복을

자신 안에 공간조차 내어주지 않으면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포기한 건 나였다.


누군가는 행복이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대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행복이 다가와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은 몸과 마음의 애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선택과 결정은 오로지 나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감당하기 버거운 일은 잠시 내려놓는 절제와 용기도 필요할 때가 있다는 걸 경험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도망가지는 않겠다. 다만, 숨 쉴 수 있는 순간을 자신에게 선물해 주고, 그 속에서 잠깐의 기쁨을 만끽하는 호사를 누리겠다 마음먹는다.


가속이 붙은 속도를 늦추기란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멈추지 않고 달려서 얻게 되는 결과는 더욱 달갑지 않다. 그러니 발걸음을 멈춰야 할 순간을 알아채고 멈추는 힘이 내 안에 있길 바랄 뿐이다.


마음이 번잡하고 호흡이 가빠 오면, 가다듬을 수 있는 나만의 임시처방전을 쓴다.


일단 노트와 내가 좋아하는 만년필을 꺼낸다.

만년필을 쓸 때만 누릴 수 있는 사각거리는 소리와 필기감을 느끼며, 감사한 일과 나를 위해 스스로 기분 좋게 한 일을 적기도 하고, 하루를 정리해 보기도 하며 끄적임의 즐거움을 맛본다. 또는 내가 머물고 있는 자리를 잠시 벗어나 복도나 계단을 걷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카페라테를 한 모금 한 모금 맛을 음미하며 위로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생각과 마음이 정화되는 걸 느낄 수 있으니, 짧은 시간에 큰 효과를 보는 샘이다.


때에 따라 처방전이 달라지긴 하지만, 언제나 기준은 똑같다.

빠지지 않는 건, 자신을 돌보는 뿌듯함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삶의 성분을 처방한다.

화려하고 강력할 필요가 있을까? 자신에게 만족스럽고 효과만 좋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거창하지 않으면 어떤가.

짧은 멈춤이 속도를 늦춰주고 고요함으로 나를 채워주니,

숨 가쁜 일상에서도 나를 잃지 않을 수 있고,

소소한 감동과 기쁨이 나를 위로해 주어,

결국 내 마음에 꽃이 피어난다.


"오늘 하루만은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먹은 만큼만 행복하다는 말은 사실이다. 행복은 우리 안에서 나온다.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시빌 패트리지 <<오늘만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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