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에 올랐지만, 다시 내려와 바라보다
상담실 한 켠,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건네진 말 한마디가
나를 멈춰 세웠다.
“대기업 임원으로 6~7년이나 일하셨다면
이미 사회적 시각에서는 아주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패배자처럼,
너무도 침울한 얼굴로 앉아 계신가요?”
그 말에
나는 웃지도 못했고, 바로 대꾸하지도 못했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건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내 안의 ‘기준점’ 전체를 흔드는 말이었다.
나는 지금껏
'더 올라가야 한다'는 방향으로만 살아왔다.
전무, 부사장, 사장.
그 끝자락까지 가야 완성된 인생이라 믿었고,
그 선에 다다르지 못한 나는
어딘가 중도 탈락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상담자는
그 시선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미 임원을 6~7년 했다는 건
입사 경쟁률 수백 대 일,
승진의 좁은 문을 거쳐,
수많은 사람 위에서 수많은 판단을 해온 시간 아닙니까?
그 자체로 이미 정상에 근접한 인생이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치 정상을 향해 오른 사람이
다시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얻은 듯했다.
그동안 나는
‘가지 못한 것’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래에 서 있던 수많은 시간과 사람들,
그리고 내가 걸어온 경로의 경사도를 바라보지 않았다.
나는 너무 높은 곳만 보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그래서 지금 이 작은 퇴장이
모든 것을 무너뜨린 것처럼 느꼈던 건지도 모른다.
상담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당신보다 더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나눌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세요.
그게 인생 3막입니다.”
나는 그 말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충격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내가 너무 많은 걸 이뤘음에도,
마치 그 이룸이 무효화된 것처럼 여기며 살아온 지난 몇 주가 스스로도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가진 것을 지키려는 삶이 아니라,
나누고 전하고 다시 키워가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그동안 쌓아온 통찰, 경험, 지식, 사람과의 이야기—
그 모든 것을
세상에 환원하는 인생 3막.
그건 더 이상
'성공의 연장선'이 아닌,
삶의 확장선이어야 한다.
내려와 보니,
비로소 더 넓은 세상이 보인다.
정상에서 본 세상보다
이제 내려와서 바라보는 시선이 훨씬 따뜻하고 넉넉하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진짜 ‘나’라는 사람의 의미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